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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네팔기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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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igjeje Jan 15. 2024

bigjeje의 네팔 기행

마음공부를 위한 여정의 길목에서

이 시간을 위해 4년에 가까운 기다림의 시간이 필요했다. 불가능에 더 가까운 기다림이라 그 시간이 주어졌을 때 결정을 하는데 생각할 시간도 갈 수 없는 이유도 찾을 필요없었다. 유럽의 크리스마스 마켓 투어를 위해 거의 일 년을 기다려온 독일에 있는 딸과의 약속도 이 여정을 포기할 이유가 되지못했다. 딸에게 양해를 구하니 다행히 이런 기회를 놓치지 말라며 용기를 보탰다.

한 해를 마무리하기 위해 미리 세워 놓았던 크고 작은 일정들을 포기하고 밀쳐버리게 한 네팔로의 출발이 결정 되었다. 결혼 이후 연말연시만큼은 어떤 이유에서든 같이 보내기로 했던 가족과의 약속도  깨지는 순간이다. 약속이란 지키기 위함이라고 하지만 한번쯤은 깨 볼 수 있는 나 자신의 특별한 이유가 있다는 것도 그리 나쁘지는 않았다. 오히려 말로만 하던 가족이라는 집단으로부터의 자유를 이제야  실천해보는 기분이 들며 나라는 존재에 집중하는 순간이기도 했다. 빠른 결정의 숨은 그림자 같은, 남편 혼자 새해를 맞이하게 해야 하는 미안한 마음의 갈등이 아주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 갈등의 극복 또한 내 변화에 한 설정이자 한 장면이었다.  출발을 위해 인천 공항으로 들어서는 발걸음은 앞으로의 일정에 대한 기대감으로 어느 여행보다  설렘의 진동이 컸다.


4년 전 방글라데시 봉사팀에서 네팔의 싱잉볼을 배우자는 제의가 있었다. 네팔에서 직접 선생님을 모셔오고 그분을 통해 싱잉볼도 단체로 구입하자는 것이었다. 평소 신비한 싱잉 볼의 울림과 소리에 매력을 느끼던 나는 큰 기대를 갖고 그 제안에 주저 없이 참여할 의사를 보냈었다. 모든 일에 적극적이고 추진력이 있는 분의 제안이라 곧 싱일 볼을 배울 수 있을것이라는 기대로 하루하루 시간을 재며 기다렸다.

그때 세계적으로 코로나의 움직임이 커지고 있는 상황이었고 그 기다림은 세계의 길문이 닫히며  네팔의 선생님도 결국 한국에 올 수 없게 되었다. 그리고 세계는 한 동안 교류가 차단되었고 싱잉볼에 대한 기대도 점점 마음과 머릿속에서 사라졌다. 그렇게 무산되었던  계획이 어느 날 다시 추진력 좋은 그 리더의  오랜 작업으로 오늘 나는 네팔의 비자를 받아 들고 출국을 위해 인천 공항에 오게 되었다. 싱잉 볼을 다시 배우게 된것도 흥분되는데 게다가 그 일정 전에 안나푸르나 등반이 예정되어 있다고 하니  걱정도 되지만 기대감의 수위는 이미 높을때로 높아져 있었다.


공항은 사람을 흥분시키거나 마음을 가다듬게 하는 보이지 않는 마음 컨트롤의 에너지 장이 흐른다. 새로운 세상에 대한 기대감과 미지의 것 대한 낯가림을 극복해야 하는 조심스러움도 있다. 나는 이 이중성의 모험을 즐기며 좋아한다.

늘 새로운 장소에 대한 호기심이 있고 새로운 나라가 품고 있는 새로운 세상의 품을 그리워한다. 그 품에 대한 따스한 경험이 식어가기 시작하면 말이 없어지고 우울이 찾아온다. 그럴 때 누군가는  남편과 갈등이 있는지 생활이 궁핍하지는 않은지 아주 조심스럽게  안부를 물어온다. 나는 차마 길을 떠나고 싶어서라고 새로운 세상이 그리워서라고 말하지 못한다. 나는 결코 모험을 즐길 것 같은 예측을 할만한 그 어떤 성향도 갖추고 있지 않다. 어느 누구도 내가 바라보는 세상을 집작 할 만큼 이야기를 꺼내지도 못한다. 그저 마음 깊숙한 곳에 자리 잡은 나만의  들판에서 혼자  나만의 세상의 반경을 그어보고 그 들판을 내 달려 볼 뿐이었다.

지금 그 들판의 반경 안에서 또 다른 나의 시선이 머물러  있던 신의 땅 신이 허락하지 않으면 밟아 볼 수 없다는, 히말라야 산맥아래 놓인 시바 여왕의 땅 네팔에 가기 위해 인천 공항에 도착했다. 여느 때처럼 나에게는 여행천사의 수호신이 동행하고곳있다는 것을 믿어 의심치 않으며 가볍고 호기롭게 일행이 있는 곳으로 다가갔다.

