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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미스럽게 Dec 25. 2021

소리를 찾아서

찰나, 기억 실종사건




비가 조용히 보슬거리며 내린 날이었다.

나설 채비를 하며 픽업하러 오겠다는 친구를 만나기 위해

지하주차장으로 내려갔다.

차로 5분가량 소요되는 곳에서 사는 친구는

나와 나이가 같고, 같은 동네,

같은 나이의 아들을 키우는 입장이라

같다는 삼박자, 쓰리콤보의 혜택으로 더 빨리 친해졌다.

문화센터에서 아들의 오감놀이 프로그램에서 만난 이후

종종 만나 수다떠친구사이가 됐다.


아이들이 어린이집에 간 오전 시간 짬을 내어

대형마트에 장을 보러 가기로 한 날이었다.

목적지는 우리 동네가 아닌,

왕복 두 시간 정도 이동해야 하는 거리였다.

소요시간까지 어림 계산하고

아이들 하원 전까지 귀가를 해야 하니까

우리의 쇼핑이 그리 여유롭지만은 않았다.


도로에 가득한 차량들, 유난히 비가 차분히 내려

도로의 표정까지 점잖고 여유로워 보이는 것만 같은 분위기에 젖었다.

옆으로 지나던 대중교통 버스를 무심코 올려다보았다.

스쳐 지나는 버스 안 사람들의 무표정을 대충 스캔했다.


©freestocks-photos, 출처 Pixabay


마트에 도착해 종종걸음으로 이것저것 장을 보며

돌아다니다 보니 어느새 점심시간이 되었다.

이쯤 되어 항상 걸려오던 남편의 전화이기에

의식을 하고 있는데

웬일인지 벨이 울리지 않았다.

오늘 바쁜가보다 했다.

휴대폰을 찾아보았다.

호주머니에도, 가방 속에도 휴대폰이 없다.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달라고 부탁을 했다.

신호는 가는데 여전히 내 휴대폰의 벨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혹시나 진동모드일까 싶어

어떤 작은 소리라도 감지하고자

주의를 기울여보았지만

여전히 내 휴대폰은 여기에 없는 게 확실했다.

집에 놓고 왔을까?

분명히 휴대폰을 들고 나온 기억만큼은 또렷해서

계속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대체 휴대폰이 어디로 간 걸까?

"집에 두고 온 거 아냐? 어딘가에 있겠지."


휴대폰 분실은

가볍지 않은 골칫거리이다.

행방이 묘연해진 휴대폰의 부재,

집에 도착할 때까지 찜찜함으로 내내 이어졌다.

우리 집 지하주차장에 도착해 친구에게 다시 한번

전화 걸어주기를 부탁했다.

"내 휴대폰, 전화 좀 걸어봐!"   

무슨 사연이길래, 이번에는 벨소리가 울린다.

소리를 찾아서 눈이 동그래진 친구와 나는

온갖 안테나를 세우고 벨소리를 았다.

친구가 먼저 박장대소를 했다.

나는 실소를 피할 수 없었다.

아, 어이가 없었다.


친구의 차 지붕 위에 양반처럼 머물러 있는

그 형체는 무엇이던가!

차 지붕 위에 있던 게 진정 내 휴대폰?

'헛, 세상에나.'

분명 비가 내리던 날이었다.

세찬 비가 니어서 다행이었을까.

비를 맞으며  휴대폰은 차 지붕 위에서

미끄러지지도 않고,

그대로 자석인것처럼 붙박이가 되어 있었다는 게

신기할 따름이었다.

실리콘 케이스가 한몫해낸 듯 싶다.

친구의 차 위에 머물며 위태로워 보였을,

비 오는 날,  지붕 위의 휴대폰!

우연히 목격한  누군가에게는 잠시나마

웃음을 선사했을 게다. 한편 걱정스러웠을 수도.


©Davide Fogacci, 출처 Pixabay


난 지금도 어떤 화려한 장식이 달린 케이스보다

실리콘 투명 재질의 휴대폰 케이스를 좋아한다.

아니 신뢰한다.  

휴대폰의 희대 실종사건의 기억,

찾아내고야 말았다.

꼭 그 이유 때문만은 아니지만 실리콘 재질, 

심플해서 좋고 실용성도 갑이다.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히던 휴대폰의 깜찍 발랄한

숨바꼭질의 결말은 이렇게 끝이 났다.

어떻게 나란 사람은  순간을 잊어버리고

아무렇지 않게 탑승, 출발을 감행했을까?

찰나의 내 생각주머니는 기억 너머,

어디 즈음에 있었던 걸까?


어찌 됐건,

당황스러웠던 것도 사실이었지만

휴대폰이 도로 위 차들에게 치이지 않고,

친구 차 지붕 위에 얌전히 있어줬다는 사실.

각고의 노력이 아니었을지라도

차 지붕 위에 붙어있었다는 것만으로도 크게 칭찬해.


기적이었다.

예상을 깬 행운이었다. 

극적인 상봉이었다.


지금은 5G 시대! 아직 실용화 단계는 아니라고 하지만

휴대폰이 컴퓨터 흉내도 내고, TV, 게임기,

영화관 역할까지 제법 다 해내는 요즘이다.

자그마했던 그때의 넌, 느린 기종으로 옛것이 되어버렸지만

넌 내게 그 어떤 휴대폰보다 감동이었어.





2. 기억

아들 세 살 적, 난 워킹맘이었다.

주말이면 아이를 데리고 하나라도 더 보여주고자,

바깥을 나섰던 시절이다.

집에 있지 않고 '체험! 삶의 현장 속으로' 다니기 바빴다.

그걸 묵묵히 따라주던 남편이 고맙기도 하다.  



©OpenClipart-Vectors, 출처 Pixabay



그날의 기억.

어딘가로 나서는데 달리는 차창 밖으로

무언가 휙 지나가는 형체가 보였다.

어째 좀 기분이 싸했다.

아! 아이 발아래 있어야 할 아들의 신발이 보이지 않는다.

크록스 깔판에 하얗고 두툼한 패브릭 덮개가 씌워져 있던 펭귄 디자인이었는데,

남편의 차 지붕 위에 있던 아이 신발 두 짝이

통째로 날아가버린 것이다.

도로라서 정차하고 주울 수도 없고,

눈물을 머금고 그 길을 계속 달릴 수밖에.

어른 이나 같이 있었는데

당신과 나!

두 사람 다 도움되지 못했다.

얼이 빠진 육아 대디, 육아맘이었다.


다시 햇병아리 부모가 되어

아이의 존재에 온갖 주파수를 맞춰가다보니

우리들의 젊은 날 민첩함은 어딘가 미궁속으로

자꾸 숨어들어가버린 듯한 느낌이다.

유모차도 챙기고, 혹시나 해서 아기띠도 챙기고,  

카시트 장착시키고, 기저귀 가방에 간식 챙기고.

빠진 게 없을까 아이 여벌 옷도 챙겨놓고,

그렇게 출발했을 길이었을 텐데.

결국 남편의 차 위에 걸쳐 놓았던

아들의 신발을 뒤로하고

어쩔 수 없이 우린 달렸다. 눈물겨운 이별.


아이에게 더 좋은 볼거리를 위해 나서던 우리 부부의 주말!

그 나들이길에서 세 살 아들의 귀염 뽀짝 하던

크록스 펭귄 겨울 신발과는

영영 생이별을 고해야만 했다.


©Jill Wellington, 출처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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