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블로 응애의 기획 실무 적용기
이 글을 읽고 계신 귀하가 수면일기 작성 기능을 표함한 앱 서비스의 기획자라고 가정해 봅시다. 수면 일기의 문항은 총 7가지가 있으며, 사용자는 수면 일기 작성 시 원하는 문항만 선택하여 응답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과연 몇 문항을 이상을 입력했을 때, 수면일기*를 작성했다고 판단하시겠어요?
*수면일기는 불면증에 대한 인지행동치료(CBT-I)적인 접근이며, 수면 패턴과 습관을 수정하여 수면의 질을 향상시키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보통 취침 시간과 기상 시간, 야간 각성 횟수와 지속 시간, 수면에 영향을 준 요인 등을 기록합니다.
가령 취침 시간, 수면 잠복기, 기상 후 피로도 등 치료에 필수적인 문항이 반드시 포함될 때만 일기 작성으로 간주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서비스 디자인 시 필수적인 문항만을 포함했다면 이 판단은 적절치 않습니다.
명확한 판단 기준을 떠올리기란 어려운 일입니다. 그런데 데이터 시각화를 해보면 응답 패턴을 통해 판단 기준을 수립하는 데 유리합니다.
태블로에서 수면 일기 로그 데이터를 가지고 날짜에 따라 사용자들이 응답한 문항 수 히트맵을 만들었습니다. 1~5개의 문항만을 입력한 사용자의 비율은 매우 낮았습니다. 수면 일기를 작성하는 사용자들은 거의 대부분의 문항(6~7개)에 답을 하거나 수면 일기를 아예 작성하지 않는 패턴을 보였습니다. 6개의 문항을 성실히 작성했지만, 작성 안 한 사용자와 같은 카테고리를 분류하는 것은 문제가 있습니다. 따라서 6개를 수면 일기를 작성한 기준으로 삼으면 됩니다. 시각화를 하니 모든 팀원들이 동일한 판단을 하게 되었고, 설득의 과정이 필요 없어졌습니다. 이처럼 시각화는 효율적인 의사결정을 가능하게 만듭니다.
UX Researcher로 일 할 때에는 제가 있던 회사 특성상 핵심 경험에 관련된 큼직한 가설 중심으로 프로덕트 정량적인 데이터를 분석했습니다. 당시는 거의 대부분 가설을 먼저 세우고, 필요한 변수가 무엇인지 생각하고 제품을 만들었기 때문에 통계적으로 해당 가설이 유의미한가를 검증하는 것이 우선시되었습니다. 따라서 SPSS나 R, Python와 같은 도구를 이용했습니다.
그러나 기획자로 일하게 되니 상황이 달라졌습니다. 제품을 만들 때 큰 Research Question이 역시 있긴 합니다만, 프로덕트의 형태가 아직 안정화되지 않다 보니 제품 디자인 과정에서 자잘한 궁금증들이 우후죽순으로 가설처럼 생겼습니다. 이 작은 가설들을 에자일하게 검증한 후에 디자인을 확정하면 좋지만, 리소스가 부족한 환경에서 모든 가설을 검증한 후에 디자인하기가 사실상 어려웠습니다.
다행이도 너무 늦지 않은 시점에 앱 비공개 테스트를 하게 되어, 조금씩 서비스의 아주 아주 raw 한 로그 데이터가 생기고 있습니다. 제품을 시장에 내놓기 전, 그리고 모니터링 시스템을 본격적으로 구축하기 전 크고 작은 가설을 선제적으로 정리하고, 검증해 보는 과정을 거치고 있습니다. 이게 정답인지는 모르겠지만, 최소한 저는 이 과정을 통해 제품이 바람직한 방향을 향하게 만들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우린 분명 프로덕트를 디자인 할 때 어떠한 크고 작은 가정들을 했습니다. 화면을 뜯어보면서 기획팀이 했던 궁금했던 지점을 상기했습니다. 그리고 제품의 flow와 궁금증의 형태를 먼저 분류했습니다. 사실 이 작업을 하면서 여러 물음에 대해서 문서화를 따로 해두지 않았어서 후회했습니다ㅠㅠ
참고로 물음들을 Research Question과 Hyphothesis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Research Question은 탐구하고자 하는 주제나 현상에 대한 포괄적인 이해를 목표로 합니다. 보통 What 또는 How에 대한 물음입니다. 반면 가설은 "{원인}하면 {결과}할 것이다"의 형태로 원인과 결과를 분명하게 정의하며, 방향성이 드러난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이후 Research Question 혹은 Hyphothesis를 검증하기 위해 어떤 방법을 사용해야 할지 검증 방법에 따라 크게 정량적, 정성적 방법으로 분류했습니다. 또 어떤 raw 데이터를 어떤 방식으로 가공해 분석할지 계획을 수립했습니다. 이렇게 계획을 세우고 시각화를 하면 대시보드를 인사이트로 가득 채워야 한다는 압박감에서 벗어날 수 있어서 좋더군요.