여행의 목적보다는 마음공부라는 작지만 의미 깊은 주제를 가지고 함께 이 여정을 계획한 사람들이다. 아는 사람도 있지만 몇몇은 처음 대면하는 자리라 마음의 흥분을 누른 체 인사를 건넸다. 그리고 동시에 먼저 출국 수속을 위해 양해를 구하고 그 자리를 벗어났다. 네팔 공항에서부터는 같이 움직여야 되겠지만 개인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은  스스로 처리를 하는 것이 주도하는 리더의 수고를 조금이나마 덜어 줄 수 있기에  준비된 사람부터 수속을 먼저 하기로했다.


잠시 줄을 서서기다리다 내 차례가 되어 여권을 내밀자 직원이 한참 여권을 살피더니 다른  곳을 가리키며 그쪽으로 가라고 안내를 했다. 잦은 여행이지만 한 번도 어려운 상황을 경험해보지 못한 터라 별다른의문 없이 다른 직원에게 여권을 보여주었다.


‘여권의 앞장이 조금 훼손되었네요. 이런 경우 입국하는 나라에서 입국이 최고 될 수 있습니다. 네팔의 경우는 안 그럴 수도 있지만 저희가 그곳에서 여권 문제로  입국을 허가하지 못하는 것까지 책임을 질 수는 없습니다. 만약 여권이 훼손되었다는 이유로 입국이 거절되어 공항에서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야 하는 상황이 생길 수도 있습니다. 고객님이 그것을 감안하시고 그래도 가시겠다면 발권과 출국은 도와 드릴 수 있지만 그 이후에 일어나는 문제에 대해서는 저희가 책임을 질 수 없습니다 ‘

갑작스러운 상황에 한국말이지만 해석이 잘 되질 않았다. 여권이란 단지 다른 나라를 방문하기 위해 내 나라에서 국민을 위해 보증하고 허가해준 증명서라고 알고 있는 이 이해력에 갑자기 다른 부분까지 이해하고 게다가 나라가 책임질 수 없는 선택하라는  직원의 애매모호 하지만 단호한 설명에  나는 빠르게 내 머릿속을  정리하고 결정을 내려야 했다. 여권에 대해 출 입국에 대해 전문가라고 알고 있는 공항의 직원이 안되면 차라리 명확하게 거절을 해쓰면 하는 불편함이 올라왔다. 이런 설명을 듣고  결정을 하라고 하면   아무리 여행이나 모험을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해도 해도 기꺼이 돌아올 것을 감당하면서까지 내 나라를 떠날 사람은 과연 얼마나 될까. 그것도 언어가 통하지 않는  것은 물론 그 나라에 대한 어떤 정보도 가지고 있지 않은 중년의 여성이 말이다.

난 그 순간 평범한 주부라는 자각과 함께 순간 다른 사람들이 겪었다던 에피소드가 드디어 내게도 찾아왔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그러면서 한 편으로는 출발하기까지 나를 갈등에서 밀어내지 못했던 연말이라는 시간과 혼자 있을 것 같은 남편, 크리스마스와 연초에 두 번이나 있을 연휴 등이 머리를 스쳐갔다. 그리고 어쩌면 잘 된 일일지도 모른다는라는 생각이 당황스러운 마음을 추스르게 했다. 이미 마음은 집으로 돌아갈 준비를 하고 부치려던 짐을  챙겨 일행이 있는 곳으로 다시 돌아왔다. 내가 다가갔지만 모두 자신들의 일에 집중하고 있어 다시 돌아온 나에 대해 궁금해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핑계가 생겼으니 그냥 집에 돌아가야겠다는 생각이 더 강하게 나의 빠른 포기와 결정을 합리화시켰다.

우선  모든 것을 담당하고 있는 리더에게 다가가 여권의 문제를 얘기했다. 비자를 내기 위해  여권을 우편동봉을 해서 보냈던 것이 그곳에서 관리 소홀로 여권이 훼손된 것 같다는 결론을 내렸다. 비자를 담당했던 직원에게 전화를 했지만  변명만 늘어놓을 뿐 곧 비행기 시간은 다가오는데 해결 방법은 없었다. 집에 다시 돌아가면 오히려 좋아할 것 같은 남편의 모습이 떠올라 조금 위로도 되었지만 갑자기 가슴 한쪽에 찬바람이 불며 묘한 몸의 이상기온이 도는 것이 느껴졌다. 뜨거운 한기로 몸은 추웠지만 이마에서는 어느새 땀이 흐르고 있었다. 마음과 몸이 서로 다른 선택을 놓고 갈등하고 있었다.


리더와 나의 표정을 읽은 사람들이 구경꾼처럼 다가왔지만 어느 누구도 적당한 해결 방법을 내놓지는 못했다. 나보다 더 난감해하는 일행의 침묵에 공항의 소음도 함께 묻혀 나는 잠시 아무것도 들을 수가 없었다. 사람들의 움직임도 정지된 듯했다. 그것은 마치 마비된 듯한 나의 정지 상태였다.  

그때 개인적인 일로 같이 동행하지 못하는 일행 중 한 분이 떠나는 우리를 배웅하기 위해 나왔다가 이 상황을 알게 되었다. 우선 그분은 황당한 상황에 잠시 생각이 정지되어 있는 나를 위로하고 안심시켰다.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아직 비행시간까지는 여유가 있으니 방법을 찾아봅시다.’


