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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뇽알 Sep 07. 2021

산소가 부족할 땐 산소캔을 사야한다

처음엔 나도 그것이 고산병 인 줄 몰랐다.

 해발 2,000 ~ 3,000m를 넘으면 산소가 부족해지는 급성 반응으로 고산병이 나타난다. 평균 고도 해발 4,000m를 자랑하는 안데스 산맥을 끼고 있는 꽤 많은 남미 국가에선 흔한 질환이고 예능 <꽃보다 청춘>에서는 윤상이 형이 이 질병으로 하루를 그대로 앓아누워있었다. 고산병에 대해 찾아보면 '최악의 경우 사망할 수 있다'는 내용이 따라 나오는데, 아무것도 대비할 수 없다는 것이 나 겁쟁이에겐 납득하기 어려운 것이었다. 사람마다 고산병이 오는 높이가 다르다는 말에 테스트해보고 싶었지만 우리나라엔 고산병을 테스트할 수 있는 높은 산도, 이렇다 할 처방약도 없다. 조심할 수도 대비할 수도 없는 병증이 제발 없기만을 바라며 우린 쿠스코 공항에 도착했다. 해발 고도 3,400m의 도시. 10명중 4명은 고산병에 걸린다는 통계가 있는 곳이다.




 여행 전 다른 사람들의 후기에서는 공항에 도착하면 산소캔을 판다는 소식을 들었는데, 우리가 도착했을 땐 코카차 판매 부스만 있었을 뿐 어디에서도 산소캔을 찾을 수는 없었다. 비행기에서 내린 지 얼마 안 돼서 그런지 나는 생각보다 컨디션이 괜찮아 기쁜 마음으로 공항을 나서려는데 알이 심상치 않은 소리를 했다.

 "기분 탓인가?"

 "왜?"

 "숨 쉬는 게 좀 불편하지 않아?"

 "모르겠는데? 혹시 막 아픔?"

 "아니. 그냥 숨이 막히는 것 같아."

 "아직 공항도 안 나갔는데 벌써 그럴 리 없잖아."

 실제로 나는 아무것도 느끼지 못했기에 비행기에서 내린 지 몇 분 만에 그런 것이 체감될 리 없다, 기분 탓일 거다 라고 치부하며 일단은 픽업 택시를 찾기로 했다.


작은 비행기와 작은 공항


 숙소를 예약할 당시 픽업 택시를 같이 예약했는데 '공항 주차장으로 나오면 만날 수 있다'는 안내에 '대체 공항 주차장에서 일개 외국인들끼리 어떻게 접선을 한다는 건가!' 하는 큰 두려움이 있었지만 공항 바깥으로 나와서야 그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았다. 쿠스코 공항은 국내선의 작은 비행기만 운항이 가능할 정도로 작은 공항이었고 주차장으로 나오니 주차한 차 보다 더 많아 보이는 택시 기사님들이 예약자의 이름을 들고 서있다. 그런데... 왜 내 이름은 안 보이는 거죠?

 뭐가 또 잘못됐나 싶어 와이파이를 켜고 스마트폰을 열었지만 와이파이마저 말도 안 되게 느린 상태. 한참을 헤매고 있으니 한 택시기사가 와서는 '숙소 까지 태워다 줄까?' 라며 물어왔다.

 "숙소를 통해 픽업 택시를 예약했다."

 "숙소 이름이 무엇인가."

 "코코펠리 숙소다."

 "아, 그 친구는 차가 밀려서 늦게 오고 있다. 금방 올 테니 기다려 봐라."

 그러더니 쉽게 포기하고 다른 손님을 맞이하러 가신다. 아니, 여기 다 아는 사람인가요??? 그리고 그 기사님은 10분 뒤쯤 도착하셔서 정말로 '도로가 밀려서 늦었다'는 말을 하셨다. 신기한 일이네...


눈을 가늘게 뜨고 보면 채광 때문에 좋아 보인다. (사실 다 낡았다)


 도착한 숙소는 쿠스코의 외국인 대상 게스트 하우스 중 가장 후기가 많고 깨끗하기로 유명했던 곳이었다. 호텔급도 있었지만 너무 비싸서 포기하고 개중 평점이 높은 게하를 선택했는데 이용객을 위한 서비스도 많았고, 심지어 조식도 있었고, 우리가 선택한 화장실 딸린 방은 정말 깨끗했다. 방에 들어와 가방을 대충 내려놓고 침대에 앉자 갑작스레 경미한 두통이 밀려왔다. 그리고 10분 안에 눈이 빠질 것 같은 두통이 시작됐다.

