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레일라 Oct 16. 2021

EP 8.코로나 덕분에 취뽀

시간이 넘쳐나서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코로나는 내가 독일에 있는 동안 시작됐다. 석사 마지막 학기에는 졸업논문을 쓰기 때문에 강의가 하나도 없고, 오직 22주 동안 졸업논문 프로젝트에만 매달리게 되는데, 그 와중에 코로나가 터졌다.


정말 누군가 날 농락을 하고 있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타이밍이 딱 맞았던 것이, 내가 논문 프로젝트를 시작하는 날이 월요일이라고 했을 때, 그 전 주 금요일에 우리 연구소는 확진자 발생으로 인해 전체 셧다운에 들어갔다. 아무도 아무런 준비가 되어있지 않은 상태였음에도 불구하고, 독일 특유의 느려 터진 일처리 속도가 무색할 만큼 모든 것들이 일사천리로 척척 진행이 되더니 수십 개의 전체 메일이 오갔다. 오후쯤에 '우리 연구소는 오늘부로 셧다운을 하니 재택근무에 필요한 것들을 모두 챙겨서 집으로 가라'라는 연구소장의 메일을 받았다. 황당하게도 시작조차 하지 않았던 졸업논문 프로젝트가 중단되어야 했다. 


코로나는 누구에게나 그랬듯 나에게도 다양한 면에서 예상치 못한 불운을 안겨주기도 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코로나로 인한 락다운은 내 취업을 도와주었다.




생전 그렇게 마음 편히 시간이 많았던 적은 아마 초등학교 때 이후로는 처음이 아니었을까 싶다. 이 많은 시간을 어디에 써야 할까 고민을 하며 유튜브를 기웃거리던 나는 "N잡하는 허대리"라는 채널을 알게 되었고, 내가 갖고 있는 지식과 노하우를 돈을 주고 파는 방법에 대해 배우게 됐다. 내가 알고 있는 것들을 잘 정리해서 PDF를 만들어서 온라인으로 전자책을 파는 것인데, 평소에 시간이 많이 없었을 때면 '나중에 시간 날 때 해봐야지'하고 넘겼을 이 영상이 이 때는 왠지 '지금 시간도 많으니까 한 번 해볼까?' 하는 생각을 하게 했다. 


그래서 코로나 락다운 기간 동안 전자책을 썼다. 생각보다 엄청 오래 걸리지는 않았다. 이미 블로그에 올려뒀던 글들이 있었기 때문에 잘 편집하고 이어 붙여서 114페이지에 달하는 자료를 만들어냈다. 이 모든 과정과 더불어 직접 이 책을 판매하면서 다달이 부수입이 증가하기 시작했다. 그냥 잠자는 시간에도 조금씩 들어오는 푼돈을 버는 재미를 보고 그칠 줄 알았던 이것 결론적으로 내 취업을 도와준 일등공신이 되었다.


학교 다닐 때 "창업"이라는 단어는 참 이질적으로 느껴졌었다. 꼭 외향적이고 대인관계 좋은 팔을 걷어붙인 열정 가득한 청년 사업가들이 푸드트럭에서 음식을 파는 것을 연상케 하는 그 단어는, 단 한 번도 내 마음을 흔들었던 적이 없었다. 경영 쪽으로 스펙을 어떻게 쌓아야 하는지 몰랐던 나였지만, 창업이 대단한 스펙이 될 수 있다는 것은 알았다. 하지만 그걸 해볼 용기도, 해보고 싶은 마음도, 관심조차도 없었다.


그런데 이렇게 푼돈을 벌기 위해서 했던 전자책 판매가 결국엔 창업으로 이어졌다. 세금을 납부하기 위해서 사업자등록을 했고, 그 말인즉슨, 창업을 했다는 뜻이었다. 꼭 푸드트럭에 앉아있지 않아도 청년사업가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이런 창업 경험은 나를 평범한 지원자에서 특별한 지원자로 만들어주었다. 나의 이력서는 "석사졸 신입"에서 "생물학 배경을 갖고 있으면서, 비즈니스 경험이 있는" 사람의 것으로 탈바꿈했다.


처음에는 이 모든 활동들이 한국어로 진행되었기 때문에 독일에서 영어를 쓰는 회사들이 관심이나 가질까? 하는 의구심이 들긴 했지만, better than nothing 아니겠냐! 하는 생각으로 이력서에 넣기로 했다. 그리고 실제로도 언어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한국어로 장사를 할 수 있는 사람이 영어를 구사할 수 있다면, 당연히 영어로도 장사를 할 수 있겠지 라고 생각하는 듯했다.




이렇듯, 위기는 기회가 될 수 있다. 코로나가 아니었다면 나는 블로그에 적어뒀던 모든 글들을 책으로 엮을 생각을 해보지 않았을 것이다. 내가 이 경험을 통해 깨달은 것은 다음과 같다.


1. 좋아하는 일은 누군가 알아주지 않아도 꾸준히 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기록을 해두는 것이 중요하다.

2. 위기가 닥쳐도 당황하지 말 것. 유연하게 생각해보면 기회가 될 수 있다.

3. 푸드트럭이 없어도 창업이 가능하다.


Photo by Anna Shvets from Pexels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