그의 말이 허공에 날리는 먼지처럼 눈에 보이지도 귀에 들리지도 않았다.. 그러면서도 그의 위로가 다시 뭔가를 생각해 보도록 나의 의식을 깨웠다. 아니 아무런 대안 없이 침묵으로 일관하는 사람들과는 달리 뭔가를 해보려는 그의 움직임에 고정되었던  나의 긍정채널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일단 내가 안내에 가서 물어보고 올게요. 혹시 긴급여권을 낼 수 있는 데가 어디인지, 공항에서  이런 상황에서 임시여권을 만들 수 있다고 들었거든요,’


그는 직접 안내 데스크로 다가가더니 바로 아래층에 정보 관련 사무소가 있다며 나와 같이 가보자고 했다. 같이 가면서도 그는 별일 아니라며 계속 나를 안심시켰다. 여유롭고 밝은 그의 표정과 자신감 있는 말투에 덩달아 나도 다시 기분이 처음 상태로. 뒤돌아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우리가 찾아간 사무실에는 여권을 그 자리에서 발급받기 위해 기다리는 사람이 나 말고도 몇 사람 더 있었다.

집에서 여권을 잊어버리고 안 가져왔거나 나 같이 출국 직전에 여권에 문제를 발견한 경우 긴급 임시 여권을 발급받을 수 있었다. 2시간 가까운 시간적 여유가 필요했다. 다행히 일찍 공항에 나와서 빠르게 서두른 덕분에 비행기 출발 시간에 촉박하기는 했지만 긴급여권을 발급해 줄 수 있다는 직원의 답변을 듣게 되었다. ‘간만의 차이‘라는 말이 이때 쓸 수 있는 말일까. 한 20여분 정도만 여유가 없었어도 긴급 여권 발급은커녕 신청조차 불가능했을 상황을 생각하니 저절로  안도의 숨이 쉬어졌다. 그러면서 이런 절차가 있다는 것을 새롭게 알았다는 것이 흥미롭고 신기했다. 새로운  여권 발급을 기다리는 내내  그분은 내 옆에서 초조해할 것 같은 나를 위해 재미있고 흥미 있는 대화거리를 건네며 끝까지 함께 해 주었다.

그동안 그렇게 여행을 하면서도 처음 만나게 되었던 위기였지만 이 위기는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는 상황이었다. 새삼 그동안 별 탈 없이 지나간 여정들이 감사했다. 그리고 오늘 이 순간의 사건은 마음의 준비를 시키기 위한 또 하나의 값진 경험이었다. 무엇보다도 이런 상황에 곁에 있어준 그분의 등장이 나에게는 예사롭지 않다는 상상의 나래를 다시 펴게 했다.


나에게는 여행의 수호천사가 동행하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자신이 동행하지 않는 여행의 여정에 홀연히 나타나 나를 도와 준 그분은 봉사활동이 일상이자 삶이 된 목회자이다. 목소리가 밝고 표정이 좋은 젊고 유능한 목사님이다.  자주 만나지는 못하지만 이렇게 우연히 만나게 되는 상황이 되면 나를 친구처럼 다정한 누이처럼 대해주는 인품 좋은 분이었다. 그리고 작은 나의 능력을 한껏 높여주어 나에게 힘과 용기를 주는 사람이었다. 그가 생각지도 못한 자리에 홀연히 나타나 발목이 잡힐뻔한 여정의 길목에 희망을 보게 하고 길을 열어주었다.


나는 인간의 삶은 나의 주관대로 흘러가지 않는다는 것을 느낀다. 누군가의 도움과 힘이 없이 나의 인생의 페이지는 만들 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알기에 사람에게 감사하고 사람에게서 사랑을 보며  그 사랑에 화답하고 싶다. 오늘 또 다른 나의 인생 목록에 한 주제를 선사해 준,  미지의  길로 떠나는 길목에서 만난 구세주 같은 그분을 보며, 이 여행의 목적이 배움으로 끝나지 않으리라는 것을 예감한다. 세상을 보고 사람을 만나 마음을 보내며 배움과 함께 그들에 대한 삶의 이야기를 담아 오겠다는 새로운 다짐을 한다.

나는 이렇게 네팔, 짐작도 못하고 있는  신의 보금자리 안나프르나를 향해 긴급 여권을 받아 들고  다시 짐을 챙겨 수속을 시작했다. 목사님에게 고맙다는 말 대신 목사님의 친절과 사람에 대한 사랑을 나도 실천으로 옮길 수 있도록  사람들의  이야기를 찾아오겠다는 다짐을 인사로 건네며 출국장으로 향했다. 막 받아온 긴급여권의 푸른색이 곧 눈아래 펼쳐질 망망대해의 깊은 바다색처럼 맑고 진했다. 나는 주저 없이 언제나처럼 지문 확인을 마지막으로 급하게  떠나야 할 사람처럼 긴급여권을 손에 쥔 체   탑승장 게이트를 찾아 바삐 발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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