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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igjeje Mar 11. 2024

네팔 기행 3

하늘에서 만난 안나푸르나

카트만두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드디어 걱정과 기대를 가지고 기다리던 안나푸르나 트레킹을 위해 포카라로 출발하는 날이다.

한국에서 출발할 때 한해 막바지인 12월에 일정을 잡은 터라 추위가 걱정됐었다.  설산을 보겠다는 욕심에 한 겨울의 추위도 문제 삼지 않고  방한복을 사는데 온 신경을 써서 준비했다. 예상과는 달리 산만 아니라면 방한복속에  히트텍을 입는 것으로도 충분히 견딜만한 기온이었다. 안나푸르나 등반을 시작하려면 반드시 거쳐야 하는 관문 중에 하나인 포카라는 더 기온이 높다고 하니 추위에 대한 걱정은 내려놓아도 될 것 같았다.

한 밤중에 도착한 카트만두 공항은 웬만한 큰 도시의 터미널 수준 같다고 생각했다. 누군가는 80년대 김포공항을 연상시킨다고도 했다.  그런 공항이 밤과는 달리  이른 아침부터  그야말로 인산이해를 이루며  크지 않은 공항 앞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그렇다고 지금 이 사람들이 다 비행기를 타는 것은 아니라고 궁금해하는 나에게 가이드가 설명을 했다.


네팔은 아직 한국에 비하면 발전이 늦은 나라여서 외국 노동자로 떠나는 사람이 많다고 한다. 정작 비행기를 탈 사람은 하난데 가족은 물론 일가친척이 모두 배웅하러 나오기 때문에  늘 이렇게 붐빈다고 했다. 한국도 돈을 벌기 위해 사우디나 타국으로 돈을 벌기 위해 가족 누군가가 떠나야 했던 시절이 있었다. 이야기로만 듣던 한국 아버지들의 옛 시절 이야기를 네팔에서 재현해 보는 것 같아 신기하면서도 가슴 한쪽에는 서늘한 공기가 지나갔다. 요즘말로 웃픔 광경이다. 화장터에서도 볼 수 없었던 여자들의 슬픈 눈시울을 공항에서는 볼 수 있었다. 어머니도 아내도 누이도 있었다.  노쇠한 아버지는 조금 떨어진 발치에서 아들을 말없이 바라보고만 있었다.


그들의 이별 장면을 벗어나 포카라로 가는 게이트로 오니 그곳은 매우 한산했다. 히말라야의 등반은 때를 가리지 않지만 그래도 아직은 안나푸르나를 등반하는 성수기가 아니어서인지 사람이 그리 많지 않았다.  조금 전 분위기와는 다르게 모두 배낭을 메고 등산복과 단단한 트레킹화로 중무장을 한 사람들이 밝은 표정으로 서성이고 있었다. 그런 한쪽에서는  허름한 패딩하나에 낡은 운동화를 신은  포터들이 비행기에 실을 짐을 점검하고 있었다. 이제 정말 안나푸르나를 만나기 위해 가는 거구나 하는 생각에 다시 설렘을 안고 비행기에 올랐다.


카트만두에서 포카라로 가는 비행기는 경비행기 정도의 크기였다. 출발 준비를 하느라 비행기 앞에 프로펠러는  굉음을 지르며  온 힘을 다해 돌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니 조금 겁이 나기도 했다. 1년 전 포카라를 출발하던 비행기 사고로 탔던 사람들이 모두 목숨을 잃은 사고가 있었다. 한국 국적의 아버지와 아들이 안나푸르나를 같이 오르기 위해 왔다가 목숨을 잃어 마음을 안타깝게 했었다. 출발하면서 잊혔던 그 기사가 떠올라 긴장감이 몰려왔다. 여행을 하면서  한국의 기술력과 시스템적인 것  무엇보다 일처리 능력이 매우 빠르다는 것을 느낀다.  네팔의 순수하지만 자연 그대로의 백치미도 좋지만  고도의 현대적 시스템이 필요할 때는 불안감을 초래하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역시 순수는 이성을 뛰어넘는 숨은 비결을 가지고 있었다.

비행기가 이륙을 하자마자 눈앞에 이벤트처럼 펼쳐지는 순백의 산맥이 정상에 올라온 태양을 받으며 눈부시게 펼쳐지기 시작했다.

순간 소리마저도, 감탄하려는 외마디 소리를 내지 못한 채, 입이 다물어지질 않았다. 사진과 영상을 통해서만 볼 수 있었던 안나푸르나의 산맥이 비행기 차장 밖으로 길게, 아니 다 눈에 들어오지 않을 만큼 길고 길게 펼쳐져있었다. 가로막는 비행기의 창틀을 부수고 고개를 쭉 내민 채로 전체 풍경을 한눈에 담아보고 싶은 충동이 일어났다.

이런 내 충동과는 달리 비행기 옆에서 속도를 같이하며 따라오는 순백의 산 걸음은 느리고 여유로웠다. 이것은 마치 기장이  느린 걸음으로 비행기를 몰고 있다는 착각을 하게했다.

보일 듯 말듯한  앞 봉우리를 탐하기도 하고 아쉬움에 뒤에 처지고 있는  봉우리를 보려고 고개를 돌려보기도 하며 나는 한 장면도 놓치고 싶지 않아 안절부절했다. 설산맥을 온통 덮은 차가운 흰 눈은 태양을 안은 채 따뜻하고 아름다운 색으로 더욱 빛나고 있다.

신의 허락 없이는 오를 수 없다는 히말라야의 안나푸르나!

하늘에서 만난 봉우리 더마다의 모습은 내가 생각했던 산의 강인함이나 거칠음은  찾아볼 수 없었다. 손에 닿기에도 그리 어렵지 않을 듯 천사의 모습처럼 부드럽고 아름다웠다.


가이드가 반대편 의자에 앉아 제대로 볼 수 없는 사람들을 위해  산맥이 잘 보이는 창가로 오라고 손짓을 했다. 그리고는 시야에서 사라져 가는 곳을 바쁘게  가리키며 봉우리 이름을 나열하기 시작했다.

. 마차푸차레, 1봉, 남봉, 다울라기기 등 정확하게 그 봉우리가 어떤 건지도 모르면서  생소한 봉우리 이름이 하나씩 불릴 때마다 사람들은 환호성을 질렀다. 외국 관광객을 위한 네팔인의 배려가 보였다. 아직은 체계적이지 않고 인정이 우선하는 일하는 모습이기도 하다. 안나푸르나에 대한 자부심일지도 모른다. 그렇다해도 작은 경비행기에서 사람들의  질서 없는 이탈과 오히려 제지가 없는 가이드와 승무원의 인간적인 자유로움이  나는 불편하고 두려웠다. 이러다 작은 비행기가 한쪽으로 기울어질 것 같아 불안하기도 했다. 운 좋게 좋은 자리를 배정받아  설산에 심취해 안정감을 느끼 던  마음이 한순간 불안함으로 변했다.

이제부터 같이할 그룹의 일행과 산행을 하며 겪게 될 불편함 그리고 받아들여할  단체 여행의 실제가 시작되고 있었다.  잠시였지만 편하게 앉아 안나푸르나와 첫 대면을 하게 된 감사함으로 그들과도 안나푸르나의 신비로운 모습을 공유하기로 하니 불편함도 흥분되었던 마음도 가라앉았다.

어느새 포카라 공항의 깃발이 환영한다는 신호를 보내며 힘차게 휘날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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