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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인권 Nov 27. 2024

베이비 붐 세대의 주말 밥상 이야기

49. 무침 요리

49. 무침 요리     


#식재료~요리(물리적인 힘)~음식

 식재료가 완성된 음식으로 밥상에 오르기 위해서는 요리 행위라는 물리적인 힘을 빌려야 한다. 물리적인 힘은 식재료를 씻고 다듬고 손질하는 물의 존재와 손놀림과 칼질에다 음식의 맛을 특징짓는 양념, 요리가 작동되는데 필요한 열과 전기 에너지의 총합이다.


물리적인 힘에 앞서 신선하고 질 좋은 식재료를 선별하는 눈썰미, 즉 안목도 필수다. 식재료의 흠결은 곧 음식의 흠결일 수밖에 없어서다. 식재료를 대하고 요리에 임하는 정갈한 마음가짐도 요리의 결과물인 음식에 영향을 미치는 보이지 않는 요소일 것이다.      


오이무침을 위해 튼실하고 야무진 오이 세 개를 깨끗이 씻어 준비한다.


#다양한 요리 방식과 추진 동력

요리 방식은 추진 동력(動力)에 따라 다양하다. 무치고 볶고 조리고 찌고 굽고 부치고 삶고 끓이고, 절이고 담그는 것들 말이다. 볶고 조리고 찌고 굽고 부치고 삶고 끓이는 요리의 추진체는 전부 열(熱)이다. 열을 추진체로 삼는 요리의 명칭이 제각각인 이유는 열을 부리는 방법과 열을 가하는 시간, 물과 식용유, 양념의 사용 여부에 따라 음식의 형태와 맛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반면에 무치는 요리는 맨손이 추진 동력이고 절이고 담그는 요리는 미생물에 함유된 효소가 활동한 결과인 발효(醱酵)과정이 추진 동력이며 소금을 매개체로 한다. 


오이와 부추를 썰어 볼에 담는다.

     

#무침 요리의 특성

 무침 요리는 요리 중 유일하게 신체의 일부가 추진체로 식재료의 모습이 원형 그대로 살아있다는 점에서 가장 원시적이면서 순수한 음식이랄 수 있다. ‘음식은 손맛’이라는 대체 불가한 요리 세계의 불문율(不文律)도 무침 요리에서 유래된 것이 아닐까, 추측해 본다.     


무침 요리는 나물과 채소, 해초, 볶음 요리는 채소와 멸치, 새우, 가공식품, 조림 요리는 채소와 생선, 가공식품, 찜 요리는 작물과 가금류의 알, 생선, 구이는 생선과 채소, 부침 요리는 채소와 생선, 가공식품, 삶는 요리는 고기와 가금류의 알, 작물, 끓이는 요리는 고기와 생선, 채소, 절이고 담그는 요리는 채소와 멸치, 새우, 생선의 알이나 살, 창자 등을 식재료로 사용한다.      


고춧가루 두 큰술고추장 한 작은술다진 마늘진간장매실액올리고당 각 한 큰술참기름 반 큰술통깨를 넣고 버무린다.


이 중 밥상에 주로 오르는 음식의 무리로는 무침류와 볶음류, 조림류, 절임류, 찜류, 구이류일 것이다. 오늘 이야기의 주제는 무침 요리에 관한 것이다.


무침 요리의 특징은 식재료의 형태적 특성과 색깔이 그대로 남아 있다는 것이다. 열이나 전기와 같은 에너지나 도구의 도움 없이 오로지 손의 힘만으로 요리가 시작되고 요리가 끝난다. 나물과 채소, 해초가 식재료인 무침 요리에 양념은 필수적이다. 양념의 종류와 투입량에 따라 무침 요리의 맛이 결정된다. 그러나 무침 요리의 맛에는 양념뿐 아니라 손맛도 작용한다.      


아삭한 오이와 톡 쏘는 부추 맛에 매콤한 양념 맛이 어우러진 오이부추무침.


#음식은 손맛

 손맛은 추상적인 개념이다. 손맛의 사전적 정의는 손으로 직접 음식을 만들어서 내는 맛이다. 애매하고 모호하다. 눈으로 확인할 수 없고 과학적으로 설명할 길도 없다. 개념적 실체의 불확실성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손맛의 용례는 다양하다. 손맛이 좋다, 손맛이 뛰어나다, 손맛이 배어 있다는 손맛을 나타내는 대표적인 표현이다. 


부추 대신 미나리와 양파를 넣고 무친 오이무침 


맛은 혀끝을 타고 전해오는 미각적인 느낌을 말하는 것일진대 손맛은 인간이 느낄 수 있는 감각 너머에 있어 형언(形言) 불가의 형이상학적인 결과물이 아닐까, 생각된다. 말로 표현할 수는 없지만 분명히 인지되는 그 무엇, 이를테면 음식의 품격 같은 것 말이다. ‘음식은 손맛’이라는 표현을 요식업계에서 금과옥조(金科玉條)로 삼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는 것이다.     


