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이트의 아트마켓 49
이미 존재하는 이미지나 사물을 이용하는 이른바 '차용미술(appropriation art)' 작품이 늘어나고 있다. 이로 인한 저작권을 둘러싼 문제들이 자주 발생하는 가운데 대표적인 작가 사례를 살펴보고자 한다.
지난 2014년 미국 뉴욕의 가고시안 갤러리(Gagosian Gallery)에서 화가이자 사진작가 리처드 프린스(Richard Prince)의 사진 전시회가 열렸다. '새로운 초상(New Portraits)'이라는 제목의 전시는 소셜미디어 플랫폼 중 하나인 인스타그램(Instagram)에 올라온 여러 사람들의 게시물을 사진으로 찍어 커다란 캔버스에 인화한 시리즈였다.
이 전시가 공개되자 당연히 세간의 이목이 집중됐다. 이와 동시에 여러 가지 문제로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첫 번째 논란은 관계자들의 반응이었다. 타인의 게시물을 허락도 없이 자신의 작품으로 만들어 전시한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된 당사자들의 반응은 다양했다. 당시 연일 보도된 인터뷰들을 보면 자신이 유명해져 좋다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허락도 없이 자신의 얼굴이 전시되고 판매되는 상황에 불쾌한 사람들까지 여러 의견이 분분했다. 더욱이 작품이 한 점당 미화 약 9만 달러(한화 1억 7천만 원)에 판매되자 여론이 더욱 들끓었다.
인스타그램 등 소셜미디어에 올라오는 게시물들은 세상에 공개되는 순간 이미 저작권이 부여된다. 저작권(Copyright)은 지적재산권의 한 유형으로 예술적 창작물의 창작자가 가지는 독창적 창작물의 복제, 공표, 또는 판매 등에 대한 독점적 권리이다. 작가가 계약에 의해 양도하지 않은 이상 저작권은 원칙적으로 창작자인 작가에게 있다. 다시 말해 창작자의 허가 없이 게시물을 복제해서 자신의 작품에 사용하는 것은 저작권을 침해할 수 있으며, 침해 시에는 민.형사상 책임이 따르게 된다.
하지만 타인의 저작물을 허가 없이 이용하는 경우에도 저작권 침해 행위에 해당되지 않는 몇 가지 예외 규정이 있다. 이런 경우를 '공정 이용(fair use)'이라는 명목으로 한정적으로 정하고 있다. 공정 이용에는 뉴스 보도를 비롯해 교육, 연구, 비평, 패러디 등 극히 일부의 경우에 한해 인정되는데, 세부적으로도 갖추어야 할 요건들이 있어서 공정 이용으로 인정받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또, 타인의 작품을 이용해 자신의 작품으로 재창작하는 차용미술의 경우도 공정 이용으로 인정되는 경우가 있는데, 이때에도 여러 조건을 만족시켜야만 저작권 침해에서 제외될 수 있다. 특히, 원작을 실질적으로 변형시켜 독특한 자신의 작품으로 재창작해야 하는 것도 그 요건들 중 하나이다.
프린스의 '새로운 초상'에 전시된 작품들은 원작자의 게시물을 변형 없이 그대로 확대 인화하고 아래에 자신의 코멘트와 이모티콘을 더해 한 마디씩 덧붙였다. 이를 두고 이것이 과연 예술인가의 논란과 더불어 공정 이용에 해당하는 지를 두고 전문가들의 논쟁이 일었다.
Photo: Richard Barrett-Small via Flickr/Creative Commons.
사실 리처드 프린스는 이미 존재하는 사진을 다시 촬영하는 기법의 재촬영 사진(rephotography)으로 유명한 작가이다. 그의 재촬영 작품들은 1980년대 후반 담배회사 말보로(Marlboro)의 광고 시리즈 '말보로 맨(Marlboro Man)'의 사진을 재촬영하고 광고 문구만을 삭제한 작품의 연작물 '무제; 카우보이(Untitled; Cowboy)'로 유명해졌다.
그의 카우보이 시리즈 중 한 작품은 지난 2005년 경매회사 크리스티(Christie's) 뉴욕 경매에서 판매가가 미화 100만 달러(한화 약 11억 9천만 원)를 넘어선 최초의 재촬영 작품으로 기록되기도 했다. 하지만 이렇게 그의 작품들이 타인의 창작물에 기초하다 보니 끊임없이 저작권을 둘러싼 논쟁과 법정 다툼이 있어왔고, 현재도 이어지고 있다.
도널드 그레이엄(Donald Graham), '마리화나 담배를 피우는 래스터패리언(Rastafarian Smoking a Joint, 1996)' (좌); 리처드 프린스의 'New Portraits' 전시 중 한 작품 (우).
위에서 소개한 인스타그램 게시물을 이용한 '새로운 초상' 전시 중 두 작품이 저작권 분쟁으로 현재 법정에서 시비를 가리고 있다. 그중 하나는 사진작가 도널드 그레이엄(Donald Graham)의 '마리화나 담배를 피우는 래스터패리언(Rastafarian Smoking a Joint, 1996)'이다. 이번 재판에서도 역시 공정 이용이 인정될 정도로 원작의 변형이 있었는지가 주요 쟁점이자 관찰 포인트 중의 하나인 것 같다. 뉴욕 연방법원의 판결에 귀추가 주목되고 있는 이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