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난하지 않은 조용한 휴가
내가 출근한 사이, 가끔 문이 대신 내 공간의 주인이 되는 날이 있다. 그럴 때면 나는 ‘우렁도령’을 둔 기분이다. 실제로 나의 우렁도령과 설화 속 우렁각시는 닮은 면이 있다.
우렁각시 속 가난한 청년은 부모 없이 홀로 들판을 일구며 하루하루 생계를 이어갔다. 하루 겨우 두 끼를 먹으며 집을 돌볼 틈 없이 바쁜 하루를 보내는 청년의 집이 어느 날부터 따끈한 쌀밥과 맛있는 반찬은 물론 집이 깨끗하게 정돈되어 있었다. 모두가 알고 있듯 우렁각시의 소행이었다.
우리 집도 그랬다. 문이 집을 지키는 날이면 집의 작은 것들이 바뀌어 있을 때가 많았다. 이를 테면 이런 것.
세면대 물 빠짐이 쏙 말끔해지고, 세탁기 배수로가 역류하던 것이 더 이상 없었다. 자꾸만 목이 꺾이던 헤어 드라이기, 삐뚤게 닫히던 욕실 상부장, 약해져 있던 변기 수압까지, 잔고장이 나있는 것들이 하나같이 멀끔하게 정비되어 있었다. 문은 공대생답게 수리가 필요한 곳들을 귀신같이 알아챘고, 뚝딱뚝딱 고쳐놓고는 했다.
집에 없는 물건이 새로 생겨 있기도 했다. 이를 테면 후라이팬.
자취 시작할 때 산 후라이팬이 연식이 다 했는지 코팅이 거의 다 벗겨졌었다. 하지만 그런 대로 쓸만 해서 버리지 않고 계속 사용하고 있었다. 설거지할 때 살짝 성가신 것만 빼면 그럭저럭 괜찮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느날 집에 오니 말끔하게 코팅된 후라이팬이 인덕션 위에 턱- 올려져 있었다. 그것도 우리 집 인덕션과 딱 맞는 크기로.
“후라이팬 샀다네. 크기는 인덕션 화구 중에서 큰 쪽에 맞춰서 샀어.”
문이 새로 들인 새 후라이팬을 사용하면서 그동안 내가 얼마나 불편하게 살았는지 깨달았다. 문은 나도 알지 못하는 사소한 불편까지도 눈여겨보고 고쳐주는 사람이었다.
주방에 처음 보는 형태의 물건이 올려져 있는 날도 있었다.
“그거 칼갈이! 쑥이네 칼 잘 안 드는 것 같아서 다이소에서 칼갈이 사왔어. 이거 동생이 좋다고 추천해줬어!”
칼이 잘 들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는 건 주방에서 칼을 사용했다는 얘기고, 그 얘기인즉슨 문은 내가 없는 사이 요리도 했다.
하루는 집에 들어서자마자 맛있는 냄새가 집안 가득 펴져있었다. 문이 따뜻한 토마토스튜를 끓여 놓은 것이다. 토마토, 양파, 브로콜리, 당근 등 야채와 소고기를 듬뿍 넣어 스튜를 냄비 가득 끓이고는 한 번 먹을 분량 만큼씩 소분해두었다고 했다. 야채 손질하는 게 제법 귀찮았을 법도 한데 좁은 부엌에 서서 야채를 손질하고, 고기를 볶고, 냄비 앞에 꼭 붙어서 스튜를 저었을 문을 생각하니 괜스레 미안하기도 하고 고맙기도 했다.
‘이 고마움을 어떻게 갚아주지?’ 생각하는데 주방에 방울방울 튄 토마토스튜 자국을 보고는 배실배실 웃음이 났다. 그날은 냄비가 너무 작다며 ‘다음엔 꼭 큰 냄비를 사야 한다’는 문을 말리느라 오히려 내가 혼이 났다.
문이 기다리는 집으로 향하는 발걸음은, 아침에 문이 배웅하던 내 발걸음보다 훨씬 더 가볍고 빨라진다.
아침잠에 취해 눈도 제대로 못 뜨고, 말 한 마디 건네기도 어려워 보이던 그 사람이, 내가 없는 동안 내 공간에서 하루를 바지런히 보내고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말끔하고 태평한 얼굴로 나를 맞아주니까. 익숙한 현관문을 열고 들어섰을 때, 아무 일 없다는 듯 평온한 얼굴로 나를 맞아주는 사람을 보는 것만으로도 하루가 다 부드러워진다.
그렇다. 문이 우리 집에 오는 게 반가운 이유는 그가 우렁도령이기 때문이 아니다. 존재만으로 나를 부드럽게 어루만져주는 사람이니까. 문이 있으면 작은 우리 집에 평화와 안정이 깃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