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얀타이탐보 유적에서의 하산 후 페루 레일을 이용할 수 있는 '오얀타이탐보역'으로 이동하는 것을 끝으로 가이드 디에고가 이끄는 파비앙 여행사의 패키지는 종료되었다. 다행히도 모두의 종착지가 다시 쿠스코로 돌아가는 것이 아닌 오얀타이탐보역이었으니! 바로 여기서 마추픽추행 페루 레일을 탈 수 있기 때문이다. 역시 마추픽추를 봐야 페루에 왔다고 할 수 있겠지.
이미지 출처: discoveringperutravel
세계 7대 불가사의 중 하나인 마추픽추 자체가 워낙 세계적인 유적지라 사전 예매를 해야 들어갈 수 있기에, 마추픽추로 향하는 기차 역시 현장 예매는 어려울 것 같아 여행 오기 일주일 전 온라인 예매를 완료한 상태. 다만, 파비앙 패키지의 소요시간을 알 수 없어서 조금 늦은 시간으로 예매했더니 아무것도 없는 황량한 역사에서 2시간을 기다리게 된 상황이었다. 이대로 시간을 허비하는 것은 아깝다는 생각에 매표소에 가서 가장 빠른 시간대로 바꿀 수 있는지 먼저 확인해보기로 했다. 그리고 페루의 다른 여느곳과 마찬가지로 느긋하고, 정 많고,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하는 페루 현지인의 출몰. 역사 내에 수 분 후 출발하는 기차가 들어와 있는 것이 보이는데 그 청년은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인지 처음엔 뭔가를 물어보는 듯하다가 나중엔 웃으면서 스몰톡을 하는 느낌이었다. 그렇다고 내가 뭘 할 수 있겠나. 그냥 기다려야지. 페루에서 가장 먼저 익숙해져야 하는 것은 다름 아닌 기다림이다.
그리고 돌아온 우리 차례. 혹시나 에스파뇰만 하면 어쩌나 걱정한 시간이 무색하게도 매표소 직원은 간단한 영어가 가능했고, 15분 뒤에 떠나는 기차로 바꾸는 것 마저 빠르고 수월하게 진행해줬다. 이 정도면 우리가 마추픽추로 향하는걸 하늘이 도와주는 것! 다만, 그 가격을 하늘이 내리지 않았으니! 오얀타이탐보역에서 마추픽추 역 (아구아스 칼리엔 데스)까지 1시간 반이면 이동하는데 요금은 세금 포함 미화 69달러, 우리 돈으로 약 8만 원이다. 페루의 현지 물가와 국민 평균소득을 생각해볼 때 1시간 반 거리의 기차요금을 8만 원을 낸다는 건 상상도 못 할 수준인데 이건 전적으로 관광객 전용인 1등석 요금. 페루 현지인들은 거의 10%에 해당하는 일반요금으로 일반칸 이용이 가능하다. 요금이 다른만큼 좌석의 퀄리티엔 차이가 있다지만 (1등석엔 천장도 유리로 되어 있어 자연 풍광을 많이 즐길 수 있다) 같은 열차에 딸린 다른 칸이라 소요시간엔 전혀 차이가 없다. 이 때문에 저렴하게 여행하고자 하는 배낭 여행객들은 문제를 제기하지만 달라진 것은 없고, 심지어 다시 페루 레일 사이트에서 요금 조회를 해보면 그때보다도 더 많이 올랐다. 그렇게 번 돈으로 지역주민들의 경제상황이 나아졌냐 하면 또 그건 아니라서 말이 많은 정책이지만 어쩌겠는가. 관광객은 이런 상황에서 선택지가 따로 없다. (외국인은 무조건 1등석만 구매 가능)
모두가 마추픽추를 향해 간다
새벽부터 패키지여행을 함께한 우리는 막판 패키지인 유적지 등반은 아예 참여를 안 할 정도로 지쳐있는 상태였기에 기차 안에서 말 안 통하는 외국인과 마주 앉기를 조용히 바라고 있었다. 어차피 말이 통하지 않으니 그냥 인사 정도만 하고 자는 쪽으로 합의를 본 것. 한데 그곳이 패키지의 종착점인 영향인지 주변에 한국인들이 간헐적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한국인하고 마주 앉게 되려나 생각한 것도 잠시, 젊은 한국인 커플이 우리 자리로 가까워져 오는 것이 아닌가.
"어... 한국분이세요?"
"아, 네. 안녕하세요!"
타지에서 말이 통하는 같은 국적인 사람을 만난 이상 인사만 하고 모른척하기는 어려운 일이다. 인사를 마친 우리는 마추픽추에 대한 기대감과 함께 자신들도 모르게 어딘가 어색한 '지난 여행 이야기'를 시작으로 한참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그것도 여행을 주도한 나와 그 커플의 남자분이 대화를 이끌게 되었는데, 시간이 좀 흐르고 나니 나랑 대화를 잘 나누던 남자분과는 달리 창밖 경관을 찍으며 즐거워하던 여자 친구분이 곯아떨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건 내 옆의 알도 마찬가지. 어찌나 둘이 비슷한 시점에 정신을 놔버리는지 우리는 같이 웃으며 '아침부터 돌아다녀서 힘들어서 그럴 것이다'라고 서로의 파트너를 감싸주며 이야기를 이어갔다.
회사를 다니면서 명절에 겨우 휴가를 붙여서 여행 온 우리와 달리 그 커플들은 꽤나 긴 약 15일 정도의 휴가를 내서 페루 일대를 여행 중에 있었는데, 네팔 여행 중에 만난 사이로 '나중에 페루 같이 가자'를 실현 중이었다는 것. 거기에 본인은 취업한 지 얼마 되지 않아 휴가를 내기 힘든 상황이었는데 누나와의 약속을 지키고 싶어 우리보다 더 길게 휴가를 냈다는 것이다. 그리고 마추픽추를 보고 우유니를 간다고... 우리는 명절 연휴에 붙여서 쉬는 것도 보통일이 아니었는데 그 가상한 용기가 지금 돌이켜 보면 MZ세대의 당당한 권리 요구인 것 같아 여러모로 부러운 점이 아닐 수 없다. 그리고 이젠 펜데믹의 영향으로 우린 지금까지, 그리고 앞으로도 꽤 오랜 시간 우유니를 가 볼 수 없게 되었으니 어떤 면에선 슬픈 일이기도 하다. 물론, 친체로에서 고산병으로 그 고생을 한건 싹 잊고 환상만 가지고 있는 거지만 말이다. 우유니는 사실 시간과 돈만으로 해결되는 곳이 아니긴 하다. 그러니 삼대가 복을 쌓아야 볼 수 있다는 소리가 나오는 거겠지.
너무나 가고 싶은 우유니 소금사막 / 이미지 출처: 나무 위키
"우유니도 가시지 그러세요."
"저희는 휴가를 겨우 낸 거라 어려워요. 다음에 와야죠."
울상을 짓고 다음을 기약하며 창밖을 보니 설산이 보였다. 설산을 처음 봐서 좋다는 이야기와 네팔에서 본 설산이 멋졌던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우리는 단 한숨도 자지 못하고 마추픽추가 있는 산아래 마을 '아구아스 칼리엔 데스'에 도착했다. 서로의 파트너를 깨우고 여행 잘하시라며 인사하고 헤어졌지만 다음날 또 보게 됐다는 건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 거긴 마추픽추가 있는 마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