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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네팔기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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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igjeje Mar 05. 2024

네팔 기행 2

마지막 강을 건너면 우리는 같은 모습으로 만나리니

지나간 해를 죽음이라고 말한다면  너무 섬뜻한까?

우연히 해를 넘기기  전날 찾아가게 된 네팔 카트만두의 파슈파티나트 사원

네팔 바그마티 강변에 자리한 힌두 사원으로 세계에서 가장 신성한 사원 중 하나로 알려져 있어 하루에도 수천 명이 이곳을 찾는다..

이방인인 나는 기도하는 성전 안으로  들어가 볼 수는 없었지만 사방으로 길게 늘어선 줄을 보니 허락한다 해도 엄두도 내지 못할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큰 사원  안 팍으로 들어차 있었다.

헤아릴 수 없는 숫자였지만 그들의 모습은 차분했고 수천 명이 모인 사원 또한 믿기지 않을 정도로 귀에 거슬리는 소음 하나 없이 조용했다.

게다가 그 사원을 들어서는 사람은 물론  줄을 선 사람들 모두가 맨발로  다니고 있어 그들의 신앙에 대한  마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사원을 어느 정도 둘러보고 나와 입구 왼쪽으로 돌아서 가니 바그마티 강변이 눈에 들어왔다.  마침  응급차가 입구를 막고 있어 비켜서는데 한구의 시신이 노란 천에 싸여 들것에 실려 옮겨지고 있었다.

삶의 안녕을 기원하는 사원과  삶의 마지막을 정리하는 아라얏 갓이라는 화장터가 바그마티 강변에  벽 하나를 경계로 나란히 자리 잡고 있었다.

마치 인도 바라나시 갠지스강변에 자리한 힌두교의 성지와 화장터를  작게 축소해 재현해 놓는 듯한 모습이다. 하지만 겐지즈강과는 달리 강폭은 작고 깊지 않아 웬만한 개울을 연상케 했다.


그런 강을 중심으로 한쪽에서는 가족의 마지막길을 지켜보며 죽음을 애도하는 무리와 작은 다리를  건너면 반대편 강가에서는 자신의 운명을 미리 점쳐보려는 사람들이 점술가를 중심으로 모여 앉아 있다.

관광객인 듯한 사람들 또한 그 무리에 가세해 귀를 기울이고 있는 모습이 자신의 차례를 기다리는 것 같았다.

작다기보다는 협소하다는 표현이 맞을 것 같은 강을 경계로 삶과 죽음이 한자리에서 매일의 일상을 같이 하고 있었다. 샛노란 천을 덮은 죽음은 산 사람들의 손에 이끌려 연이어 나라비를 서고 있다.

그 가운데 처음부터 유독 눈에 들어오던 화려한  꽃문양으로 장식된 천을 덮은 죽음에게  장의사가 곧 화장할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먼저 가족인 듯한 사람들이 하나씩 내려와  강물로 발을 씻기는 모습이 보였다. 이승에서의 가족들의 마지막 배웅이리라.

환생을 믿는 그들이 사랑하는 사람을 보내는 마지막 절차는 통곡 소리대신 정성을 다하는 침묵의 몸짓에 더욱 진하고 깊은 슬픔이 전해져 왔다.

조용한 가운데 마지막 인사의 의례가 끝나자 영혼을 하늘에 올린 빈 육체가  화려한 꽃무늬 옷의 매무새를 가다듬고 장작더미에 오르니 그 위에 기름이 뿌려지고 곧 불길이 요동을 치며 치솟기 시작했다.

죽은 자의 마지막 몸부림이 그 불길에 가려져 보이지 않았지만 바라보는 이방인의 마음에는 두려움과 경이로움의 소용돌이에  잠시 넋을 읽고 빈자리에 주저앉았다. 하지만 그 모습을 지켜보는 가족은 그 누구도 눈물을 보이거나 작은 신음소리조차 내지 않았다. 그리고 곧 강변 한쪽에 자리를 잡고 남자들은 윗옷을 모두 벗고 머리를 삭발하기 시작했다. 여자들은 준비해 온 음식을 넓적한 나뭇잎을 그릇 삼아 그 위에 나누어 놓았다. 그리고 그들은 죽음이 장작나무와 함께 한 줌의 재가 되기까지 걸리는 긴 시간을  이승을 떠나는 죽은 자의 편안한 안녕을 기원하며 경전을 읽기 시작한다.

힌두교 사제가 함께 하며 그 과정을 이끌고 있었다. 역시 경전의 외마디 소리조차 들을 수 없는 조용함 속에 진행되고 있는  그들의 모습을 지켜보는  나의 시간도 공간도 그리고 주위의 사람들도 한 동안 침묵 속에 멈추어 있는 듯했다.


죽음에도 빈부의 차이는 있었다. 그곳은 그 차이를 한눈으로 보고 느낄 수 있을 만큼 가까이 같이 존재했다. 몇 발자국 안가 만나게 되는 또 다른 다리에  올라서니 허름하고 누추한 천막 같은  집들이  작은 무리를 이루며 살고 있는 것이 보였다.  주변은 썩어가는 쓰레기 무덤이 울타리를 대신하고 있어 오히려 화장터 보다도 더 메스꺼움이 느껴져 졌다. 그리고 그 반대 편에는 눈에 띄게 높은 굴뚝 말고는 특별해 보이지 않는 허름한 건물이  그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집과 정면으로 마주하고 있었다.


