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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igjeje Mar 22. 2024

오캠으로가는길

네팔기행 4



네팔의 수도인 카투만두에서 약 200km 정도 떨어져 있는 포카라는 호수라는 의미의 도시다. 네팔에서는 2번째로 큰 도시이며 히말라야산맥 남쪽 900m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다. 포카라 시내에 있는 페와 호수는 만년설이 녹아내려 만들어진 호수로 히말라야와 어우러져 매우 아름다운 휴양지로도 유명하다. 추울 것 같았던 포카라의 12월 날씨는 마치 초여름 같은 기온으로 반 팔을 입은 사람들이 꽤 눈에 띄었다. 지구온난화의 영향은 설산의 품에 안겨 있는 포카라도 예외는 아니었다. 적당하게 더위를 품고 반짝이는 페와 호수의 아름다움을 아쉬운 마음으로 간직하고 일행은 첫 목적지 오캠으로 출발했다.      

트레킹이 시작되는 담푸스에 도착해 각자에게 필요한 식수와 간식, 추위에 대비한 여별의 옷과 몸 컨디션을 체크했다. 가장 필요한 것은 나를 지탱해 줄 스틱이었다. 나도 마찬가지였지만 스틱을 처음 사용해 보는 사람이 많아 자신에게 잘 맞게 조정해서 길을 나서야 했다. 나는 한국에서 출발하기 전에 스틱 사용법을 미리 연습 해둔 터라 쉽게 조립할 수 있었다. 고장 난 스틱을 가져와 맞추느라 애쓰는 사람, 서투르다며 누군가가 해 주기만을 기다리고 보고만 있는 사람, 해가 짧은 동절기 산행에 자꾸 늦어지는 시간 정체에 슬슬 짜증이란 녀석이 마음을 건드리며 올라왔다. 준비성 없는 사람들이라 책망하고 싶어졌다. 그럴 수 없어 아닌 척 기다리는 마음에 조급함이 재촉을 했다.


준비가 끝나자, 가이드가 다시 모두를 세워놓고 당부한다. 한국 사람들은 산을 오를 때도 ‘빨리 빨리’의 근성을 버리지 못한다며 서툰 한국말로 일행을 집중 시켰다. 웃음이 터졌다. 마치 산을 경주하듯이 올라 어느정도 시간이 지나면 이미 선수 그룹과 포기 그룹으로 나뉘어 가이드들이 애를 먹는다고 했더. 무엇보다도 산을 오를 때는 자신의 몸 상태를 먼저 생각하고 빠른 사람을 잡겠다는 생각은 매우 위험하고 무모하다고 강조했다. 특히 안나푸르나의 고지에서 만나게 되는 고산병은 위험을 동반하고 있으니 될 수 있으면 같이 보조를 맞추자고 했다. 그러면서 누군가 빨리 가더라도 자신의 속도를 잘 조절할 것을 당부했다.

일행의 트레킹을 위해 산을 안내할 가이드는 네팔 현지인으로 밍마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그는 조카인 다와와 처음 가이드일을 시작하는 새 신입 찌아가 같이 동행할꺼라고 했다. 그리고 산을 오르며 묵을 롯지에서 직접 식사를 만들어 줄 세이프 3명이 이 여정에 같이 했다. 내팔에서 산을 오를때는 가이드가 반드시 필요하지만 역시 포터들의 역할을 빼놓을 수 없다.

식사는 롯지에서 해결할 수도 있었지만, 가이드와 우리 일행, 거기에 짐을 옮겨주는 포터까지  대식구에 대장정의 길이다 보니 하루 세 끼 식사를 책임질 요리사가 동행해야 했다.      

마음을 가다듬고 작은 골목길의 네팔 가옥 사이를 지나 산길로 접어들었을 때 눈앞에 펼쳐 진 첫 풍경은 끝도 없이 이어져 있는 오르막 돌계단이었다. 동시에 탄성인지 외침인지 우려 섞인 한숨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려왔다. 끝도 보이지 않는

돌계단을 바라보며 마음을 가다듬고 있는 우리 일행을 먼저 앞질러 올라가기 시작한 것은 포터들이다. 포터는 곧 네팔의 얼굴이자 문화이며 역사이다. 열명이나 되는 사람의 짐을 카고백에 나누어 짊어지고 우리가 오르는 길을 그들도 오르며 마지막 목적지까지 같이 가게 된다.

나에게는 또 다른 여행에 불과 하지만 그들에게는 일이자 삶의 수단이었다. 아무리 추워도 옷을 많이 입을 수 없는 짐의 두께와 무게, 밑창이 닳은 운동화에 몸을 맡기고 험한 산을 오르내려야 하는 포터들의 여의치 못한 생활이 나에게는 이 일정 내내 마음 쓰임으로 다가올 것만 같았다.

그런 환경에서도 한결같이 선하고 조용한 성품, 어디에서 몇 번이나 마주쳐도 두 손을 모으고 인사를 보내는 그들은, 그 겸손하고 정중함에 나도 같이 고개를 숙이게 했다.     

그렇게 출발한 길 위에서 사람들은 각기 자기만의 걸음보로 산을 향한 계단을 올랐다.

