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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보라 Dec 02. 2021

달이 따라온다

경이로운 순간



밤이 길어졌다. 오늘도 캄캄한 새벽, 나만의 시간을 보내며 사부작사부작하고 있다가 문득 창 밖을 보니 동이 터오르려 한다. 매일 뜨는 해이지만 볼 때마다 감격이다. 특히 오늘처럼 맑은 하늘에 펼쳐지는 그라디에이션이란. 빌딩숲 너머로 붉음과 푸름이 회색빛과 함께 드넓은 공간에 쫘악 펼쳐진다. 경이로운 하늘이다!





당장 겉옷을 걸치고 운동화를 신는다. 오늘은 내 눈으로 직접 봐야겠어. 날이 추워지면서 나도 모르게 자꾸 움츠려든다. 옷을 껴입고 마음을 단단히 먹고 나가지만 맞서는 바람 앞에 약해지는 나. 억지로 나가는 이런 산책일지라도 후회는 없다. 무거운 발걸음 후엔 늘 가뿐한 마음이 뒤따라오니까.







생각보다 춥지 않네. 새소리가 요란한 아침이다. 내 몸 구석구석, 내 온 마음을 마사지해주는 것 같다. 토독톡톡 간지럽다. 까치 한 마리가 친구를 부르나 보다. 함께 날아가며 아침을 알리듯 합창을 한다. 기분 좋은 아침을 맞으며 하늘을 올려다보니 구름 한 점 없는 하늘 저 멀리 달이 떠 있다. 오늘은 반달이네. 달님 안녕 :)



숨을 크게 내쉬며 걷는다. 아무 생각 없이 걷는 걸 즐긴다. 음악이 따로 필요 없다. 아침의 고요함 가운데 들리는 자연의 소리가 좋다.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 바람이 스치는 소리, 낙엽 밟히는 소리. 저벅저벅 내 발자국 소리도 들린다. 오늘도 어제와 같은 곳에 서 있는 나무들에게 인사하며 걷는 길, 발걸음이 가볍다.






동쪽 하늘이 잘 보이는 곳에 가서 떠오르는 붉음을 내 눈에 담는다. 설렘 가득한 시간. 넓은 하늘이 붉고 푸르게 펼쳐져 있다. 좋은 기운이 충만한 아침이다. 집에 돌아가는 길에 올려다보니 달이 따라오고 있네? 해와 달이 공존하는 시간. 이 시간의 고요가 좋다.






달이 따라온다.. 아까와는 다른 모습 같다. 생각해보면 어제와도 다른 모습이다. 그곳에 그대로 존재지만 매일 조금씩 변하고 다른 모습으로 다가온다. 함께 보이는 것들에 따라 또 내 마음에 따라. 지금은 하트 속에 담겨있네. 왠지 사랑스러운 달님이다.



달까지 거리

지구표면과 달표면까지의 거리는 383000 km이고,
지구중심과 달중심까지의 거리는 390940 km이다.

_네이버 지식백과, 지구과학사전



너와 나의 거리 38만 킬로미터. 네가 있는 곳까지 걸어가면 얼마나 걸릴까? 쉬지 않고 걸어도 3989일, 11년을 걸어야 가는 거리네. 멀기도 멀다. 그래도 친숙하고 가깝게 느껴진다. 늘 곁에서 날 지켜주는 것 같다. 달님 보며 소원도 많이 빌었지. 항상 그곳에서 말없이 위안을 주는 네가 고맙다.






해가 뜨고 달이 따라온다. 문득문득 이 당연한 것들이 신기할 때가 있다. 생각해보면 저 회색 하늘에 보이지 않는 별들 빛나고 있다. 내 눈에만 보이지 않을 뿐 각자의 자리에서 자신의 길을 가고 있다. 우리가 지금 이 순간 이렇게 만났다. 거대한 우주의 한순간을 함께 걷고 있다.



우주는 현재 우리가 이해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설 정도로 크고, 우리는 우리가 살기에 딱 적당하게 완벽히 맞춰진 행성에 살고 있으며,,(중략) 더 놀라운 건 이 모든 일이 우연히 일어났다는 사실이다. 소행성이 지구를 간발의 차로 비껴갔다면 공룡이 살아남았을 수도 있고 백악기의 조그만 포유류들이 번성해서 인간으로 진화할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 이 모든 일이 기적이라고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다.

_사샤 세이건의 <우리, 이토록 작은 존재들을 위하여> 중에서



작은 별 지구에서 올려다본 해와 달과 별은 늘 신비함을 불러온다. 그 크기를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커다란 우주 안의 나는 티끌 같은 작은 존재일 뿐이다. 코스모스라는 기나긴 영화의 찰나에 우연히 만나 이렇듯 경이로운 순간을 함께하다니 영광이다.



사샤 세이건의 말처럼 너와 나의 탄생, 그리고 이 모든 일은 기적과 같다. 끝없이 기다란 선의 한 점에서 만난 우리. 기적 같은 만남이고, 그 안의 모든 것이 감사하고 소중하다. 미라클모닝, 기적 같은 아침. 오늘은 과연 나에게 어떤 일이 펼쳐질지, 어떤 선물이 배달될지 기대하며 하루를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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