드라마편2
2019년 2월 넷플릭스에 찾아온 엄브렐러 아카데미가 올해 8월, 시즌 4를 마지막으로 막을 내렸다.
시즌3에 이어 다시 2년의 텀을 두고 나왔으니, 가물가물한 이전 내용을 떠올리기 위해 역시 정주행을 시작해 끝까지 달렸다.
코믹스를 원작으로 했다는 건 어렴풋이 알고있었는데, 그 스토리 작가가 마이 케미컬 로맨스의 보컬, 제라드 웨이라는 사실은 방금 알았다. ㄴㅇㄱ
처음 팝에 입문하고 밴드 음악에 빠졌던 시절 사랑했던 엠샬의 제라드가 DC 코믹스에서도 활동할 만큼 만화에도 이렇게 재능이 있었다니...천상 락스타라고 생각했는데, 정말 재간둥이였군요 당신은 도대체...
본론으로 돌아오자.
코믹스를 기반으로 해 약간의 B급 감성과 유치함 때문에 꽤나 호불호가 갈리는 작품으로 시작부터 유명했지만, 나는 드라마 엄브렐러 아카데미를 꽤 좋아했다.
물론 나도 캐릭터들이 갑자기 댄스파티를 벌이거나 흑화한 바냐의 바이올린 연주에는 손이 조금 오그라들었지만 말이다.
그런데 이번 시즌이 끝나고 보니, 사실 나는 엄브렐러 아카데미를 사랑했었다.
이 드라마가 아니라 엄브렐러 아카데미의 캐릭터들을, 진하게 사랑했다...
그 중에서도 특히 파이브와 클라우스를.
엄브렐러 아카데미의 강점은 바로 매력적인 캐릭터다.
스토리가 이상하게 흘러가고 조금 유치해도, 캐릭터에 대한 애정이 우리를 드라마에 락인(lock-in)시킨다.
우리는 완벽한 캐릭터에 빠져들지 않는다. 어딘가 모자란 구석이 있지만 미워할 수 없는 캐릭터, 불행한 과거를 가졌지만 현실을 살아보려 하는 그런 캐릭터들에 우리는 빠져든다.
(대표적인 예가 마블의 엑스맨 시리즈의 캐릭터다. ‘돌연변이’라는 약자성으로 뭉친 자비에 스쿨은 정말 매력적이다. 이외에도 우리가 사랑하는 대부분의 마블 히어로들은 아픈 과거를 가지고 있다.)
엄브렐러 아카데미의 캐릭터들은 초반에 파이브가 언급하듯, 미성숙한 어른들이다.
초능력을 가졌으나 그 능력을 원한 적은 없었고, 컨트롤하기 힘들어하거나 부작용으로 힘들어한다.
친부모는 얼굴도 모르며, 자신들을 실험쥐 삼은 아버지에게 자라 가족이 뭔지, 사랑이 뭔지도 잘 모르지만 본능적으로 사랑을 갈구한다.
그렇게 얼렁뚱땅 몸만 큰 어른이 된 이들은 삐걱거리면서도 피도 섞이지 않은 형제들과 하나의 가족이 되어, 종말로부터 세상을 구하고자 애쓴다.
바로 이 모습에 우리는 엄브렐러 아카데미를 사랑하게 됐다.
지금의 2030세대는 ‘어른됨’에 대해 고민한다. 과거 어른의 지표로 여겨졌던 것들은 이제 이루기 어려워졌고, 청소년기에 나를 알아갈 시간은 더 적어졌으니 말이다.
엄브렐러 아카데미 멤버들의 미성숙한 모습에서 우리는 우리의 모습을 본다.
그들의 상처에 함께 아파하고, 함께 성숙하길 바랐다.
엄브렐러 아카데미를 논하면서 에이단 갤러거의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다. 시즌1 촬영당시 15살쯤이었을 그는 60대 노인의 정신을 가진 넘버 파이브의 연기를 완벽하게 소화했다.
