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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닥터 루콜라 May 02. 2021

상대를 이해한다는것

현대 사회의 요즘 사람들은 과연 스트레스를 언제 많이 받을까요? 일이 많을 때, 쉬지 못할 때, 대인관계가 힘들 때, 다른 사람이 내 마음을 몰라준다고 느낄 때 등등 사람마다 각기 다양한 이유가 있을 수 있겠지만, 많은 통계 자료에서, 그리고 진료 현장에서 듣게 되는 가장 큰 어려움은 바로 대인관계인 듯합니다. 사람은 사람들 속에서 행복을 느끼고 또 살아가는 의미를 찾게 되지만 역설적이게도 사람들 사이에서 가장 스트레스를 많이 받게 됩니다.     


"아 정말 눈치도 없지"  "그걸 말로 해줘야 알아?"

"저 정도는 알아서 해줘야지. 인성이 문제구만, 요즘 애들은 저 정도도 

 안 된다니까"

"역시 남자들은 저래서 안 돼". "여자들은 너무 이기적이야"     


이런 말 주위에서 흔하게 듣는 말 아닌가요? 아니면 여러분이 직접 많이 하는 말들인가요? 에드워드 홀이라는 문화인류학자는 우리나라나 일본 같은 나라를 고맥락 문화, 독일과 같은 나라를 저맥락 문화로 분류했습니다. 단어가 좀 어렵게 느껴지는데요, 쉽게 표현하자면 고맥락 문화에서는 "눈치" 가 있어야 살아남을 수 있습니다. 사소한 것 하나하나 언어로 표현되지 않고 그 분위기를 간파해서 "눈치껏" 해야 하는 것이지요.

본인이 눈치가 아주 빨라 조직 내에서 승승장구 한 상사를 두고 있다면 눈치가 없다고 자주 핀잔을 들을 수 있습니다. 하나하나 지시하지 않아도 "눈치껏"하기를 조직에서 기대하기 때문인데요, 눈치껏 해내지 못하면, "요즘 젊은 사람" 들로 명명되거나 "특정 편견" 발언으로 공격당할 수 있습니다. 그럼 고맥락 문화의 전형적인 대화를 한번 보실까요?    


A과장 : "비도 오는데 파전 생각이 나는 군"

B직원 : "과장님 같이 한잔 하실까요?"

A과장 : "아냐, 아냐 다들 바쁜데 뭘..."

B직원 : "파전이랑 가볍게 한잔 하시죠"

A과장 : "아 뭐 꼭 그렇다면 그럴까?“    


A과장은 결코 저녁식사나 술자리를 가지자고 권한 적이 없습니다. 직원이 눈치껏 행동하는 건데요, 이런 문화는 폐쇄적이거나 오랜 시간을 같이 해서 서로를 잘 아는 문화권에서는 매우 효율적일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요즘 사회는 어떤가요? 이미 서울에서 부산까지 반나절 문화권에 들어와 있고, 다양한 문화를 가진 외국인들과도 교류를 해야 합니다.     

명확한 의사전달이 되지 않으면 서로가 힘들 수 있습니다. 특히 오랜 기간 혼자 지내거나 대인관계가 없이 지내다보면 "눈치"를 빨리 간파하는 능력이 떨어질 수 있는데요, 이럴 때 사회 복귀를 위해서는 개개인을 위한 맞춤 치료가 필요할 수도 있습니다.     


요즘 동네 키즈 카페나 도서관, 미술관 등에서 개최되는 다양한 문화 체험 등 아이들이 많이 참여하는 공간에 가게 되면 다양한 부모님들을 만날 수가 있습니다. 이것도 일종의 직업병인지 그런 장소에 가면 저는 부모님의 행동들을 유심히 지켜볼 때가 있습니다. 한 아이가 체험을 하지 않겠다고 고집을 부리는 중인데 아마도 아이의 엄마는 들어온 입장료를 고려해서 더 많은 체험을 하길 원했을 것입니다.     

미리 대기하지 않도록 체험 동선을 짜느라고 엄마는 나름대로 얼마나 노력했을까요? 그런데 아이 마음은, 그냥 좀 쉬엄쉬엄 하고 싶었고 막상 하려고 보니 별로 재미가 없어 보이는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하기 싫다고 떼를 쓰고 울고불고 난리가 납니다. ‘과연 엄마가 어떠한 마법으로 아이를 달랠까?’ 저는 호기심 어린 눈길로 가만히 지켜보았습니다.    

 

마침 제가 예상했던 말을 엄마가 하는 중이었습니다. “너 집에 갈래? 이거 할래? 이거 안하면 당장 집에 갈 줄 알아” 아이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는 것 같습니다. 한 가지 체험이 싫긴 했지만 체험 모두를 포기할 정도는 아닌 것 같아 아이는 닭똥 같은 눈물을 한 방울 흘리고, 기계에 오렌지를 투하해서 생과일주스 만들기 체험을 시작했습니다.     


특히 아이들을 대할 때 혹은 소위 말해서 나보다 힘이 약한 사람들을 대할 때는 그런 유혹을 받기 쉽습니다. “내가 시키는 대로 안하면 불이익을 당할 줄 알아. 지금 이거 안하면 벌이야.” 물론 결과를 이끌어내기에 가장 빠른 지름길입니다. 그렇지만 늘 줄을 팽팽하게 당기다 보면 어느 순간 끊어지기 마련입니다. 아이가 머리가 크면 어느 순간부터 똑같은 방식으로 부모를 대할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우울증으로 상담했던 한 학생의 사례입니다. 학생의 부모는 부부갈등이 극에 달할 때 별거 중 이었고 엄마와 아이들은 함께 지냈습니다. 엄마는 아이의 투정에 속상한 나머지 “너 아빠한테 갈래?” 한마디 했는데, 물론 진심은 아니었겠죠. 엄마도 그 상황이 너무 힘들었기 때문에 한 말 이었는데, 몇 년이 지나고 그 아이는 울면서 상담 중에 바로 그 말을 기억해 냈습니다.    

 

그때 엄마는 너무 놀라고 자신의 한 말이 무서웠다고 합니다. 아이한테 미안한 것은 말할 것도 없고요. 우리는 우리의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 우리에게 의지해야만 하는 약한 이들을 점점 절벽 끝으로 모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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