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술을 진탕 마셨다. 스쿼시를 함께 친 사람들과 어색한 분위기를 얼른 풀어내고 싶어서 건배를 연달아했다. 쏘맥을 마시면 숙취 때문에 다음 날은 없다는 것을 숱한 경험으로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첫 잔 딱 한 잔만 목을 축이기 위해 시원하게 들이켜고 그 후로는 소주로 이어마신다. 배가 엄청나게 고픈 상태였는데도 안주를 많이 먹지 않았다. 다들 말이 그렇게 많지 않아서 내가 대질문을 하고 한 명씩 답을 하고, 맞은편 상대와 농담을 주고받고 하다 보니 어느새 배가 고프지 않게 되었다. 3잔 정도 마셨을 때 살짝 취한 듯한 느낌이 들었다. 취기가 돈다고 하나. 손끝, 발끝까지 알코올이 뻗어나가는 느낌이 들었다. 나는 벌써 취한 것 같다고 말하니 이런 사람이 제일 오래 마시더라 하며 건배. 정신없이 놀다 보니 4시간이 흘렀다. 아무도 집에 갈 생각이 없었다. 거주지를 물어보니 모두 멀어봐야 1시간 정도였다. 집까지 1시간 30분 거리는 먼저 도망치기에 괜찮은 변명이었다. 다음에 꼭 보자는 인사치레들을 뒤로 한채 나왔다. 적당한 취기에 잘 나왔다고 생각했다. 속이 울렁거리지도 않았고, 정신도 멀쩡했다.
집에 잘 도착해서 샤워를 하니 잠이 몰려왔다. 그대로 잠들었는데 새벽에 난데없이 눈이 떠졌다. 원래 술을 조금이라도 마시면 일찍 눈이 떠지는 습관이 있어서 오늘도 어김없다고 생각하고 다시 잠드려는 순간 속에서 무엇인가 느껴졌다. 이불과 침대, 그 속에 나는 마치 햄버거 패티 같았다. 절대 헤어지면 안 되는 사이였고 그래야만 했다. 하지만 위를 탈출하기 위해 아주 강하게 춤을 추는 ‘그것’이 결국 승리했다. 자리에서 일어나 벽을 짚으며 화장실로 향했다. 정말 힘겹게 비워냈다. 온몸에서 땀이 났고 눈에서는 힘겨웠다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눈물이 흘렀다. 역시 안주를 많이 먹어야 해, 앞으로 소주도 좀 적당히 마시자. 다짐하면 다시 누웠다. 가글을 했어도 목젖 가까이에 남아 있는 쓴 흔적은 사라지지 않았다. "음, 불쾌하군." 정도의 생각을 하며 눈을 감고 얼마나 지났을까. 방금 전에 했던 행동을 그대로 다시 했다. 데자뷔였을까. 예지몽이었을까.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똑같았다. 그리고 이 과정을 10번 정도 반복했다. 더 이상 비울 수 있는 것이 없는 위장은 위액을 뱉어냈다. 목구멍도 견디기 힘들었는지 피를 살짝 뱉어냈다. 그동안 술자리에 가지 않아서 감을 다 잃었던 것이다. "내가 진짜 다시 이렇게 술 마시면 개다."라는 다짐은 이미 참 많이도 했다. 난 이미 사람이 아니었다.
정말로 더 이상 토사물이 나오지 않는 상태가 되었을 때 속이 텅텅 비어있어서 위가 아팠다. 정말 간단하게 밥을 챙겨 먹고 나왔는데 몸상태가 말이 아니었다. 실제 내가 느끼는 세상보다 반박자 느리게 느껴지는 그 기분. 팔과 다리에 힘이 하나도 들어가지 않아서 축 쳐져있는 그러한 상태. 몇 번이고 경험했지만 다시는 만나고 싶지 않은 이 녀석을 다시 마주하니 내 시간과 체력, 정신 상태 모든 것이 안타까웠다. 역시 본인의 주량을 잘 알고 적당히, 정말로 적당히 즐겨야 행복하게 세상을 살아갈 수 있다. 즐겁자고 마시는 술을 미워하게 되는 것만큼 슬픈 일이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