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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igjeje May 02. 2024

문화의 거리, 사람이 곧 예술이다.

에세이 

   

초여름을 앞지르려는 날씨가 일상을 지치게 하는 날들입니다. 오늘 여러분의 감정 온도는 어떠신지요.  제가 오늘은 감정 온도를 조절하고 싶은 때 자주 찾는 거리의 이야기를 같이 나누고자 합니다.      

인사동 거리 끝자락 안국동 사거리에서 횡단보도를 건너면 감고당길로 이어집니다. 예전 풍문여고 자리에 들어선 서울 공예박물관이 감고당길의 진입을 한결 운치 있게 하고 문화적 거리로서의 면모를 일신하고 있지요.  

서울 토박이인 저에게 그 거리의 변화는 여러 모습으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오래 묵은 물건처럼 빛바래진 제 모습과는 다르게 갈수록 현대적인 외모로 젊음을 유지해 가는 그 거리는 갈 때마다 새로운 얼굴로 나의 호기심을 자극합니다. 그러면서도 사라진 것들에 대한 아쉬운 마음은 어쩔 수 없답니다. 그래도 아직은 여기저기 추억의 흔적이 남아 있어 주말 한나절을 여유로운 마음으로 보내기에 부족함이 없는 곳이지요.   

  

오랜만의 방문도 아닌 데 갈 때마다 조금씩 새로운 것을 발견하는 묘미도 감고당길을 찾는 설렘의 이유입니다. 이곳을 가기 위해 서촌이나 북촌 쪽을 먼저 탐방하는 것도 좋습니다. 옛 자취가 많이 사라지고 지금은 유명세를 타고 있는 빵집 카페들이 몇 집 건너 그들만의 브랜드로 하나의 시대적 풍경을 만들어가고 있지요. 입 맛보다는 눈을 먼저 자극하는 화려하고 유분 넘치는 몇 조각의 빵과 커피를 마시고 나면 몸에 담겨 있던 며칠의 피로감이 싹 녹아내리는 느낌이랍니다.  

  

오늘은 서촌에서 시작해 인왕숲 둘레길을 타고 윤동주 문학관을 지나 청와대로 내려오는 감고당길로의 반나절을 선택했습니다. 인왕산 숲의 봄꽃은 아직 떠날 채비도 못 한 채 온난화로 당황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다행히 철없이 즐거워하는 어린잎의 추임새를 그늘 삼아 윤동주 문학관에 도착하니 많은 사람들이 줄을 서서 입장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아이를 동반한 부부, 친구와 연인들, 나이가 지긋한 노부부도 함께 줄을 서서 차례를 기다리며 담소를 나누는 모습이 저의 감정 온도처럼 따뜻하고 정겨웠습니다. 흑백 사진 속의 윤동주와 눈빛 인사를 나누고 삼천동으로 내려오는 길, 함께 일요 산책에 나선 남편이 갑자기 이육사의 ‘광야’를 읊기 시작했습니다. 희미해진 학창 시절을 더듬으며 ‘광야’는 가끔 한 소절씩 제 자리를 잃거나 바뀌기도 했지만, 그는 개의치 않고 몇 번이고 되뇌다 결국 확인할 수 없는 끝을 맺고는 멋쩍게 웃었습니다.

시대에 젊음을 빼앗긴 두 시인의 희생과 문학에 대한 사랑은 곧 나라와 인간에 대한 사랑이었다는 것이 주인 없는 청와대 앞을 지나며 더 의미 있게 다가왔습니다.     


휴일이면 차 없는 거리가 되는 감고당길은 안국역으로 가는 길목이기도 합니다. 그 길에 들어서자, 미세한 대금 소리가 인파의 소음을 뚫고 귀에 들어왔습니다. 상점이 많은 곳이라 손님의 시선을 끌기 위해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소리라고 생각했습니다. 북적거리는 사람들 틈을 벗어나자, 그 소리는 대금을 연주하는 버스커의 모습과 함께 마치 한 폭의 그림처럼 제 시선에 머물렀습니다.  

    

