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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꾸는 공무원 자인
Jan 09. 2023
혹시 꿈이 뭐예요?
공무원에 합격하고 단 한 번도 들어 보지 못한 말.
"공무원 시험에 합격하니까 다른 꿈이 생겨버렸어."
실제로 내가 국가직 세무 공무원을 최종 합격을 하고 술자리에서 친구에게 했던 말이다.
지난 나의 삶을 돌아봤을 때 나는 이렇다 할 꿈이 없었다. 대기업 사장, 국회의원 같은 돈 많이 벌고 유명한 사람이 되고 싶었지만 한 번도 그런 직업을 갖게 될 거라고 생각해 본 적은 없다. 그저 '그런 삶은 어떨까?' 망상하는 정도. 모순적이게도 꿈이 없어서 더 열심히 공부했다. 나중에 하고 싶은 것이 생겼을 때 낮은 성적 때문에 발목 잡히지 않기 위해서. 그래서 원하는 대학에 떨어지고 그보다 낮은 대학에 갔을 때도 사실 크게 불만은 없었다. 재수나 반수를 할 생각도 없었다. 어차피 나에겐 뭐가 되고 싶다는 생각이 없었으니까.
대학교 입학하자마자 놀기도 엄청 놀고 연애도 실컷 하니까 슬슬 취업을 걱정해야 할 3학년이 되었다. 3학년 1학기 중간고사가 끝나고 동아리 회식이 있었는데 그때 휴학을 마치고 돌아온 선배와 우연히 술을 같이 먹게 되었다. 7급 국가직 세무 공무원 공부를 하느라 휴학을 했더랬다. 작년 겨울에 합격을 하고 이번에 복학해서 학교를 다니는 중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나에게 딱히 세무사 할 거 아니면 공무원을 하라고 꼬셨다. 세무학과 특성상 학과 사람들이 대부분 공인회계사나 세무사를 공부했다. 당시 나는 본 전공이랑 너무 맞지 않아서 복수 전공을 하고 있던 터라 선배의 말이 되게 솔깃했다. 그래서 진짜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 2학기부터 공부를 시작해서 4학년 1학기에 9급 국가직 세무 공무원에 합격했다.
공무원 시험 어렵다 어렵다 하도 귀에 딱지가 들어서 나는 내가 떨어질 줄 알았는데 덜컥 합격을 해버렸다. 기쁨도 잠시 별안간 두려움이 엄습했다. '내가 진짜 평생 이 일만 해아 한다고?', '하다가 일이 안 맞으면 어쩌지?', '공무원 시험 준비 말고는 스펙도 없는데 만약에 그만 두면 뭐 먹고살지?' 등 공부하기 전에는 생각도 못했던 고민들이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합격해서 나보다 더 기뻐하시는 부모님 앞에서, 취업 준비 및 자격증 공부 등으로 바쁜 친구들 앞에서, 공무원 시험에 몇 번이나 떨어져서 좌절하고 있는 선배 앞에서 도저히 나의 고민을 말할 수 없었다. 합격한 선배들과 친구들은 무슨 그런 걱정을 하냐고 쓸데없는 걱정이라고 했다. 공인회계사나 세무사에 합격한 사람들도 어쩌면 평생 그 일을 하게 될지도 모르는데 나와 같은 걱정을 하는 사람이 단 한 명도 없었다.
불안했다. 아무도 나의 고민에 해결책을 줄 사람은 없을 것 같았다. 23살의 나는 더 열심히 살았다. 합격 전보다 학교 수업에 충실히 임했고 시험공부도 열심히 했다. 더 많은 책을 읽었고 독서 모임도 만들어서 임원으로 활동을 했다. 다양한 학술 모임에도 참가하고 강연회도 가보았다. 다양한 활동을 하니 내가 정말로 무엇을 좋아하는지 알게 되었다. 나는 책을 읽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독후감을 쓰는 것도 좋아하고 블로그에 내 글을 올리는 게 좋았다. 사람들이 내 글 읽고 댓글을 달면 짜릿했고 내가 쓴 시를 다른 사람에게 보여줄 때에는 설레서 가슴이 두근거렸다. 공무원에 합격을 하고 나니 작가가 되고 싶다는 꿈이 생겼다.