성인 배우들 사이에서 제일 노련하고 성숙한 캐릭터를 표현해낸 그의 모습은 몇 번을 다시봐도 감탄스럽다.
그리고 이미 시즌 1 부터 완성형 외모로 등장했으니...성장하는 그의 모습을 지켜보는 것도 짜릿 즐거웠다.
문제는 시즌 3부터 시작된다.
제작진도 스토리를 어떻게 풀어나가야 할지 감을 잡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납득이 되지 않거나 불필요한 서사와 씬이 너무 많았다.
새롭게 등장한 스패로우 패밀리나 할런과 스탠리는 도대체 무얼 위해 출연시켰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서사상 중요한 역할을 하지 못하고 허무하게 퇴장한다.
원래도 사이가 돈독하진 않았던 엄브렐러 아카데미지만, 시즌3에서는 심각하게 개인플레이를 하며 다들 똥고집에 사로잡혀 답답함을 주고, 레지널드의 정체나 앨리슨과의 계약은 도대체 무슨 내용인지, 끝까지 알쏭달쏭함만 남긴채 최종화를 끝내버렸다.
어떻게 풀어낼려나 걱정 반 기대 반으로 본 시즌 4는 그야말로 경악이었다.
달에 보관된 냉동인간의 모습으로 아주 잠깐 등장했던 애비게일 하그리브스는 갑자기 아주 중요한 인물이 되어 레지널드를 휘어잡는다.
그러고는 엄브렐러 아카데미 멤버들의 초능력의 근원인 마리골드를 자신이 만든 원소라 주장(!)한다.
그게 뭔데요.
시즌 1부터 쭉 봤는데도 할런이 잠깐 “전 그 힘을 마리골드라 불러요.” 정도로만 언급했던 마리골드는 갑자기 스토리에서 제일 중요한 소재가 되어있었다.
“너네 알지? 그 마리골드 말이야!” 이런 뉘앙스인데, 도무지 마리골드는 생경할 따름이었다.
아무튼 그 마리골드와 다른 원소로 인해 우리가 사랑했던 벤은 흉측한 괴물로 변해버리고.. 정말 필요했나 싶은 라일라와 파이브의 불륜까지 더하며 스토리는 산으로 간다.
더이상 이 이상한 스토리와 갑작스럽게 등장한 괴물을 감당할 수 없겠다 싶을 즈음, 주인공들을 모두 죽여 세상을 종말을 막아내는 것으로 드라마를 끝내버린다.
???? 예?
엄브렐러 아카데미 시즌4를 총평하자면, 시청자에게 불친절한 작품이었고, 팬들에게 무례한 작품이었다.
시즌4는 라오어2(더 라스트 오브 어스 파트2)를 연상시킨다.
라오어2를 아는 사람이라면 무슨 비유인지 바로 알아차릴 것이다.
캐릭터를 사랑하게 만들고선 우리에게서 그들을 앗아버리는 스토리와, 전혀 납득되지 않는 메세지를 전하려 하는 방식이 정말 똑닮았다.
원작자인 제라드의 반응이 궁금해서 찾아봤는데, 전체적으로 개의치 않아하는 듯 했다.
그는 “드라마 시리즈에는 참견하지 않기로 선택했고, 드라마는 코믹스와 별개로 아름다운 것으로 성장했다”고 말했다.
포고가 그래픽화 되어 움직이고 멤버들의 초능력을 실사로 볼 수 있게 해준 제작진의 노고에 감사하다고.
코믹스는 끝나지 않았고, 드라마와 다르게 계속 나아갈거라 하니, 드라마의 결말이 아쉬웠던 팬들은 그쪽으로 기대를 기울여 보면 좋겠다.
아무튼 영화가 아닌 드라마 시리즈로 볼 수 있는 초능력물에 그동안 즐거웠고, 사랑했다..
그리고 에이단 갤러거는 앞으로도 사랑해야겠다.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