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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und For Sound eXperience Jan 05. 2025

청각장애 아이들이 다이아토닉 스케일을 발성할 수 있을까

청력 재활 디지털 치료제 청소년 사용자를 위한 음악 치료 행사 진행 후기


벨에서는 서울대병원 인공와우센터와 청력 재활 디지털 치료제를 만들고 있습니다. 2025년 초반에는 기획팀에서도 이 서비스를 기획하고 검증하는 데 많은 시간을 보낼 예정입니다. YG의 후원을 받아 이 앱에 대한 연구를 하고 있는데, 연구에 참여하는 아이들을 위해 YG-서울대병원과 함께 행사를 개최했습니다. 연구팀에서 행사 프로그램 중 인공와우 사용자의 음악적 발성 훈련 세션을 맡아달라고 요청을 주셔서, 설레는 마음으로 행사에 참여했습니다. 아마 원전공이 사범대이기도 하고, 평소 음악을 좋아하는 모습을 보여드렸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또, 인공와우 사용자들을 위한 청각 재활 서비스 프로젝트에 조인했기 때문에 감사하게 유저들과 만나는 자리를 마련해 주신 차원도 있지 않을까요?ㅎㅎ



한편 걱정을 상당히 많이 했습니다.


급작스럽게 요청을 받았고 물리적으로 준비할 시간이 거의 없었기도 했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준비를 할 시간이 많아도 준비를 하기에 어려운 상황이었을 것입니다. 청각 장애 아이들과 아직 직접 대면하여 음악 활동을 해본 적이 처음이라 이 친구들이 얼마나 음감이 있고 노래를 하는지에 대한 배경 지식이 전혀 없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큰 학습 목표만 설정하고 여러 활동을 대락적으로만 리스트업 하여 현장에 있는 아이들의 수준을 보고 적당한 활동을 진행하는 임기응변을 발휘하기로 했습니다.



걱정되었던 다른 포인트는 무엇보다 제가 노래를 못한다는 점입니다. 악기를 하게 된 이유 중 하나는 음악을 사랑하나, 노래를 못해서 인데, 과연 이런 제가 아이들에게 발성을 잘 알려줄 수 있을지 의심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성악과 작곡을 전공하신 훌륭하신 벨의 구성원분들께 많은 조언을 구하여 재미있는 활동들로 세션을 구성할 수 있었습니다. 가령, (어떻게 보면 당연한 것이지만) 저는 발성 활동을 위해서는 음에 대한 개념 제외하고 호흡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사실을 이 수업 세션에 반영하지 못했는데, 성악을 전공하신 다른 프로덕트 PO님께서 제가 놓치고 있는 부분을 짚어주셨습니다. 또 음악 치료 교수님께서 활동에 도움이 될만한 여러 도구들을 소개해주셔서 아이들이 흥미로워할 세션을 구성할 수 있었습니다. 역시 전문가의 노하우가 최고입니다! 어려울 땐 혼자 싸매지 말고 전문가에게 도움을 청하는 게 서로를 위해 필요한 일임을 다시 한번 체감하고 넘어갔습니다ㅎㅎ


발성을 위한 호흡법 연습을 위해 휴지를 공중에 오래 띄우는 활동을 진행했어요!



마지막 걱정 포인트는 아이들의 연령대였습니다. 사범대학에서는 중학교-고등학교 학생들을 대상으로 지도하는 방법을 배우기 때문에 사전에 행사에 참여하는 아이들 중 가장 나이가 많은 친구들을 담당하기로 결정했었는데, 막상 하고 나니 대부분 중학교 2학년 친구들이 주요 구성원이었습니다. 세션 진행 이전 몇몇 아이들에게 노래 부르는 거 좋아하냐고 물어봤는데 약간은 냉소적인 태도로 싫어한다고 말하는 친구들이 있었어서, 또 목소리도 크지 않고 기본적으로 작게 작게 말하는 아이들을 보고는 "큰일 났다"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막상 세션을 진행해 보니 괜한 고민이었습니다. 밖에 계신 선생님들이 놀라실 정도로 아이들은 거리낌 없이 목청껏 음을 냈습니다.




행사장에 도착한 인원들 간식 배부 중 급박하게 짠 프로그램 순서. 나름 성공적인 프로그램들!