예상했던 몇 명이 선발대를 유지하며 여유 있게 오르고 내 뒤에서는 서너명이 한 가이드와 보조를 맞추며 걷고 있었다. 시끌벅적하게 출발한지 불과 얼마돼지도 않아 사람소리는 들리지 않고 얇고 가느다란 새소리가 유난히 신경이 쓰여 주의를 둘러보니 나는 일행의 중간 지점에서 혼자 걷고 있었다. 앞선 일행과 보조를 맞추자니 내 힘에 부치고 뒤에 일행과 보조를 맞추자니 너무 느려 오히려 몸의 컨디션을 유지하지 못할 것 같았다.  산을 잘 탈것 같았던 젊은 여성이 뒤에서 천천히 걸어오는 것을 보고 힘들어 하는것 겉으면서도 의외라고 생각했다. 한편으로는 위로가 됐다.

‘ 그래 산은 젊다고 잘 오르는 것은 아니야. 끈기와 정신력이 필요하지‘


나는 혼자가 되어 묵묵히 나의 속도에 충실했다. 곁눈에 들어오는 처음 맞이하는 네팔의 정경에는 마음을 줄 여유도 없이 앞만 보고 걸었다. 갈증을 달래기 위해 중간 중간 원주민 가게에서 쉬기도 했지만 갈수록 힘들어지고 발걸음은 무거웠다. 속도도 시작할 때와는 다르게 느려졌다.  걸음이 느려지자 그제야 나의 곁에서 보조를 맞추며 따라오는 가이드가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다와였다. 그가  내 뒤에서 때론 내 곁에서 따라오고 있었다. 그를 의식하자 힘든 티 내지 말고 잘 걸어야겠다고 생각했다.오늘 처음 만나 인사도 제대로 나누지 않고, 언어도 통하지 않았지만, 생각하지 못했던 가이드의 동행을 알아차리자 든든했다.


두 시간 정도 시간이 지날 무렵 지쳐가던 몸이 균형을 잃고 휘청거렸다. 한발 한발 떼어 놓는 발걸음은 모래주머니를 찬 것처럼 무겁고 느렸다. 순간 두려움이 몰려왔다. 이 여행의 목적은 명상을 위한 네팔의 싱잉볼에 대한 관심에서 시작되었지만, 안나푸르나의 트레킹 경험 또한 내 버킷리스트 중 하나였다. 그런데 막상 모든 산악인이라면 한번 쯤은 도전해 보고 싶은 성산 같은 곳을 오르려니 중압감이 먼저 느껴졌다. 아무리 산을 잘 타는 전문가라고 해도 이겨 낼 수 없는 것이 고산병이다. 그것을 초보자인 내가 경험하게 되었을 때 과연 감당할 수 있을까 하는 염려와 몸 상태에 예기치 못한 일이 생길까 걱정이 됐다. 점점 빠르고 커지는 심장 박동과 차오르는 호흡에 섬찟 놀라 나도 모르게 계단 한 가운데에 멈춰서고 말았다.

그러자 그 상황을 예고나 한 것처럼 다와가 걱정스럽게 다가와 나의 배낭을 달라고 했다. 나는 괜찮다고 멋쩍게 웃으며 거절했다. 가이드의 배려가 고맙고 민망했다.

보통 때도 걷는 것을 좋아하고 오지의 트레킹 여행을 즐기는 편이었지만 안나푸르나의 산행은 나에게 결코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할 수 있을 곳은 아니었다. 용기와 도전이 필요했다. 그런데 시작부터 계단을 오르는 산행은 앞으로 진행될 산길 여정의 어려움을 예고하고 있었다.

요르단의 페드라에서 800계단을 오르던 기억이 되살아났다. 신비스런 페드라의 매력에 빠져 가벼운 마음으로 도전했다가 오르는 내내 후회를 했던 어려운 코스였다. 하지만 정상에 오르자 마자 한눈에 들어오는 페드라의 전경을 보는 순간 그 황홀경에 빠져 한동안 정신을 차릴 수 없었던 기억이 있다.

그때처럼 이 순간의 끝에는 다시 이 고통을 애무해 줄 무언가가 날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고 기대하며 계단을 힘차게 올랐다.

여전히 다와는 내 주위에서 내 걸음에 보조를 맞추고 있었다.

어느새 하늘은 감색 빛으로 오캠의 흰색 건물 하나를 물들이고 있었다. 다와가 곧 도착한다는 눈빛과 미소를 보내며 엄지손가락을 들어보였다. 모퉁이를 돌아서자 정말 마을 입구의 작은 집들이 마치  영화 세트장 처럼 모습을 드러냈다. 원주민 할아버지가 나마스테를 건네자 나도 얼른 두손를 모으고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미리 도착한 일행이 사진을 찍다 손을 흔들었다. 나는 어느새 그들이 내어준 자리에서서 두손의 스틱에 힘든 내몸을 의지하며 포즈를 취하고 있었다 . 원주민 할머니가 집앞에서 입가의 주름을 흔들며 웃었다. 난 곁에서 같이 웃고 서있는 다와를 곁으로 불렀다. 목적지에 도착할때까지 묵묵히 내곁을 지켜준 다와와 안나푸르나의 석양을 배경으로 오늘을 마무리하고 있었다. 그리고 오늘을, 다와에 대한 감사한 마음을 한장의 사진속에 간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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