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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펠 Jun 05. 2023

엑스트라 없는 주인공은 없다.

엑스트라 없는 주인공은 없다.

어제 엄마랑 전화하면서 했던 이야기




"늘 네가 주인공일 수는 없어, 엑스트라나 조연으로 살 때도 있지."


나는 사실 어딜 가든 주목 받고 사랑 받고 칭찬 받는 것에 익숙해져있다.

문제는 지나치게 익숙해져서 반대의 상황은 잘 견디지 못한다는 것.


초등학교 때 어른들 사이에서 유일한 초딩 수강생으로 대금을 배우러 다닐 때부터 였나.


나는 어디서든 예쁨 받는 막내거나 칭찬 받는 모범생이거나 친해지고 싶은 재밌는 친구거나


아무튼 나는 (일단 신체적으로도 어디 숨겨질 크기는 아니었고..) 어떤 무리에서든 구석에 조용히 입 다물고 앉아서 가만히 사람들을 지켜보는 쪽은 아니었다.




나쁘게 말하면 나대는 관종인데


평생 그렇게 살다보니 그게 너무 익숙해져서


내가 조금이라도 주목 받지 못하는 상황을 잘 견디지 못한다는 것,


어제 엄마랑 전화하면서 새삼 깨달았다.


(원래도 그런 상황을 썩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을 어렴풋이 느끼고 있긴 했지만








이번 연극 동아리가 더 힘들었던 이유도 그런 것들 때문이었다


부원들이 나랑 잘 맞지 않는다고, 공부할 시간을 너무 뺏긴다고, 연극이랑 잘 안 맞는 것 같다고 생각했는데


(그것도 물론 어느 정도 다 맞는 말이기도 한데)


연극 동아리가 마음에 들지 않았던 더 근본적인 이유는 그게 아니었다.














이번 무대에서 나는 엑스트라급 조연이었다.


여러 번 공연을 올린 경험이 있는 기존 부원들이 연극의 모든 것을 이끌어 나갔고,


경험이 없는 나는 조용히 따라가기만 했다.


내가 내는 아이디어들은 최선이 아니라 차선책으로 밀려났고


(이건 배우는 입장이니까 어쩔 수 없었다고 쳐도) 그외 상황들에서도 나는 주목 받는 주인공이 아니었다.




지금까지 나를 주인공으로 만들어 준 여러 요인들이


이 친구들에게는 아무런 가치가 없는 것들이었다.




문을 열고 입장하면 짜잔, 하고 스포트라이트 조명이 켜지는


그런 순간들이 나는 더 익숙하다.




엄마아빠는 그런 내가 걱정된다고 했다.


왜냐면 우리는 늘 주인공일 수 없으니까.




때로는 다른 주인공들의 멋드러진 성공을 위해서


조용히 뒤에서 희생할 줄도 알아야 한다고 했다.




질투로 배가 아프고 내가 초라하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엑스트라 역할도 할 줄 알아야 더 멋진 주인공이 될 수 있다고.


조연급 역할을 한다고 해서 절대 내가 실패한 사람이나 초라한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니까 굳이 발 벗고 나서서 남을 위해 희생하는 그림자가 되려고 할 필요까진 없지만,


설사 우리가 그렇게 된다 하더라도 너무 속상해 하거나 절망하지 말 것.




우리는 주연도, 조연도, 연출도, 심지어 관객도 될 수 있는 긴 연극을 만들어 가고 있는 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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