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산책 예찬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별보라 Dec 02. 2021

달이 따라온다

경이로운 순간



밤이 길어졌다. 오늘도 캄캄한 새벽, 나만의 시간을 보내며 사부작사부작하고 있다가 문득 창 밖을 보니 동이 터오르려 한다. 매일 뜨는 해이지만 볼 때마다 감격이다. 특히 오늘처럼 맑은 하늘에 펼쳐지는 그라디에이션이란. 빌딩숲 너머로 붉음과 푸름이 회색빛과 함께 드넓은 공간에 쫘악 펼쳐진다. 경이로운 하늘이다!





당장 겉옷을 걸치고 운동화를 신는다. 오늘은 내 눈으로 직접 봐야겠어. 날이 추워지면서 나도 모르게 자꾸 움츠려든다. 옷을 껴입고 마음을 단단히 먹고 나가지만 맞서는 바람 앞에 약해지는 나. 억지로 나가는 이런 산책일지라도 후회는 없다. 무거운 발걸음 후엔 늘 가뿐한 마음이 뒤따라오니까.







생각보다 춥지 않네. 새소리가 요란한 아침이다. 내 몸 구석구석, 내 온 마음을 마사지해주는 것 같다. 토독톡톡 간지럽다. 까치 한 마리가 친구를 부르나 보다. 함께 날아가며 아침을 알리듯 합창을 한다. 기분 좋은 아침을 맞으며 하늘을 올려다보니 구름 한 점 없는 하늘 저 멀리 달이 떠 있다. 오늘은 반달이네. 달님 안녕 :)



숨을 크게 내쉬며 걷는다. 아무 생각 없이 걷는 걸 즐긴다. 음악이 따로 필요 없다. 아침의 고요함 가운데 들리는 자연의 소리가 좋다.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 바람이 스치는 소리, 낙엽 밟히는 소리. 저벅저벅 내 발자국 소리도 들린다. 오늘도 어제와 같은 곳에 서 있는 나무들에게 인사하며 걷는 길, 발걸음이 가볍다.






동쪽 하늘이 잘 보이는 곳에 가서 떠오르는 붉음을 내 눈에 담는다. 설렘 가득한 시간. 넓은 하늘이 붉고 푸르게 펼쳐져 있다. 좋은 기운이 충만한 아침이다. 집에 돌아가는 길에 올려다보니 달이 따라오고 있네? 해와 달이 공존하는 시간. 이 시간의 고요가 좋다.






달이 따라온다.. 아까와는 다른 모습 같다. 생각해보면 어제와도 다른 모습이다. 그곳에 그대로 존재지만 매일 조금씩 변하고 다른 모습으로 다가온다. 함께 보이는 것들에 따라 또 내 마음에 따라. 지금은 하트 속에 담겨있네. 왠지 사랑스러운 달님이다.



달까지 거리

지구표면과 달표면까지의 거리는 383000 km이고,
지구중심과 달중심까지의 거리는 390940 km이다.

_네이버 지식백과, 지구과학사전



너와 나의 거리 38만 킬로미터. 네가 있는 곳까지 걸어가면 얼마나 걸릴까? 쉬지 않고 걸어도 3989일, 11년을 걸어야 가는 거리네. 멀기도 멀다. 그래도 친숙하고 가깝게 느껴진다. 늘 곁에서 날 지켜주는 것 같다. 달님 보며 소원도 많이 빌었지. 항상 그곳에서 말없이 위안을 주는 네가 고맙다.






해가 뜨고 달이 따라온다. 문득문득 이 당연한 것들이 신기할 때가 있다. 생각해보면 저 회색 하늘에 보이지 않는 별들 빛나고 있다. 내 눈에만 보이지 않을 뿐 각자의 자리에서 자신의 길을 가고 있다. 우리가 지금 이 순간 이렇게 만났다. 거대한 우주의 한순간을 함께 걷고 있다.



우주는 현재 우리가 이해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설 정도로 크고, 우리는 우리가 살기에 딱 적당하게 완벽히 맞춰진 행성에 살고 있으며,,(중략) 더 놀라운 건 이 모든 일이 우연히 일어났다는 사실이다. 소행성이 지구를 간발의 차로 비껴갔다면 공룡이 살아남았을 수도 있고 백악기의 조그만 포유류들이 번성해서 인간으로 진화할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 이 모든 일이 기적이라고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다.

_사샤 세이건의 <우리, 이토록 작은 존재들을 위하여> 중에서



작은 별 지구에서 올려다본 해와 달과 별은 늘 신비함을 불러온다. 그 크기를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커다란 우주 안의 나는 티끌 같은 작은 존재일 뿐이다. 코스모스라는 기나긴 영화의 찰나에 우연히 만나 이렇듯 경이로운 순간을 함께하다니 영광이다.



사샤 세이건의 말처럼 너와 나의 탄생, 그리고 이 모든 일은 기적과 같다. 끝없이 기다란 선의 한 점에서 만난 우리. 기적 같은 만남이고, 그 안의 모든 것이 감사하고 소중하다. 미라클모닝, 기적 같은 아침. 오늘은 과연 나에게 어떤 일이 펼쳐질지, 어떤 선물이 배달될지 기대하며 하루를 시작한다.




매거진의 이전글 낙엽이 진다 겨울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