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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꾸는 공무원 자인 Jan 30. 2023

이제는 웃으며 말하는 세무공무원 그만둔 이야기 2

의원면직을 결심한 후의 나

지옥은 벗어나라고 있는 것이고 나는 벗어날 준비를 마쳤다.


 10월이 딱 되는 순간 지금 내 삶은 변화가 절실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당장 뭐라도 해야 했다. 먼저 몸을 움직이기로 했다. 집 근처에 있는 요가 학원을 등록했다. 매일까진 아니어도 일주일에 3번은 한 시간씩 요가로 수련을 했다. 뭐라도 시작하니까 모든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장 저 멀리 먼지 속에서 잊혔던 두꺼운 영어 단어 책을 꺼내 들었다. 정말로 뭐에 홀린 듯 단어를 외우기 시작했다. 단어장을 만들고 출퇴근 버스에서 단어를 외웠다.


 10월 동안 요가를 하고 영어 단어를 외우면서 이 지옥 같은 세무서에서 탈출할 생각에 회사 가는 길이 그렇게 힘들지 않았다. 11월이 되어서는 휴직할 생각을 흘리고 다녔다. 그때 당시 아직 한 학기가 남았기 때문에 복학을 핑계로 휴학을 해야 할 것 같다고 반장님께는 미리 말씀드렸다. 그 당시 사수였던 반장님의 말씀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여기가 안 맞는다고 생각하는 직원들을 많이 봤어. 1년 일해보고 아니다 생각 들면 그만둬. 이 조사관은 똑똑하니까 여기서 나가도 뭐든 할 수 있어."

나중에 행정복지센터 민원팀으로 일하고 있을 때 반장님이 우연히 출장을 오셨는데 그때 너무 반가워서 이 말씀을 해주신 것에 감사했다.


 과의 모든 직원이 나의 휴직 소식을 알게 될 즈음엔  좀 과감해졌다. 점심시간을 틈타서 공부하고 쉴 때에는 영어 단어를 외웠다. 그러니 이제 다들 내가 나가는구나라고 생각했다. 다만 내가 놀란 것은  내가 그만둔다는 것을 아무도 뜻밖의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렇게 내가 힘들어 보였나.  나를 따돌린 것을 그들도 인식하고 있던 것일까. 공무원이 그만둔다 하면 다들 놀란 눈으로 쳐다볼 줄 알지만 실상은 또 그렇지도 않다. 그냥 '쟤도 그만두는구나.'이렇게 생각할 뿐이다.


 12월이 되고 본격적으로 인강을 결재하고 책을 사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일 때문에 절대적인 공부시간이 너무 부족했다. 다음 학기 복학은 3월 안에 그때까지 일하면서 공부하다가는 다음 해 시험에 바로 합격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들었다. 그래서 초 강수를 두었다. 바로 계절학기. 당시 전공은 아니지만 교양 필수 과목을 하나 안 들은 게 생각이 났다. 원래는 한 학기에 두 과목을 들을 생각이었는데 교양 필수 과목을 겨울 계절 학기로 수강하고 봄 학기에는 전공 필수 과목을 듣는다면 더 일직 휴직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당장 계절 학기 수강 신청을 하고 하자마자 휴직계를 냈다. 간절하면 온 우주가 돕는다고 했나? 정말 그때는 내가 탈출할 수 있는 모든 조건이 갖추어졌다.


 12월 중순. 드디어 나는 휴직에 성공했다. 다신 저 버스를 타지 않아도 되고 다신 저 건물에 들어가지 않아도 되고 다신 저 자리에 앉지 않아도 되고 다신 저 사람들을 보지 않아도 되고 다신 저 일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에 너무 기뻤다. 전체 과 인원 27명 중에 단 3명만 나를 배웅해주었지만 상관없었다. 그저 행복했다. 그렇게 행복한 기분을 마음껏 느끼고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나는 공부 계획을 짰다.


 국가직 시험은 경찰 행정직으로 응시를 했다. 필기 합격은 했지만 면접에는 가지 않았다. 어차피 지방 행정직 필기가 합격한 상태였고 나 말고 더 간절한 사람이 붙기를 바라는 마음도 있었다. 합격에 대한 간절한 마음은 내가 잘 아니까. 하루에 15시간은 우습게 공부하니 5개월 만에 지방 행정직 공무원 필기시험에 합격했다. 면접도 수월하게 보아서 결국 8월에 최종 합격을 했다. 필기 성적이 높아서 우리 기수 중에 제일 먼저 임용을 할 수 있었다. 그리고 수석은 아니지만 (근데 수석일 수도?) 임용식 때 내가 대표로 나가서 선서도 했다.


 세무서 다니는 일 년 동안은 정말로 인생이 이렇게 힘들 수도 있나 계속 고민했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생각해 보아도 그때 당시 내 인생의 난이도는 극상이었다. 물론 지방 행정직 공무원의 일도 힘들지만 국가 세무직 공무원에 비하면 견딜 수 있다. 최소한 도망치고 싶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도망친 곳에 천국은 없지만 굳이 지옥에 있을 필요는 없다.


 2편에 걸쳐서 내가 그만둔 이야기를 쓰는 이유는 저 때의 나의 힘듦이 현재 진행형인 모든 공무원들 그리고 직장인에게 살아갈 용기를 주기 위해서다. 나에게 고통만 주는 회사를 그만둔다고 하늘이 무너지지 않는다. 아니, 오히려 하늘도 감동해서 나에게 더 나은 길을 제시해 줄지도 모른다. 내가 그만두면 실망할 사람들의 얼굴이 떠오르는가? 정말로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당장이라도 그 회사를 그만두라고 할 것이다. 당시 내가 겪었던 모든 일을 엄마한테 말하고 그만둔다고 이야기하니까 엄마가 그랬다.

"내 귀한 딸, 다시는 그딴 곳 안 보낸다."

 

 나처럼 결심하기 참으로 어렵다는 것을 잘 안다. 나이 때문에, 다른 것을 할 용기가 없어서, 경제적인 상황 때문에 등등 많은 현실적인 이유가 나를 가로막을 수 있다. 그때마다 나는 그 무엇보다 내가 소중하다고 말해주고 싶다. 내가 만약 저 당시에 달리는 차에 내 몸을 던졌다면? 지금 이렇게 웃으면서 글을 쓰고 있는 나도 없었을 것이다. 공무원 자살 기사가 너무 많이 나와서 속상해서 하는 말이다. 나도 한 때 저 기사의 주인공이 될 뻔 한 사람이니까. 하나뿐인 내 인생은 너무도 소중하고 공무원 말고 다른 길은 얼마든지 있으니 (다른 직렬도 많으니) 정말로 힘들다면 그만둘 수 있는 것도 용기다. 내 글을 읽고 많은 청춘들이 희망을 갖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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