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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말하는 환자들

안태환의 의학 오디세이




그럴 일은 없겠지만 과학적 근거가 결여된 정보를 바탕으로 환자에게 조언을 해왔다면, 거대 제약사의 현혹에 특정 약을 처방해왔다면, 나날이 발전하는 치료법을 따라가지 못하는 게으른 의사들이 존재한다면, 환자들로부터의 신뢰는 없을 수 있겠다. 이럴 때의 불신은 온전히 의사 탓이다.

수많은 논문과 임상 통계를 바탕으로, 검증된 의학적 사실로서만 치료할 때, 의사는 환자의 질환을 치료하는 존재로서 인정받으며 객관화된 의과학자가 된다. 대부분의 의사가 가지는 사명감이며 직업적 태도이다. 혹여 예외가 있을 순 있겠지만 전체주의적 획일성을 전제로 한 직업군이 아니고서야 의료계로선 모난 돌일 뿐이다.


자신의 건강을 책임지는 의사들에게 사실대로 이야기하지 않는 환자들이 종종 있다. 심리의 근간에는 주의사항을 지키지 않아 의사로부터 질책을 받지 않으려는 자기방어 기제일 것이다. 소탐대실이다. 건강을 위험으로 몰아넣는 통증이나 일상의 습관을 숨긴다면 정확한 질병의 진단을 방해하고 치료에까지 영향을 줄 수 있다.

질환의 원인에 대해 다양한 가능성을 열어두고 과학적 의술과 임상적 경험치에 근간한 치료의 객관화가 의사의 태도로서 전제된다면 환자는 질환과 관련된 사실을 의사에게 솔직담백하게 이야기해야 한다. 굳이 숨길 필요가 없다. 의사와의 상담을 통해 환자는 향후 예측되는 문제를 예방하고 자신이 통제할 수 있는 영역 안에서 효과적으로 질병에 대응할 수 있음은 물론이다.


진료실에서 흔히 접하는 환자의 악의 없는 거짓말은 “처방된 약을 잘 먹고 있다” “수술 후 주의사항을 잘 따르고 있다”가 주를 이룬다. 엄격한 치료와 처방을 반드시 따라줘야 하는 질병을 갖고 있지만 이를 실천하지 못하는 일부 환자들의 일반화된 변명이다. 집에서, 직장에서 질병에 영향을 주는 지켜야 할 수칙을 피치 못하게 어겼을 시, 솔직하게 의사에게 털어놓을 필요가 있다. 이뿐만이 아니다. 환자가 피해야 할 음식과 관련된 왜곡은 별것 아닌 일이 아니다. 합병증의 위험성을 높인다. 고혈압·당뇨·천식과 같은 만성질환 치료는 지난해진다. 나아가 수술 후 예후도 악화시킨다.


의사는 질환을 앓고 있는 환자가 완전히 믿어도 되는 사람이어야 한다. 환자와 의사라는 관계 속 당위에서 오는 강제가 아닌 의학의 보편적 관계 설정이 그렇다. 환자를  돕기 위해 존재하는 사람이 의사이다. 궂은 말, 모진 말 천지인 세상살이에서도 환자가 말하는 모든 정보는 비밀 보장의 법칙에 따라 완벽하게 보호받는다는 점을 믿어도 된다. 많은 환자는 음주와 흡연량을 의사 앞에서 애써 줄여 말하기도 한다. 만약 당뇨를 앓고 있다면, 당 수치는 악화일로를 걸을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어떤 처방약은 술·담배와 만났을 때 약효를 잃거나 심각한 부작용을 일으키기도 한다. 술과 담배를 남용하고 있는 상황을 피해 간들, 하등 도움이 되지 못한다. 질환에 대한 의사의 치료 결정에 방해가 될 뿐이다. 만성질환의 확장과 치료는 험난해진다.


환자가 굳이 그럴 필요가 없는 일상적 습관을 말하지 않거나 숨길 때, 증상과 생활 습관에 대한 정보로부터 격리된 의사의 판단 오류는 병을 키울 뿐이다. 자신의 건강과 생활 습관에 대해 의사에게 솔직하게 털어놓을 때 사안에 따라 다소 부끄럽고 민망할 수 있지만, 질환을 대하는 현명한 태도이다. 통증 앞에선 그 누구도 부끄러움마저 떠올려지지 않는다.


모름지기 인간은 자신이 속한 사회 집단에서 요구하는 도덕과 질서에 부응하며 살아간다. 그와 동시에 진정한 자기와 분리된 ‘가면’을 쓰고 살아가기도 한다. 대게 그렇다. 실존적이다. 그러나 질병을 치료하기 위해 만난 의사를 신뢰하지 못하고 주의사항을 간곡하게 당부했지만 겉으로만 순응하는 것은 환자의 소심한 위선이 될 수 있다.


저마다의 사정을 헤아려 환자의 거짓에 애써 모른 체하기도 하지만 환자와의 불편함을 감내하고 쓴소리를 할 수밖에 없는 중증의 환자라면 상황은 달라진다. 으레 잔소리가 많아진다. 보통 이럴 때면 환자는 의사의 눈빛을 피하며 친절하지 못한 의사라는 편견을 지닐 수 있겠다. 그러나 환자를 낫게 하려는 의사의 진정성은 때론 듣기 싫은 잔소리로, 일상 습관의 개입으로 나타날 뿐이다. 아픈 병을 낫게 하려는 의사에게 환자의 소소한 거짓말, 굳이 그럴 필요까지 없다. 의사는 오롯이 환자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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