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도 아버지가 되어 간다 -
나이가 들어선 지, 계절 탓인지 오늘따라 등이 너무 가렵다.
아들 녀석에게 등을 긁어 달라했더니
"더러워, 내 손톱에 아빠 등 때 끼어 싫어"
정색을 한다. 잔소리 들을 것을 알기에 몇 번을 망설이다 아내에게 조심스레 등을 들이밀어 본다.
내 기억에는 한 달에 한번 정도나 될 듯한데 또 등 긁어 달라하냐며 여지없이 잔소리를 해댄다.
“에이 놔둬. 그만해”
소리치고는 걷어 올렸던 웃옷을 내리고 자리에 앉았더니 어설프게 몇 번 긁어선지 긁기 전보다 몇 배는 가려움이 더하다. 어렵사리 효자손을 찾아 내가 직접 긁고 나서야 가려움이 덜해진다. 효자손으로 잘 닿지 않는 구석을 시원하게 긁어보려고 등을 구부리고 몸을 뒤틀어 보는 내 모습에 자꾸 서글퍼진다.
내가 어릴 적에는 효자손이 필요 없었다. 등이 가려울 땐 언제나 아버지의 커다란 손이 내 작은 등을 서너 번만 휩쓸고 가도 어찌 그리 시원하던지..
효자손으로 긁는 것보다 몇 배는 시원했었다.
아내는 등을 긁어 줄 때도 몇 번 체면치레만 하곤 내 간지러움이 해결되었는지는 묻지도 않고 자기가 알아서 그만둬버린다. 아버지는 내가 됐어요 해도 몇 번을 더 긁고 그만하신다.
아버지 손으로 등을 긁을 때면 왜 그리 시원할까 하는 생각으로 아버지의 손을 자세히 본 적이 있다. 농사일로 갈라지고 갈라진 틈마다 시커멓게 물이든 거칠어진 아버지의 손은 어린 내 눈엔 그저 등을 긁을 때 시원했던 이유에 대한 해답을 얻었다는 것 외에는 별다른 느낌을 주지 못했다.
내가 어른이 다음에야 그때 아버지의 손이 내 발바닥보다 거칠었구나. 갈라진 틈새마다 아버지의 한숨과 진한 고달픔이 배어 그리도 시커멓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가끔 아버지의 행복은 무엇일까? 아버지가 생각하는 행복 속에 아버지 자신과 관련되는 부분이 얼마나 될까? 내가 두 아이의 아버지로 살아가는 지금 가끔씩 그 물음에 대한 답을 지금의 내 모습에서 발견하곤 한다.
내가 결혼을 한 후 언제부턴가 아버지는 이런 얘기를 몇 번 하셨다. 어떤 아들이 있었는데 결혼을 하고 자식을 낳은 후에 자기 부모에게 너무 소홀히 한지라 어느 날 그 아버지가 이렇게 물었다고 한다.
"얘야 그렇게 니 아들이 이쁘냐. 나도 너를 그렇게 키웠다"
했더니 그 아들이 하는 얘기가
"에이 아무리 그래도 이만큼 예뻤겠습니까?"
하더라는 얘기를 하고 웃으신다. 그때마다 먹을 것이나 옷을 살 때면 아들 녀석 것이라면 ‘제일 좋은 것으로 주세요’를 먼저 외쳐대다가 부모님 것을 살 때면 나도 모르게 가격표에 눈이 먼저 가있는 속마음을 들킨 것 같아 죄송하곤 했었다.
몇 년 전에 돌아가신 외할머니는 항상 아버지, 어머니와 전화를 하실 때면 악을 쓰다시피 통화를 하셨다. 잘 있다고, 건강하다고, 행여 목소리에서 외할머니의 건강이 묻어날까 봐, 그래서 아버지나 어머니가 걱정할까 봐 구십이 넘으셔도 몇십 미터 밖에서 족히 들을 수 있는 큰 목소리를 내기 위해 악을 쓰다시피 하셨다. 아버지, 어머니 역시 항상 큰 목소리로 전화를 하셨다. 외할머니가 귀가 어두우신 것도 아닌데, 행여 찌든 삶을 들킬까 봐 항상 그렇게 하셨다.
지금은 아버지와 어머니께서 나에게 그렇게 하신다. 죽을 고비를 몇 번 넘기시는 동안에도 항상
"나는 잘 있다. 걱정 말아라"
라는 얘기 외에는 들어 본 말이 없다.
내 나이가 나이인지라 요즘 주변 사람들 조문 가는 일이 부쩍 많아졌다. 사람들이 그만큼 사셨으면 호상(好喪)이네요 할 때면
‘부모 죽음을 호상으로 받아들이는 자식이 어디 있답니까’
라고는 했지만 속으로는 천수를 누리셨으니 복 받은 것 아닌가 생각하곤 했었다. 그러다가 남들이 얘기하는 호상에 어울리는 나이가 내 아버지의 불과 몇 년 후 나이인데 하는 생각에 가슴이 서늘해지곤 한다.
자고 일어나서 아버지하고 불렀을 때 아버지의 대답을 듣지 못하는 것을 내가 감당할 수 있을까? 지극히 당연한 세상 이치지만 두렵기만 하다.
오늘도 몇 번을 다짐한다.
아버지하고 불렀을 때 ‘오냐’ 대답해줄 수 있는 지금 잘하자. 한번 더 불러보고, 한번 더 얼굴을 보고, 한번 더 안아드리자. 설령 지금 내가 조금 힘들고 경제적으로 부담이 되더라도 그것은 내가 감당하면 될 내 몫이고, 다시 되돌릴 수 없는 아버지 몫을 조금이라도 채워 드리자. 다짐하고 또 다짐한다.
어쩌면 이런 생각들이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내가 좀 더 후회하지 않기 위한 지극히 이기적인 마음에서 비롯된 것은 아닌가 싶을 때도 있다.
언젠가 내 아들 녀석이 가정을 꾸리고 자식을 낳으면 아마 내 마음속으로 이렇게 물어볼 것 같다.
"얘야 그렇게 니 아들이 이쁘냐. 나도 너를 그렇게 키웠다"
몇 년 전에 썼던 글을 올려 봅니다.
저는 오늘도 여전히 효자손으로 이리저리 긁고 있습니다. 효자손은 침대에 1개, 소파에 1개, 차에 1개, 사무실 책상에 1개, 가방에 1개 놔두고 삽니다.
집사람이나 아들 녀석과 등 긁어달라 말씨름하는 것보다 이렇게 어디서나 손을 뻗으면 잡을 수 있도록 효자손을 여러 개 갖고 있는 것이 제일 낫더군요.
아들 녀석에게 우스갯소리로 내가 죽거들랑 효자손을 꼭 같이 묻어 달라고 했습니다. 내 발바닥보다 거친 아버지 손에 뺨이라도 부비고 싶은 오월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