살면서 처음으로 가슴 뛰는 일을 찾게 되어서 매우 신났다. 먼저 부모님께 말씀드렸다. 나는 작가가 될 거라고. 시를 써서 신춘문예 당선이 되고 싶고 내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어서 서점 젤 앞에 전시되어 있는 모습을 보고 싶다고. 엄청난 반응까지는 바라지 않았지만 이렇게 시큰둥할지 몰랐다.
"공무원도 됐으면서 뭘 작가까지 되려 해. 일 시작해봐라, 힘들어서 못 할걸?"
나도 안다. 부모님은 오랜 기간 직장 생활을 하신 분이란 걸. 그래서 퇴근 후에 무엇을 하는 것이 엄청 어려운 일임을 당신들이 모르는 건 아니다. 그래도 그렇게까지 나의 꿈을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취급해서 속상했다. 하루는 친구들과 술을 마시면서 비슷한 이야기를 했다. 작가가 되고 싶다고 작가로 유명해지고 싶다고.
"아, 그래? 근데 너 이미 공무원 된 거 아냐?"
부모님보다 직설적인 말은 아니었다. 그들도 이미 공무원이라는 안정적인 직장을 가졌으면서 뭘 또 하려 하는지 이해를 못 했다. 나의 꿈을 응원해주는 사람도 있었지만 이해를 못 하는 사람들이 더 많았다. 이해를 못 했기보다는 '공무원이 뭘 더 하냐'라는 식이다.
부정적인 반응을 볼 때마다 나는 당시 운영하고 있던 블로그 포스팅을 더 열심히 하기 시작했다. 서로 이웃 수를 늘려갔고 글 올리는 횟수를 늘렸다. 점점 조회수가 늘어났고 공감 및 댓글 수도 늘어갔다. 세무서에 일할 때에는 국세 문예전에 시를 출품에서 입선을 하기도 했다.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아도 되려 무시를 해도 작가가 되겠다는 꿈은 포기하지 않았다. 그래서 지금 이렇게 브런치에 글을 쓰는 것도 나의 꿈을 알아 달라는 자아실현의 일부분이다. 4년 전에 작가가 되겠다고 말한 대학생은 두 번째 직장에 다니면서 여전히 글을 쓰고 있고 오히려 그 전보다 더 많은 글을 쓰고 있다고. 최근에는 유튜브 채널을 개설해서 영상을 업로드하고 있다. 내년이면 문예창작과 사이버 대학원에 입학하려고 준비하고 있다.
공무원 생활을 한 지 2년이 되어가는 지금, 주변에 나처럼 다른 꿈이 있는 사람은 보기 힘들다. 말을 안 하는 것도 있겠지만 실제적으로 다들 공무원 이외의 다른 일은 잘 생각하지 않는다. 공무원은 투잡이 불가능하지만 지방 공무원법에 의하면 제한된 범위에서 돈을 벌 수 있다고 나와 있다. 그렇지만 겸직 신청을 하는 공무원은 매우 극소수다. 윤영덕 의원실이 제공한 통계를 보면 교원과 군인을 제외한 국가 공무원 중에서 겸직 허가를 받은 공무원은 2020년 기준 1,769명 뿐이다. 중 저술은 401명밖에 되지 않는다. 나도 그 극소수 공무원 중에 하나다.
"혹시 꿈이 뭐예요?"
누구에는 자주 듣는 말이지만 공무원인 나는 단 한 번도 들어보지 못했다. 만약에 누군가가 나에게 저 질문을 한다면 신나서 나의 인생 계획을 줄줄 늘여놓을지도 모른다. 저 질문을 했다는 것은 나를 특별하게 바라봤다는 의미일 테니까. 공무원이라고 다 무사안일주의에 빠진 철밥통이 아니다. 나처럼 공무원 합격한 후에 꿈이 생긴 사람도 있고 다른 꿈을 위해서 공무원이 된 사람도 있다. 그렇다고 오해는 마시길. 회사에서는 나의 업무를 누구보다 잘 수행한다. 나의 꿈은 퇴근하고 빛을 발한다. 꿈꾸는 나, 인생이 늘 새로움으로 가득 찬 나. 이게 나의 정체성이다. 그러니 혹시 내 글을 읽고 있는 꿈있는 공무원이 있다면 자신의 꿈을 더 자신감 있게 말하라고 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