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bigjeje Nov 29. 2023

풀빵 엄마의 기도

무의미한 연명치료는 바라지도 못하지만

너만 느낄 수 있다면

또다시 내일이 나에게 있기를


병든 몸하나 비빌 곳 없어

자식에게 부끄러운 마음

감히 신에게 조차 청할 수 없이

생명은 이제 나의 손을 벗어나

불빛 하나의 바람도 의미를 잃어간다.


아들아

너를 위해서라면 다시

불가능에 저항하며

길 위에 나를 세운 체

식어가는 풀빵과 눈 오는 밤을 새우련다.


딸아

너를 위해서라면

영원하지 않다고 해도

내일이 또다시

나의 날이 되기를 기도해 보련다.


해마다 바람이 스산해지고 눈발이 날리면 기억의 캠퍼스에는 하나의 풍경이 그려진다.

아니 어쩌면  붕어빵을 굽는 작은 천막이 여기저기 보이기 시작하는 겨울의 초입부터 이미 스케치는 시작되었는지도 모른다.

그리 번화하지 않은 동네 골목에서 가로등을 불빛 삼아 인적이 끊어진 늦은 밤까지 풀빵을 구우며 자리를 지키던 젊은 엄마의 모습이다.

그 앞에서는 추위를 장난감 삼아  놀던 어린 두 남매가 있었다. 상상만으로도 가슴이 뭉클한 그 장면에 두 남매의 빼어난 외모가  아름답게 잘 구성된 드라마처럼

더 큰 슬픈 감정을 불러일으켰다.


그녀를 처음 알게 된 것은 2009년 휴먼다큐 <사랑> ‘풀빵엄마’라는 방송에서였다.

그녀는 싱글맘으로 남매를 위해 풀빵 장사를 하며 열심히 살고 있었다. 추운 겨울에 풀빵을 굽는 그녀와 추위에서도 엄마 곁을 떠나지 않고 주위를 맴돌던  어린  남매의 모습이 잠시 그들에게 관심과 특별한 감정을 머물게 했지만 그저 이웃을 염려하는 어느 방송인의 뜻깊은 방송이었다는 것으로 잊혔졌었다. 그런데 불과 얼마 후 그녀가 두 남매와 다시 방송에 등장했다. 그때 그녀는 위암선고를 받은 상태였고 그 상황에서도 추운 겨울 남매와 함께 여전히 풀 빵을 굽고 있었다.

아파하는 엄마의 몸을 주물러 주는 아이들의 작은 손에 그녀의 생명이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암이 그녀를 고통스럽게 하는 것보다 그녀를 더 아프고 힘들게 한 것은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아이들에게 짐으로 남겨놓고 떠나야 하는 것이었다. 그때 두 남매의 나이 겨우 어린이 집을 가야 하는 정도였던 것으로 기억된다.

방송을 본 모두 사람들의 바람과 응원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끝내 세상을 떠났다. 그때 그녀의 나이 서른 여덟이었다.


”살고 싶다는 것은 한낱 희망사항이 아니라 엄마로서 해야 하는 최소한의 의무이자 책임입니다. “


살아가는 것! 생명이란 온전히 자신만의 개별적인 것이기도 하지만 그녀에게는 다른 생명을 지킬 수 있는 또 다른 소중한 요소였다.

아직은 가족 곁을 지키고 있는 나의 살아있음에 감사하고, 나의 가족이나 친구, 지인은 물론  이 세상 생명을 가진 모든 존재에게 경이로움과 고마운 마음이 들며 동시에 그녀의 아이들이 궁금해 진다.

하지만 그들의 소식을 직접 알 수는 없기에 그럴 때마다 인터넷을 통해 그들의 근황을 찾아보곤 했다. 특히 겨울의 길목에 서면 그들의 안녕이 마치 떨어져 사는 가족의 안부처럼 누군가에게 묻고 싶어 진다.


지금 그 남매는 풀빵 엄마의 여동생이 키우고 있고 벌써 고등학생이 되었다. 이 소식도 오랜 전에 들은 소식이니 어쩌면 대학생이 되었거나 이미 직장인으로 자신의 몫을 잘하며 지낼 것 같다.

유난히 추운 오늘 아침 그들을 기억하는 나의 마음이  창가를 벗어나는 순간 세상의 따뜻한 온기가 되어 그들에게 닿기를 기도해 본다.

사랑을 담아서...








매거진의 이전글 그녀의 선택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