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 집이 작아요
커피를 좋아하지 않아서 카페에 자주 가질 않는다. 느긋하게 앉아서 책을 읽을 요량으로 찾긴 하지만 아주 가끔이다. 오래 잊질 못하겠더라. 아무도 없는 곳이라면 죽치고 있을 텐데 한 명이라도 있으면 관찰하게 돼서 집중이 안된다. 집중력이 부족한 탓이기도 하고 사람에 대한 호기심 때문이리라. 개중에 궁금하지 않은 사람들이 있는데, 바로 카페에서 공부하는 사람들이다. 테이블에 재료들을 잔뜩 올려놓고 열중하는데 과목 말고는 관찰할 것이 없다. 카공족이라고 하던데 적지도 않다. 호기심이 일지도 않을뿐더러 집중이 되나 싶은 생각에 별스럽게 봤다. 그런데 어느 날 팟캐스트를 듣고 생각이 바뀌었다.
주거 문제를 다룬 내용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특히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주거 환경의 열악함을 이야기하면서 집이 좁아짐에 따라 많은 기능들이 외주화 되고 있다는 진단을 했다. 무인세탁소나 카공족을 예로 들면서. 몸만 뉘일 공간만 허락하는 닭장 같은 원룸이나 고시원에서 빨래를 하고 널기가 버겁다. 빨래뿐이랴. 주방이 분리되어 있지 않으면 아무리 좋은 환기 시설이 있더라도 옷이며 이불에 냄새가 스며든다. 요리도 그렇고 집에서 할 수 있는 것이 많지 않다. 그래서 공부도 자연스레 밖에서 하게 되는 거라고 본다. 요즘 우후죽순 생겨나고 있는 스터디 카페를 보면 우리나라의 과도한 학구열도 엿볼 수 있지만 주거환경의 열악함이 한몫을 한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연인과의 사랑도 그렇다. 영화의 사례만 보더라도 해외에서는 사랑을 나누러 모텔에 가지 않는다. 대게 상대의 집에 간다. 서구에 비해 성에 대한 개방도가 다르기 때문에 모텔과 같은 어두침침한 곳에서 거사를 치르는 것이 패턴화 되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허나 이런 연유에는 집의 쾌적하지 못함이 있지 않을까. 화양연화의 영어 제목은 In The Mood For Love다. 짧은 사랑이라도 거기에는 무드가 필요하다. 할 일만 하고 서로를 바라볼 여유도 없이 씻고 후딱 정리하고 나가는 것이 아니라 상대의 취향이나 집의 분위기로부터 나오는 느낌을 곱씹어야 하지 않을까. 그러려면 적당히 작아야 한다. 너무 작아선 안된다. 작은 집이 가장 내밀한 사랑까지도 감당하지 못하게 되니 집다운 집이라고 할만한 아파트에 대한 열망이 그토록 커가는 것이 아닌가 생각해본다.
미니멀리스트가 꽤나 고상한 무소유의 마인드 같지만 내 생각에는 점점 좁아지는 주거환경 때문에 택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 아닐까 조심스레 생각해본다. 나쁘게 말하면 정신승리고 좋게 말하면 적응이고 합리화인 것. 나이 지긋하고 대궐 같은 집에 사는 미니멀리스트는 못 본 것 같다. 하나의 문제로 환원하는 것이 좋은 분석은 아니겠지만 2~30대 사회 초년생의 주거 환경은 너무 열악하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