 

처음에 아이들이 입장했을 때 직접 이름표를 쓰게 하고 동기부여를 위해 각자 노래방에서 부르고 싶은 노래가 무엇인지 소개하고 학습 목표를 짚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노래 부르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친구들 모두 마음속에 부르고 싶은 노래 하나쯤은 품고 있더라고요. 짧은 시간이기도 하고, 정확하지 않은 음을 내는 행동 자체가 특히나 자신감이 많이 결여된 친구들에게는 더욱 머쓱한 일일 수 있기에 가급적 몸을 움직이는 동적인 활동으로 구성했습니다. 예를 들어 복도 바닥에 선을 그어 음고 개념을 공간적인 위치로 인식하고, 아이들이 칸을 움직일 때마다 음을 달리 발성하도록 했습니다. 정확한 피치는 아니지만 음고 개념 자체를 이해하고, 호흡법을 발성에 적용하는 아이들의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이후에 음고의 지속적이고 다이내믹한 변화를 발성하기 위해 사용자 음정을 실시간으로 시각화해 주는 앱을 가지고 우상향 곡선과 우하향 선 그려보기를 했습니다. 혼자 하면 머쓱하니 3인 1조로 시켜야 하나 처음에는 생각했으나 아이들은 혼자서도 도전하는 모습을 보여줬습니다. 세션 보조해 주시는 기획팀장님께서 전 과정에서 도움을 주셨지만, 특히 이 과정에서도 큰 도움을 주셨습니다. 혹시나 아이들이 성공하지 못하더라도 '지금 잘하고 있는데 우리가 손뼉 쳐서 그래프가 잘 안 그려진 거다, 그러니 다시 한번 해봐라 등' 긍정적인 피드백을 제공하신 덕에 모든 아이들이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선을 그려 낼 수 있었습니다. 


공연이나 합주를 하지 않은 이상 소리 큼이 뜬 적이 없는 나의 애플워치


세션의 최종적인 활동은 사용자가 특정 음정을 정확히 발음하여 화면의 공을 장애물 사이로 통과시키는 틱톡의 ’ 퍼펙트 피치 챌린지(Perfect Pitch Challenge)'였습니다. 발성은 곧 잘하나 정확한 피치로 음을 내지는 못했던 아이들도 필터가 음 높이에 대한 시각적인 피드백을 실시간으로 제공하며 목표 피치의 위치 또한 명확하기 때문에, 장애물 사이로 공을 연속적으로 통과시킬 수 있었습니다. 중요한 사실은 공이 잘 반응하지 않는 것 같자 공을 움직이려고 소리를 엄청나게 크게 냈습니다. 휴지 불기 활동을 했던 것을 생각하라고 하니 목소리가 작던 아이들의 음량도 높아졌습니다. 거의 애플워치 소음 알림 뜰 정도로 말입니다. 피치 챌린지가 부담스러운 한 친구는 낮고 높은 두 음으로만 소를 조작하여 울타리를 통과하게 하는 Cow Voice Challenge에 도전했습니다. 아이들이 자발적으로 재미를 느껴 만족스럽지 못할 경우 다시 도전하겠다고 하거나, 응원을 받으며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활동을 마무리하려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며 감동을 느꼈습니다. 잘 디자인된 학습 도구에도 또한 감동을 느꼈답니다. 



세션에서 역시나 아이들은 친구의 영향을 많이 받음을 느꼈습니다. 한 학생이 정말 크게 발성하자 이어서 너도나도 발성의 음량이 달라졌습니다. 또 낯선 환경이기 때문에 성별과 나이대가 비슷하게 앉을 수 있게 했는데 유효했던 전략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상대적으로 자신감이 없고 피치가 정확하지 않은 여학생이 있었는데, 만약 그 학생 혼자 도전하게 했다면 죄절감을 주어 난감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가까이 앉은 여학생들끼리 연합하여 같이 피치 챌린지에 도전하도록 했고, 결국은 성공했습니다. 챌린지를 성공적으로 완수한 전원에게 간식 선물을 나눠주고 앞으로 노래할 때 적용해 보라고 당부하면서 세션을 끝냈습니다.


세션이 끝나고 두 여학생은 아이돌 이야기를 나누더니, 연락처를 주고받았습니다. 학부모님들은 아이들이 잘했는지 궁금해하셨고, 나중에는 아이가 발성도 하게 도움 주고, 또래 인공와우 사용자 친구도 만들 수 있어서 오히려 학부모님들께서 정말 고맙다고 하셨습니다. 