태블로를 활용해 정량적인 데이터를 시각화하여 궁금증을 해소하고 있습니다. 새로운 Research Question 혹은 Hyphothesis가 생기면 그때그때 로그 데이터의 각종 변수를 조합해서 적합한 형태의 그래프를 그립니다. 태블로를 비롯한 BI(Business Intelligence) 툴이 좋은 이유는 빠르게 변화하는 요구 사항과 새로운 가설에 빠르게 대응하는 "유연성"임을 체감하는 중입니다.
인터랙티브한 대시보드는대시보드 이용자으 의도에 맞춰 필요한 많은 정보들 중 필요한 정보만 보여줄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팀에 대시보드를 공유하니, 추가로 궁금한 부분에 대해 시각화를 요청해 주시는 분도 계셨고, 가설 이외의 부분에서도 적극적으로 인사이트를 찾아 남겨주시는 분들도 있었습니다. 혼자 태블로를 끄적거려봤을 때와 달리 동일한 정보를 바탕으로 각자의 인사이트를 나누면서 집단 지성을 활용하면서, 대시보드는 역시 팀 전체를 위한 강력한 도구임 또한 크게 체감했습니다.
그리고 의외로 정성적인 검증에도 시각화 자료들이 쓰였습니다. 가령 어떤 기능에 대한 가설을 검증하기 위해 불특정 다수에게 질문을 하기 보다는 특정 행동을 보인 사용자를 따로 선별해 미니 인터뷰를 진행했습니다. 이를 통해 더 뾰족한 답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이런 식으로 질문에 대한 인사이트를 얻으면, 프로덕트를 어떤 식으로 개선하는 것이 바람직한지 혹은 유지하는 것이 바람직한지 기획적인 방향을 작성합니다. 당장은 어렵겠지만 향후 제품 개발 iteration에 우리 팀이 발견한 insignt를 반영할 예정입니다.
대학 재학 중 머신러닝/인공지능 동아리에서 공부를 하기도 하고, 각종 실험을 진행하고 가설을 검증했던 경험이 있기 때문에 그래도 스스로 '데이터 리터러시' 역량을 갖춘 사람인 줄 알았습니다. 작년, 운영 중인 헬스케어 서비스의 컨설팅을 진행한 적이 있습니다. 이때 스스로 확증적으로 데이터 분석은 할 줄 알아도, 탐색적으로 인사이트를 도출하는 역량이 많이 부족함을 깨달았습니다.
기획자로 직무를 바꾸면서, 탐색적으로 데이터를 분석하는 역량이 꼭 필요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또 뇌피셜로 결정을 내리는 것이 아닌, 데이터로 여러 이해관계자들을 설득하는 커뮤니케이션 역량이 더 요구되니, 진짜 데이터 리터러시를 길러보기로 했습니다. 마침 TWBX 커뮤니티 8기 모집 소식을 들어, 지원하고 운 좋게 합격해 한달간 틈틈이 태블로와 친해졌습니다.
사실 주말에 주 1회 오프라인 모임 참석하고, 과제 1개씩 제출하는 정도라 엄청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이지는 않았습니다. 그런데 스스로 따라 해보면서 툴과 친해지고, 단순히 툴만 배우는 게 아니라 대시보드도 직접 구성하고 이 과정에서 어떤 변수들을 쓸지 어떻게 처리하고 표현할지 생각해 보면서 (아직 많이 부족하지만) 그래도 시각화 역량이 생겼습니다.
운동이건 악기이건 공부건 일상 속 한 달이라는 기간 내에 체감되는 성장을 이루기는 쉽지 않은데, 한 달 전의 저보다는 확실히 나아진 것이 체감되어 신기하고 보람차기도 하고, 무엇보다도 업무에 사용하면서 즐거움을 가장 많이 느끼고 있습니다.
“HCI와 UX는 기술을 사용하는 인간에 대한 배려다”라는 말이 최근 제게 깊은 울림을 주었는데, 이를 통해 시각화의 의미를 다시금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시각화란 단지 데이터를 그림으로 표현하는 작업이 아니라, 제품을 만드는 나 자신과, 함께 일하는 사람들을 위한 일종의 배려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정보를 명확하게 전달하고, 모두가 같은 목표를 공유할 수 있도록 돕는 일이야말로 팀이 더욱 원활하게 협력하고, 더 나은 제품을 만들어 나갈 수 있는 원동력이 되기 때문입니다.
앞으로도 시각화가 가진 힘을 소중히 여기고, 계속해서 기술과 역량을 발전시켜 팀에 보탬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