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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렁공주 Aug 31. 2021

시간아 멈추어다오~

아님 빨리 흐르던가


 한국행 발권을 하고 하루 이틀 지나니 한국 뉴스가 심상치 않다. 4단계 격상을 이야기하고 있다. 

우리는 이제 가기로 결정했는데!!! '설마, 더 심해지겠어?' 했는데 한국에서의 6주가 지나고 다시 스페인에 돌아와 시차 적응까지 다 끝냈는데 아직도 한국은 똑같다. 불과 1주 전만 해도 앱으로 중국요리도 시키고 분식에 회까지 시켜 먹었건만, 막상 스페인 집에 오니 어떻게 살아갈까 싶다.

토요일 오후에 바르셀로나에 도착해 한 달 비웠던 집을 청소하고 짐을 정리하고 저녁은 간단히 라면을 먹고 자야겠다 생각했는데 남편이 장을 보러 가자고 한다. "힘든데 무슨 장을 봐. 오늘은 대충 먹고 내일 가자." "내일 일요일이야. 다 문 닫잖아"

'앗차, 여기 스페인이지..' 일요일에도 편하게 장을 볼 수 있고, 밤에 앱으로 주문하면 새벽에 프레쉬 배송으로 차가운 아이스크림이며 우유까지 배송받던 지난 6주가 참 까마득하다. 

그렇게 여름휴가는 끝났다는 걸 뼈저리게 느끼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다. 2시부터 5시까지는 점심시간이라 밖에 나가면 내가 원하는 걸 살 수 없다는 사실이 새삼 납득이 되질 않는다. 한국을 다녀오기 전엔 그게 당연한 듯 살아왔건만. 참.


바르셀로나 집을 나서면서부터 꼬박 24시간이 걸려 도착한 한국은 참 모든 것이 좋았다.

집으로 가는 택시 안에서 기사님과 나눈 자연스러운 한국어 대화(?)도. (내 나라말이 참 좋다)

가방이 많았는데 혼자 무거운 거 들지 말라고 선뜻 계단을 올라 여러 번에 걸쳐 옮겨주신 기사님의 정(精)도.

같이 먹지는 못해도 우리 도착시간에 맞춰 따끈한 저녁을 하고 기다리신 엄마의 5성급 식탁도.

그날부터 6주간 우리는 한국의 생활에 감탄을 하며 원래 이곳에서 살았던 것처럼 자연스럽게 그곳에 녹아들었다. 격리 2주 동안은 장을 보러 나가지도 못하니 앱으로 모든 것을 시키고, 먹고 싶은 모든 것이 클릭 몇 번이면 뜨거운 채로 혹은 차가운 채로 문 앞에 와있었다. 문 앞에 두고 가고 사진을 찍어 알려주는 방식은 코로나 맞춤 비대면 방식 배달이 획기적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역시 한국 사람들은 어떤 상황에서도 그에 맞는 대처법을 잘 만들지'

 너무 덥다는 밖에 나가는 대신 집에서 시원하게 있는 것이 오히려 다행으로 느껴질 정도로 2주의 격리는 배달앱과 에어컨 덕분에 견딜만했다. 물론 그 와중에 아들은 아빠한테 받은 구형 핸드폰을 게임하다 먹통으로 만들기도 했고, 딸과 나는 체중계를 멀리하게 되긴 했지만 말이다.


슬기로운 격리 생활이 끝나고 건강검진을 시작으로 병원 투어가 시작되었다.

한국 나오면 필수로 치과 치료도 받고, 이곳저곳 병원을 돌며 비상약도 받고, 검진 결과에 따라 다른 병원에 가서 2차 검사도 하고 모든 것이 정신없게 하루에 몇 개씩 스케줄이 잡혔다. 그 와중에도 짬을 내어 딸과의 소소한 쇼핑, 엄마와의 저녁 2인 데이트, 친구와의 커피타임. 오래 연락이 끊겼던 초등학교 동창도 만나 옛 이야기하며 시간가는줄  몰라 내년을 기약하기도 하며 알차게 하루하루를 보냈다. 

다만 한 가지 가족이 다 같이 여행을 간다거나 나가서 외식을 하지 못하니 매일매일이 좀 별다를 것 없는 생활이었다. 매일매일 스페인으로 가지고 갈 물건들이 속속 배송되어 왔고, 우리의 먹방 버킷리스트에 줄도 하나씩 그어나갔다. 

남편이 격리 면제를 받고 뒤늦게 서울에 합류했고, 내가 그랬듯 병원 투어를 하고, 중간중간 친구들도 만나며 제부와의 와인타임을 즐기며 한국을 즐기고 있었다. 스페인에 오기 전, 남편이 아이들이 여행도 못하고 너무 지루했겠다며 서울랜드를 가보자고 한다. 생각보다 너무 많은 사람이 있었고, 야간개장임에도 너무 더웠고, 오랜만에 타 본 바이킹은 너무 높이 오래 움직여 우리 모두를 어지럽게 만들어 몇 시간 있지 못하고 집에 왔지만 녹초가 되어 시켜먹던 그날은 중국요리는 그 어느 날보다 맛있었다.


아이들은 친정의 강아지 '루피'와 노느라 고대했던 한국의 여름방학이 4단계에 꺾여 할 수 있는 것이 별로 없음에도 불구하고 불평하지 않았고 스페인으로 출발하던 날 연신 루피를 안고 사진을 찍으며 스페인으로 데려가자며 아쉬워했다.

우리의 6주는 특별히 한 것은 없지만 가족과 집에서 많은 시간을 보낸 조금은 다른 여름이었다.

엄마의 음식은 우리를 항상 즐겁게 했고, 여동생과 제부의 배려는 우리를 편하게 했으며 형부가 보내준 깜짝 선물로 우리의 식탁은 더 풍성해졌다. 우리에게 넓은 방을 내어주고 작은 방에서 잤던 남동생. 외삼촌과의 FIFA 게임은 아들을 여러 번 행복하게 만들었고, 딸을 데리고 강남역으로 가서 요즘 스타일을 알려주고 쇼핑도 같이 하는 외삼촌을 딸도 엄청 좋아했다.

가지고 갈 수 있는 짐이 하나여도 두 개여도 항상 캐리어는 무게가 규정에 간당간당한다. 다 가지고 오고 싶어서 이것저것 시키다 보니 선택해서 두고 와야 하는 것도 있었다. 

일 년은 생각보다 금방 간다. 내년에 꼭 가져오도록 하겠어!!!!

한국에 갈 때보다 바르셀로나로 오는 길은 더 길게 느껴지고 지루했으며 시차 적응도 오래 걸렸다.


한국에 다녀온 걸 아는 지인이 남편에게 전화해 오랜만에 통화를 한다.

"한국 정말 너무 좋더라고요, 오기 정말 싫었습니다!" 똑같은 얘기를 몇 번이나 한다.

표현을 안 해서 몰랐는데 3주의 짧은 시간이 그에게는 '너무도' 좋은 시간이었다는 게 참 다행이고,

이 짧은 추억으로 내년 여름까지 또 잘 버티기를 빌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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