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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ate Lee Jan 18. 2022

예술과 프라이버시

케이트의 아트마켓 48

-   거리 모습을 담은 사진 작품들

-   망원렌즈로 몰래 촬영한 이웃집

-   세상에 공개된 사적인 문자 메시지들

-   예술과 프라이버시에 관한 논란들



스마트폰이 일상이 된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 사진을 찍고 있는 사람들을 어디서든 마주하는 것은 더 이상 낯선 모습이 아니다.  다른 사람의 모습을 사진에 담는 일은 어떤지에 대해 초상권 등 프라이버시와 관련해 이야기해 본다.



거리 모습을 담은 작품들  


"개방되어 있는 것들이 있고, 감춰져 있는 것들이 있다.  진짜 세상은 감춰진 것들과 연관되어 있다." 


미국의 사진작가이자 화가인 사울 레이터(Saul Leiter)가 남긴 말이다.  그의 사진들은 세계에서 가장 바쁘게 돌아가는 복잡한 도시 중 하나인 미국 뉴욕의 조용한 모습을 담은 작품들이 많다.  그가 잡은 부드러운 초점 속에 보이는 뉴욕의 사진들은 도시의 다른 이면을 보는 듯하다.


사울 레이터(Saul Leiter), '밀짚모자를 쓴 남자(Man in Straw Hat)', 1955.

Photo: sam.romilly via Flickr/Creative Commons.


많은 사진작가들이 거리의 모습을 모티브로 작품을 창작하곤 한다.  이런 사진 속에는 지나가는 또는 머무르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이 종종 담긴다.  공개된 장소에서 개인은 자신의 사생활이 보장되리라고 생각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때때로 예술의 명목 하에 상식선에서 이해하기 힘든 일들이 일어나기도 한다.  



망원렌즈로 들여다보는 이웃집 


논란의 중심이 된 '이웃들(The Neighbors)'과는 다른 작품.   gt8073a, '이웃(neighbors)', 2011.

Photo: gt8073a via Flickr/Creative Commons.


지난 2015년 뉴욕 항소법원에서 망원렌즈로 이웃집 내부를 촬영한 사진 작품을 둘러싼 분쟁에 대한 판결이 있었다.  2013년 사진작가 안 스벤슨(Arne Svenson)은 1년 동안 자신의 여러 이웃들의 커다란 유리창을 통해 보이는 모습들을 망원렌즈로 촬영한 작품들을 전시회를 통해 선보였다.  


'이웃들(The Neighbors)'이라는 제목의 이 연작물은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지극히 개인적인 모습들이 적나라하게 드러나 있었다.  전시회 홍보물을 통해 자신의 아이들을 포함한 가족들의 얼굴과 일상이 전시 사진을 통해 공개된 것을 알게 된 한 이웃이 스벤슨을 사생활 침해로 고소하면서 분쟁이 시작되었다.  


미국은 표현의 자유를 우선시하는 헌법 정신에 따라 예술을 비롯한 많은 부분에서 의사표현이 자유로운 것이 사실이다.  반면 프라이버시 권리는 주법에서 규정하고 있기 때문에 각 주마다 그 보장 정도가 다르게 정해져 있다.  특히, 뉴욕은 표현의 자유 보장에 비해 개인의 프라이버시 보호가 상대적으로 제한적인 것이 현실이다. 


이러한 법리에 따라 법원은 스벤슨의 손을 들어주었다.  스벤슨의 작품은 예술에 속하고 그가 사진을 법률상 광고나 상업적 목적에 이용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이웃들의 프라이버시보다 그의 예술적 표현의 자유가 우선시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판결은 많은 사람들에게 의아함과 나아가 우려를 불러일으킬 만한 결정이었다.  개인의 사생활이 가장 보장되어야 하는 자신의 집 안에서조차 타인의 시선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받아들이기 힘든 결론이 내려진 것이다.  법원도 이를 인지해 뉴욕 의회에 법률 개정을 촉구하는 내용을 덧붙였다.  


모두가 공유하게 된 문자 메시지


논란이 된 작품과는 상관없는 사진임.  Lee, '자전거 메시지(Bike text message)', 2008.

Photo: Lee via Flickr/Creative Commons.


이와 유사한 사례가 최근 또 있었다.  지난 2020년 미국의 거리 사진가인 제프 머멜스타인(Jeff Mermelstein)이 3년 동안 뉴욕의 곳곳에서 타인의 문자 메시지를 몰래 촬영한 사진들을 담은 사진집 '#뉴욕시티(#NYC)'를 출판해 크게 논란이 되었다.  사진 속 메시지들은 누구에게도 공개하지 않을 것 같은 당사자들의 사적인 이야기들이 가득했다. 


병마와 싸우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비롯해 이별 후 힘들어하는 사람들의 이야기, 불공정한 상사를 비난하는 이야기, 연인들의 은밀한 이야기, 그리고 원치 않는 임신으로 고민하는 커플들의 이야기 등으로 채워진 사진집은 프라이버시 침해 논란을 일으키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메시지 속의 이름과 얼굴 사진 등을 지우고 출판했기 때문에 자신은 법의 테두리 안에서 당당하다고 밝힌 머멜스타인의 인터뷰는 많은 이들을 불편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스벤슨 선례를 포함해 뉴욕 법의 제한적 프라이버시 보호를 고려할 때 도덕적으로 불편함과는 별개로 머멜스타인을 상대로 한 법적 싸움은 현재로서는 그리 승산이 있을 것으로 생각되지 않는다.    



기술 발달과 법률의 괴리 


헬렌 레빗(Helen Levitt), '뉴욕(New York)', Museum of Modern Art, New York, c. 1940.

Photo: Brooke Singer via Flickr/Creative Commons.


과학기술은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고 세계 곳곳에서 매일 새로운 어플과 시스템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하지만 법률은 기술 발전의 속도를 따라가기 힘든 분야인 것이 사실이다.  과거에 만들어진 법률은 한번 세상에 나온 사진이 현재의 인터넷으로 순식간에 세계 어디든 퍼져 나갈 수 있으며 그 파장의 정도와 결과가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고려하지 못하고 있다.   


위에 소개한 사례와는 달리 국내에서는 프라이버시 권리에 대해 명문화하고 있지는 않지만 판례를 통해 초상권을 비롯해 성명권, 명예권 등 인격권, 재산권적으로 보호하고 있다.  판례에서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얼굴 기타 사회통념상 특정인을 식별할 수 있는 신체적 특징에 관하여 함부로 촬영 또는 그림 묘사되거나 공표되지 아니하며 영리적으로 이용당하지 않을 권리를 갖는다"라고 명시하고 있다. 


끝없는 인간의 상상을 실현해 내는 과정이 예술이라고 한다.  하지만 일반적인 사람이 합리적으로 생각할 때 도덕적 문제의 우려가 있을 듯한 타인의 사생활 부분을 주제로 할 때는 상대방의 동의 없이 작품을 만드는 일은 삼가는 것이 법률적으로 안전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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