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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뇽알 Sep 03. 2021

네가 예약한 건 아는데 네 자리는 없어

남미 여행을 하려거든 온라인 예매는 믿지 말라

 코로나가 있기 전 해외여행은 마치 서울에서 부산 가는 것만큼이나 쉽고 간단했다. 물론, 펜데믹만 해결된다면 지금 역시 간단하고 쉬운 일 일 것이다. 인터넷을 통해 원하는 나라로 가는 항공권이 있는지 알아보고 가장 저렴하게 파는 곳을 찾아 티켓을 예약하고, 숙소 역시 스마트폰을 이용해 간단하게 예약하면 된다. 그 나라안에서 다른 도시로 이동할 때도 온라인 예매가 가능하고, 심지어 유럽은 다른 나라로 넘어가는 기차 예약까지 가능하다. 아예 온라인 예매 서비스를 지원하지 않으면 모를까 온라인 서비스를 제공하는 많은 나라에선 사전에 예약한 서비스를 이용하는데 웬만해선 문제가 없다. 그러기 위해 온라인 서비스가 있는 것이니까. 하지만 페루는 역시 남다르다. 어쩌면 온라인 예약 서비스는 그냥 '서비스' 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온라인 예약을 믿지 말라

 페루에 가기 전 수많은 정보들에서 공통적으로 내놓았던 후기였다. 심지어 지인들도 그랬고, 여행 정보를 찾으며 방문했던 커뮤니티에서도 그랬다. 남미 여행할 때 온라인 예약을 믿지 말라고. 하지만 어쩌겠나. 고작 10일 휴가 내서 여행 가는 게 전부인 직장인이 현장에서 헤매는데 시간을 보낼 수는 없지 않은가. 그저 사전에 예매한 대로 되길 믿는 수밖에. 물론, 일전에 기술 한대로 그 믿음은 페루에 도착한 첫날 크루즈 델 수르 터미널에서 바로 무너졌지만.


 비용을 절약하는 측면에서 나스카에서 바로 쿠스코로 향하는 버스를 이용하는 여행객들이 많지만 평소에도 보잘것없는 내 건강 상태로 봤을 때 고산병이 올 확률이 80%는 되어 보였으므로 우린 리마에서 쿠스코까지 비행기로 이동하기로 했다. 16시간 동안 버스에서 죽어가느니 쿠스코에 떨어지자마자 고산병 확 앓고 끝내자! 그래서 선택한 페루 국내선 항공편 LC Peru. 다시 한번 호르헤 차베스 공항.


깨끗하고 세련된 호르헤 차베스 공항


 그래도 공항인데, 심지어 국제공항인데, 비행기 이착륙은 보통 시스템 가지고 하는 게 아니잖아. 문득 생각해 보건대 여행 첫날 유창한 영어와 찾아가는 서비스로 감동을 주었던 공항은 꿈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국내선임에도 여유 있게 준비 하자며 출발 3시간 전에 도착한 공항에서 보딩체크를 하려던 우리에게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은 얘기가 들렸다. '네 티켓은 없다.'

 멀쩡히 출력해갔던 예약 확인증을 보고 티켓이 없다니?? 그럼 내손에서 네 손으로 넘어간 그 프린트물이 말하는 바는 무엇인가.


"이해가 되지 않는다. 나는 분명 온라인으로 예매를 했다."

"음.... 근데 당신 에스파뇰 할 줄 아는가."


 뭔가 장문의 설명이 필요한 상황이었을까. 공항 직원이 영어로 설명하기를 포기했다는 것에 충격을 받으며 '할 줄 모른다'라고 답하자 생각보다 긴 한숨의 끝에 느린 영어문장이 들려왔다.


"네가 예약한 것은 확인된다. 근데 우리 비행기에 네 자리가 없다. 아마 이중 예약된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정말 그래서 뭐 어쩌라는 얘기냐는 표정과 언성을 마주한 카운터의 직원은 본인도 답답했는지 - 근데 니가 왜 - 어깨를 으쓱하고는 잠시 자리를 비우더니 상사로 보이는 사람을 데려왔다. 그런데 그 사람도 다짜고짜 에스파뇰부터 했고 내가 못 알아들으니 짧은 영문으로 간단하게 얘기했다.


"문제를 확인해 보겠다. 잠시 기다려달라."


 우리의 예매확인증을 들고 어디론가 가던 그는 다른 쪽 직원에게 뭔가 조회를 시키는 듯하다가 어느새 근처로 돌아와 다른 직원들과 또 즐거운 수다를 떤다. 이카에서의 버스 터미널 직원처럼 페루의 직원들은 뭔가 여유 있는 생활을 즐기는 듯하다. 놀이동산 대기줄처럼 길게 늘어진 줄을 보고도 일을 내려놓고 우스갯소리를 주고받으니 말이다. 그렇게 15분이 흘렀다.

 15분 만에 돌아온 아까 그 상사는 나의 예매내역 위에 새로운 예매번호를 적어주었고 - 아마도 그걸 발행하는데 15분이 필요했던 모양인지 - 그걸로 돌아오는 비행기까지 예매 확인이 가능하다는 얘기를 했다. 동시에 빈 좌석이 딱 두석이 있으니 실시간 예매하는 곳에 가서 처리하라고? 그건 또 다른 곳에서 하는 시스템인가 보죠?


 실시간 예매를 처리하는 곳으로 가니 여기도 줄이 있다. 길고 긴 줄의 끝에 예매 내역을 내밀고 지난 크루즈 델 수르 때처럼 긴급하게 생성된 좌석 번호를 받았다. 번호가 이어 붙지 않은 게 영 이상하다고 여긴 그 좌석 번호를 들고 비행기에 탑승하니 우리는 복도를 사이에 두고 따로 갈 운명이 아닌가!

 대체 이럴 거면 온라인 예매 시스템은 왜 도입한 거야? '서비스'라서?


좌시하지 않겠다 LC Peru


 리마에서 쿠스코까지 비행기로 1시간 반 남짓. 내 옆에도 알의 옆에도 페루 현지인들이 앉아있어 어색한 시간이 흘렀으나 탑승시간도 길지 않고 기내에서 무료로 제공되는 커피와 시리얼바도 먹으며 가고 있으니 비행기 차창밖으로 만년설이 보였다. 우리나라에선 실물로 볼 수 없는 그 광경에 감탄하며 창가 쪽에 앉아계신 현지인들이 찍히지 않게 꾸물거리며 카메라 줌을 당기고 있으니 그것을 눈치챈 옆에 앉으신 분이 창가에 앉은 지인에게 '얘가 사진 찍으니 비켜주라'하신다. 그리고 안쪽에 계신 분은 나와 눈을 마주치곤 웃으면서 얼마든지 찍으라 하시곤 몇 장 찍고 카메라를 내리니 잘 찍었냐고 물어보신다.


비켜주셨는데도 살짝 걸릴 정도로 비좁았던 비행기


또 이렇게 작은 일에 마음이 녹아내린다. 그래. 페루 사람 하나하나는 다 착하고 정겨운 분들이야.

온라인 시스템 빼고.




<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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