 "많이 아파? 이거 잠깐 마셔봐."

 알이 혹시 모른다며 방으로 올라오기 전 숙소에서 제공하는 따뜻한 코카차를 들고 올라왔는데 그것이 고산병 해소에 좋다며 나에게 권했다. 나 역시 그런 얘기를 들은 바 있었기에 일단 마시긴 했는데 5분이 지나도, 10분이 지나도, 30분이 지나도, 차 한잔을 다 마시도록 두통은 나아지긴커녕 더 심해지기만 했다.

 "나 조금만 누워있다가 나가자."

 "응. 나 걱정하지 마. 오늘 안 나가도 돼."

 속이 울렁거리고 귀까지 아파지는데 보통 이런 경우엔 타이레놀을 먹고 자고 일어나면 나아지니까 이번에도 그러길 바라며 알이 펴주는 침낭 이불속으로 들어가 눈을 붙였다. 하지만 2시간여를 자고 일어나도 고통은 그대로였다.


 함께한 알은 다행히도 아프진 않았지만 함께 여행하는 사람이 아프면 신경이 쓰이는 것이 인지상정. 해가 다 떨어지고 일어난 내가 여전히 두통으로 고생하고 있으니 자기가 카운터에 가서 물어보고 오겠다며 일단 내려갔다 왔다. 다시 따듯한 코카차를 한잔 들고.

 "여기 숙소엔 산소캔이 없대. 나가면 약국이 있다는데 내가 약국에 갔다 올게."

 너무 아팠지만 알을 혼자 약국에 보낼 수는 없다. 알의 방향치 길치는 놀라운 수준이었기 때문인데, 그 화려한 이력엔 '살고 있는 아파트 단지 내에서 길 잃기'능력도 보유 중인 수준이었다. 숙소를 나서자마자 마주하고 있는 것도 아닌 곳에 보냈다간 더 큰 사고가 생길 것이 뻔해 자리에서 일어날 수밖에 없었다.


 나가자마자 왼쪽 골목의 끝에 보이는 2개의 약국에 물어봤으나 코카잎으로 만든 고산병 약을 추천받긴 했으나 산소캔은 없었다. 심지어 다른 약국을 찾으러 가는 길에 만난 구급차에도 확인해 봤으나 - 그분이 영어를 못하시기도 했지만 - 역시 산소캔은 없었다. 마지막 희망은 역시 초록 검색창. 네이버에 '쿠스코 산소통'을 검색하니 몇 가지 정보가 나왔는데 이미 내 기력은 완전히 소진될 대로 소진된 상태여서 '마지막 희망'이라고 생각하고 쿠스코 마트 중 가장 크다는 '오리온 마트'로 향했다. 밤길을 꽤 걸어야 했고 가는 길에 언덕까지 나타나 다섯 걸음에 한 번씩 쉬어야 하는 수준이었지만 다행히도 마트는 아직 영업 중. 그리고 그렇게 찾아 헤맨 산소캔이 바로 그곳에 있었다. 산소캔이 얼마나 필요한지 알 수가 없어 큰 거 작은 거 2개씩 사재기를 해서 돌아오는 길부터 산소를 흡입했다. 제발 증상이 좋아지길 바라며.


비몽사몽 간에도 이런 건 남겨야 하니 찍어달라고 부탁하는 모습


 산소캔 하나를 다 쓸 정도가 되니 두통이 조금씩 가라앉기 시작했는데 갑자기 체온이 떨어지며 추위를 타기 시작했다. 하나의 증상이 해소되니 다른 증상이 시작되는 건가. 아프다고 거의 울 지경이 되자 내가 안타까웠는지 알이 같이 자자며 옆에 와서 이불을 덮어주며 산소캔을 쥐고 있는 나를 토닥였다. 그리고 정말 거짓말처럼 고산병이 내 몸에서 조금씩 빠져나가고 있었다.

 얼마나 괜찮아졌냐면 새벽녘 옆에 바짝 붙은 알을 불편하다고 느껴 손으로 살짝 밀었을 정도인데 알은 내가 아픈 와중에 잠투정을 한다고 생각했는지 더 가까이 누워서 나를 토닥였다. 이 뭔가 웃픈 상황에서도 옆에서 이렇게나 아프지 않고 건강한 친구가 온 정성을 다해 나를 보살피고 있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하는 생각에 다시 잠들었다. 물론, 계속 불편하긴 했으므로 알이 이른 아침 샤워하러 들어갔을 때 본격적으로 잠들긴 했지만 말이다.



<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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