인도에서는 갠지스 강에서 자신의 생을 마감하는 것이 삶의 목표일 정도로 그들은 갠즈강에 자신의 유골을 뿌리는 것에 큰 의미를 둔다. 그래서 그들의 삶에는 신이 큰 비중을 차지하고 일상에서도  큰 부분을 차지한다. 하지만 가난한 사람들은 죽어서도 그 강에서 자신의 죽음을 마무리할 수 없다. 그 과정에 들어가는 비용을 감당하지 못해서라고 한다. 그러다 보니 잘 처리하지 못한 죽음들이 불법적인 경로를 통해 그 강에 흘러들어오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갠지스강에 뿌려지기 위해 미리 그곳에  찾아와 죽을 날을 기다리고 있는 노인들을 여행 중에 만나는 것이 그리 어렵지 않다.

네팔 또한 죽어서  바그마티 강에 뿌려지기를 원한다. 그러기 위하 가장 신성한 절차는 고인을 그 강에서 씻겨 가족이 바라보는 가운데 보내는 것이다. 하지만 그 절차에 들어가는 비용이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엄두도 낼 수 없는 비용이 든다. 그래서 선택하게 되는 곳이 높은 글뚝이 서있는 건물의 화장터이다. 그곳의 현지인 말로는 빈부의 차로 인해 장례문화도 차이가 나지만 현대에는 관습을 고집하는 보수적인 사람과 절차의 간편함을 선호하는 부류로 나누어진다고 한다. 하지만 장작을 사용하는 다비식 같은 방식은 역시 비용이 만만치 않아 가난한 사람들이 하기에는 힘들다고 이유를 덧 붙였다.

잠시였지만 줄지어 있는 시신 위에 화려한 금빛 천이 있는가 하면 평범한 노란색의 천도 있었다. 그런가 하면 조금 전 나의 눈에 들어왔던 그 죽음에는 화려한 꽃이 하나 가득 수놓아져 있어 보기에도 값이 나가보였다. 한지리에서 눈으로 그 차이를 가늠했지만  모두  흐르는 작은 강 물줄기에 뿌려져 가는 곳은 같은 방향을 향해 흘러갈 것이다.

전통 방식으로 장례식이 행해지는 곳과는 다르게 기계식의 화장터에는 사람의 발길이 없었다. 겨우 한 가족만이 작은 벤치에 앉아 모든 절차가 끝나기를 기다리고 이었다. 그들이 낮선 이방인의 방문에 의아한 얼굴을 하고 돌아볼때 그제야 나는 죽음을 관광하고 있다는 인상을 주는 것 같아 그곳을 멋쩍고 민망한 마음으로 급하게 자리를 벗어났다.


아무생각없이 발걸음을 재촉하다보니 어느새 화장하는 것을 아주 가까이에서 볼 수 있는 곳으로  접어들고 있었다. 건너편에서 볼 때와는 다르게 그곳의 통로는 매우 좁았다. 더구나 장례 절차가 끝나기를 기다리는 가족들과 구경하는 사람들로 좁은 길은 빠져나갈 틈도 없이 붐볐다.

한눈을 팔지 않고 재빠르게 그곳을 빠져나오고 싶었지만, 나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한 장작더미에 누워있는 죽음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표정이 사라진 얼굴은 언뜻 보아도 검게 변해 있었다. 내가 기억하는 어머니의 창백한 죽음과는 매우 다른 모습이었다. 그 양옆에서 타오르는 장작더미에서는 검은 재가 이리저리 바람에 날렸다. 몸을 털어 낸 영혼이 어수선한 사람들의 무리를 벗어나 청명한 하늘을 향해 거침없이 날아오르는 것만 같았다. 익숙하지는 않지만, 짐작이 가는 냄새에 호흡을 잠시 멈춘 채 빠르게 걸음을 옮겼다. 그럴수록 몸에부딪치는 사람들에 밀려 그만 한 호흡이 풀어지며 흩날리는 연기와 냄새가 순간 나의 목을 타고 몸 깊숙이까지 흘러들어왔다. 나도 모르게 뱉어내려던 호흡은 박자를 놓치는 순간 더 길고 깊은 호흡으로 그곳의 공기는 한껏 들어마셔버렸다.순간 나는 죽음을 마시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재가 된 영혼은 나와 동행하려 날아들고 있는 것만 같았다. 먼저 이곳을 다녀간 지인이 반드시 마스크를 준비해 가라던 말이 떠올랐다.

의외였다. 속이 매스꺼울 만도 한데 오히려 메마른 입을 축이려 마른침을 삼켰다. 놀랄 만도 한데 두려움보다는 그저 곁에 스치고 지나가는 누군가 중 하나같아 신경 쓰이지 않았다.

세상 밖에서 존재하는 삶과 죽음에 대한 편견이 이곳에는 없는 것 같았다. 이곳, 이 순간만큼은 두려운 죽음도 내 삶의 일부인 것을 서스름없이 품고 있었다.  입구에 도착해 고개를 돌려 내가 지나온 길을 돌아보니 막  한줌의 재가 된 육체가 바그마티 강에 뿌려지고 있었다. 바그마티의 강줄기는 겐지즈강을 향해 흘러들러 간다고 하니 힌두교인 네팔 사람들이 바그마티 강에 뿌려지기를 원하는 이유가 더욱 마음에 와 닿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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