세션은 성공적으로 진행했지만, 만약 다음에도 비슷한 세션을 운영한다면 바꾸고 싶은 요소들이 있었습니다.


1. 공간의 아쉬움

사다리 활동을 복도에서 하다가 중간에 소리가 안 들려 미팅룸으로 다시 들어와서 진행했던 것이 매우 아쉬웠습니다. 부득이하게 미팅룸을 그대로 썼기 때문에, 다음에는 책상이 없는 넓은 공간을 준비해야 합니다. 또 넓은 공간에서 사용할 수 있는 스피커를 미리 준비해야 합니다. 


2. 분반 기준의 아쉬움

세션 분반 기준이 오로지 연령대였는데, 특히 변성기가 온 중-고등학생의 경우 음역대가 본격적으로 달라지기 때문에 성별도 고려해야 합니다. 남학생과 여학생이 함께 연습할 수 있도록 음고 훈련 시 도레미파솔라시도가 아닌 솔라시도레미#파솔 로 바꿔서 진행했던 기억이 나네요. 피치 챌린지는 여학생 음역대에 최적화, 소 챌린지는 남학생 음역대에 최적화된 필터였는데, 오히려 남학생들이 피치 챌린지에서 도전 의식을 느껴 큰 소리를 냈던 것을 보면 난이도를 어렵게 만들어 일부 긍정적인 작용도 했던 것으로 추측합니다.


또 아이들의 음감이 각자 달랐습니다. 소리를 상대적으로 정확하게 정확하게 내는 아이들이 있는 반면, 그렇지 못하는 아이들이 있었습니다. 도레미에서 내는 음 높이가 크게 안 달라지는 친구가 있었는데 다행히 다른 친구와 챌린지에 함께 도전해 시간은 오래 걸렸지만 이번 세션에서 좌절감을 느끼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본질적으로 아이들의 음감 및 발성 능력에 따라 다른 접근을 해야 하기 때문에, 추후에는 사전적으로 아이들의 수준을 확인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3. 디지털 교구 사전점검 미흡에 대한 아쉬움

디지털 교구는 아날로그 교구보다 변수가 많습니다. 이건 지극히 다수의 인원을 데리고 수업 시연을 하지 않은 제 탓입니다. 여러 명이 틱톡 필터를 이용해 챌린지를 할 때에는 음정 인식이 잘 되지 않는 문제가 있었습니다. 이럴 때를 대비하여 가상악기로 동일한 음을 동시에 틀어주면 도움이 된다고 가이드를 주셨는데, 그날 환경에서 DAW와 틱톡 필터가 동시에 작동하지 않는 문제 또한 있었습니다. 제가 함께 발성을 하고 특히 필터가 먼저 낸 음을 따라가는 경향이 있는 듯하여, 아이들을 도와주며 제가 먼저 정확한 피치를 내어 어떻게 통과시켰던 기억이 나네요 ㅠㅠ 또 발성하면서 직선 그려보기 활동을 하면서는 너무 재미있어서 박장대소했는데, 노이즈가 들어가니 그래프가 잘 출력되지 않았던 아쉬움이 있습니다. 그러나 분위기를 챙겼기 때문에 패스




세션이 끝나고 카페로 이동해 틈틈이 찍은 행사 사진을 정리했습니다. 그러면서 사범대에 진학해도 괜찮겠다고 결심했던 이유들이 떠올랐습니다. 과학을 좋아하지만 수학이 어렵고 싫어서 문과에 진학했던 저는 고등학교 3학년 때 상당히 특이한 수학 학원을 다녔습니다. 개념 수업을 듣는 시간만큼 학원에 나와서 같은 과정을 듣는 친구들과 서로 "가르치는" 시간이 있었습니다. 친구들이 풀지 못했던 문제를 이해시키고, 비슷한 문제들을 풀 수 있게 만들어 줬을 때 느꼈던 뿌듯함이 수험 생활 중 느꼈던 도파민이었습니다. 덕분에 수학 과목에 대한 인식도 바뀌었고, 사범대학에 진학했습니다. 저는 오늘 이 도파민을 다시 느끼며 제가 하는 일의 가치를 되새겼습니다.



듣지 못하는 것을 듣게 돕고, 소리 내지 못하던 것을 소리 내게 돕는다는 것


되찾게 된 이 마음 잊지 않고 2025년 청각 재활 디지털 치료제 뜨겁고 재미있게 설계해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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