돌나물무침


#오이무침

 한국인에게 손맛, 하면 어머니 또는 집밥이 떠오르듯, 어머니와 손맛은 동의어(同義語)나 다름없다. 무침 요리를 할 때마다 어머니 생각이 나는 것은 그런 점에서 자연스럽다. 오이무침, 내가 처음 시도한 무침 요리이자 가장 자신 있는 무침 음식이다. 오이무침은 오이를 큼지막하게 어긋 썰거나 세로로 길게 반으로 잘라 비정형적인 모양으로 칼로 내리치거나 0.5cm 두께의 반달 모양, 혹은 원형으로 썰어 양파, 청양고추와 함께 고춧가루 따위의 양념을 섞어 조물조물 버무린 음식이다.      


숙주나물무침


나는 오이만으로 무치거나 오이와 청양고추 또는 오이와 부추를 섞어 무치는 것을 좋아한다. 오이는 손으로 만졌을 때 단단하고 녹색 빛이 선명한 게 신선하다. 오이무침은 아삭하고 수분이 많아 서늘한 오이와 새콤달콤한 양념 맛이 조화를 이룬 즉석 음식이다. 다른 무침 음식과 마찬가지로 무치는 시간이 짧고 무치자마자 바로 먹을 수 있기 때문이다.     


오이무침의 양념 재료로는 고춧가루와 고추장, 식초, 설탕, 참기름, 다진 마늘 따위다. 고추장을 빼고 고춧가루만 넣으면 깔끔한 맛이 난다. 매콤한 맛까지 즐기고 싶다면 청양고추를 넣고 무치면 된다.      


미역 줄기 무침


#돌나물무침과 톳무침

오이무침과 함께 돌나물무침과 톳무침도 우리집 주말 밥상에 자주 오르는 반찬이다. 돌나물무침은 돌나물을 부드럽게 씻어 고추장, 식초, 참기름, 다진 마늘을 섞어 만든 양념장에 무치거나 초고추장과 참기름만으로 버무려 먹어도 맛있다. 풀 내음이 짙은 자연의 맛을 음미할 수 있어 입맛이 돋는다.     


톳은 해초(海草)류의 하나로 끓는 물에 살짝 데쳐 양념장에 무쳐 먹는다. 생톳이 아니고 소금으로 염장한 톳은 1시간가량 찬물에 담가 소금기를 빼줘야 한다. 데치는 시간은 1분 이내로 무치기 전에 적당한 크기로 자르면 먹기에 편하다. 갈색인 톳을 데치면 파란색으로 변한다. 꼬들꼬들하고 오독오독한 식감과 바다향이 특징이다. 양념 재료는 멸치액젓, 참기름, 식초, 다진 마늘 등이다. 톳무침에 으깬 두부를 넣기도 한다.      


청경채 무침


#콩나물무침과 무생채무침상추 겉절이

 콩나물무침과 무생채무침은 집밥은 물론 식당에서도 흔하게 볼 수 있는 반찬이라는 점에서 보편적이고 무난한 무침 요리의 교본(敎本)이랄 수 있다. 이 밖에 무침 요리로는 미역 줄기 무침, 숙주나물무침, 청경채 무침, 미나리무침, 취나물무침 등이 있다. 데쳐서 말린 고춧잎과 데친 깻잎을 양념에 무친 고춧잎무침과 깻잎무침도 밥반찬으로 그만이다.      


고춧잎무침


빠뜨릴 뻔한 게 하나 있다. 김치만큼이나 친근한 상추 겉절이다. 한입 크기로 자른 상추에 고춧가루, 참기름, 다진 마늘, 멸치액젓, 통깨 등을 섞은 양념으로 버무린 상추 겉절이는 반찬으로 먹어도 맛있고 고추장을 넣고 비벼 먹으면 식욕이 살아난다. 풋풋하면서 자연 친화적인 음식이다.      


고추장을 넣고 밥에 비벼 먹으면 식욕이 살아나는 상추 겉절이


 오이와 부추로 무치는 오이부추무침 요리 방식은 이렇다. 아주 간단해 금방 만들 수 있다.

1. 단단하고 튼실한 오이 세 개를 씻어 준비한다.

2. 오이와 부추를 썰어 볼에 담는다.

3. 고춧가루 두 큰술, 고추장 한 작은술, 다진 마늘, 진간장, 매실액, 올리고당 각 한 큰술, 참기름 반 큰술, 통깨를 넣고 버무린다.

4. 아삭한 오이와 톡 쏘는 부추 맛에 매콤한 양념 맛이 어우러진 오이부추무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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