감고당길은 휴일이면 신인 예술가들이 각자의 작품을 전시 판매하거나, 악기 연주 또는 노래를 부르는 버스커들의 거리가 됩니다. 한나절의 산책길을 마치고 집에 돌아가는 길에 편하게 쉬면서 여러 장르의 음악을 들을 수 있는 것도 감고당길의 매력이지요. 하지만 대금 연주의 버스커를 만나게 된 것은 처음이었습니다. 젊다기보다는 어려 보이는 인상의 버스커는 갓신은 물론 두루마기까지 갖춘 레몬색 한복 차림을 하고 있어 더 앳되게 보였고 인상적이었습니다. 대금 소리는 왠지 구슬프고 아련해 발걸음의 속도를 느리게 했지만 대금만이 주는 강력한 소리의 힘은 몸에 전율이 일게 했습니다. 그 소리에 매료되어 지나가던 사람들이 하나둘 멈추기 시작했습니다. 자리를 잡고 앉는 사람, 연신 사진을 찍거나 연주자의 모습과 소리를 영상에 담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연주 값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자리를 뜨면서 얼마간 인사를 하고 싶었습니다. 연주가 좋아서인 이유도 있었지만, 진심으로 사례를 하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일반적인 버스커처럼 그의 앞에는 돈을 넣는 상자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다만 한국의 소리라며 대금을 소개하는 글이 적힌 아주 작은 상자가 있었고 그나마 눈이 나쁜 사람은 읽을 수도 없을 만큼  작은 필체였습니다. 미안함과 아쉬운 마음으로 그 자리를 벗어나자 이번에는 현악기를 연주하는 외국인 버스커를 만났습니다. 대금의 울림이 너무 강렬했는지 아니면 사례도 못하고 그냥 돌아서는 제 마음이 무거웠는지 바이올린의 고음이 피로감으로 다가왔습니다. 그래도 응원의 마음을 담고 내려오니 이번에는 세 명의 남녀가 기타와 색소폰을 연주하며 재즈와 블루스 부르고 있었습니다. 이어지는 빠른 템포의 노래에 사람들은 주체할 수 없는 휴일의 흥을 드러내기 시작했습니다. 연주자는 그 반응에 힘입어 더 유연하고 열띤 음성으로 거리를 장악했습니다. 엄마 손을 뿌리친 아기가 서툴게 달려 나와 엇박자로 몸을 흔들자, 사람들의 환호는 절정에 이르렀고 저도 웃지 않을 수 없었답니다. 그때 버스커 앞에 큰 글씨로 ‘팁 박스’라고 쓰인 커다란 상자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순간 대금을 연주하던 버스커의 수줍은 듯한 모습 앞에 깨알 같은 글씨로  상자 첫머리에 쓰여있던 ‘팁박스’라는 글씨가 생각났습니다. 나는 얼른 남편에게 눈에 띄지 않았던 팁 박스에 대해 설명을 했습니다. 그러자 남편은  그 청년에게 가서 얼마라도 인사를 하자고 했습니다. 저도 마음은 이미 그 청년에게 달려가고 싶었지만 정작 사람들 앞에서 푼돈을 주는 것만 같은 제자신이 부끄러워  뒷걸음질을 하고 있었습니다. 눈에 띄지 않을 만큼 작았던 팁 박스처럼 저의 소심함이 드러나는 순간이었지요. 대신 남편의 등을 밀었습니다. 알아차린 듯 남편이 대금 가락을 쫓아 바삐 발걸음을 재촉했습니다. 얼마를 어떻게 넣고 왔는지 서로 묻지도 말하지도 않았습니다. 숨죽인 듯 대금 소리에 귀 기울이던 관중의 모습과 관중의 박수 소리에 수줍은 듯 고개를 숙이던 버스커의 모습이 아련하고 애잔한 대금 소리가 되어 머릿속을 스쳤습니다.  

    

한국의 문화를 대표하는 거리 안국동에서 외국인의 연주나 팝과 관련한 버스킹을 보면서 우리 가락의 부재에 대한 아쉬움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내가 애호하는 거리에서 울려 퍼진 대금 소리는 제 속마음을 드러낸 것처럼 시원하고 따뜻했습니다.

동주를 만나러 언덕길을 오르거나 그에 반해 광야를 떠올린 남편, 그리고 정겨웠던 우리의 소리와 함께한 사람들, 재즈에 몸을 흔들던 아가까지 겨우 반나절을 보내면서 나의 시선에 들어왔던 그들은 자신만의 퍼포먼스로 거리의 문화를 만끽하며 장식해 가는 그날의 주인공들 이었습니다. 반드시 관객이 필요한 주체자가 아니더라도, 시인의 발자취를 찾아온 어느 누구라도, 버스커에게 응원을 보내거나 그 모습을 무심하게 지나치는 사람조차도 모두가 그 거리를 만들어 가는 것은 사람들이었습니다. 거리에 마음의 소리를 울리고 그 소리를 듣고 가는 사람들, 작품이 아닌 사람이 곧 거리 문화를 빛나게 하는 예술이 아닐는지요. 


오늘도 전 그 거리에서 나만의 퍼포먼스로 나만의 퍼즐 한 조각을 들고 돌아왔답니다. 한국의 소리로 우리의 정체성을  알리고 있는 청년을 만나 더 큰 울림이 담긴 조각이었습니다. 다가오는 휴일, 곧 사람이 예술인 문화의 거리에 여러분도 그 주인공이 되어보시지 않으시겠어요.      


이글은 윤슬마음에서도 읽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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