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자라나 Dec 08. 2023

싸장님 바빠요?

휴일이 더 바쁜 남편

 따스한 겨울 햇살이 비추는 집안의 공기는 휴일을 맞아 더 따스하고 여유롭게 느껴진다. 아침을 간단히 먹고 커피 한잔을 들고 말끔해진 식탁에 앉아본다.

 여유로운 휴일 아침의 우리와는 달리 그는 오늘도 무척이나 바쁘다. 특히나 그는 식사 후에 더 바쁘다.

"싸장님 바빠요?" 우리 집 싸장님은 오늘도 싸장실에 계신다. 

"아빠, 빨리 나와 나도 급하단 말이야"


그렇다. 남편은 '싸장님', 화장실은 '싸장실'이다. 

( 이 글을 읽으시는 분께 저급한 표현에 대한 죄송함을 표합니다.)


 남편과 나는 종종 짓궂은 농담을 던지기도 하는데 농담이 지나쳐 이러한 표현까지 이르렀다. 화장실에 급하다는 둘째는 아마도 자기랑 놀아달라는 마음을 그런 식으로 표현하는 것 같다. 아빠가 화장실에 조금 오래 있는다 싶으면 둘째는 어김없이 가서 문을 두드리며 나오라 소리친다. 그러면 남편은 마지못해 서둘러 나온다. 

 

 물론 목적이 있어서 화장실에 가는 거겠지만 긴 시간 안 나오는 남편을 보면 종종 울화가 치밀 때가 있다. 남편은 볼일을 보면서 핸드폰을 꼭 가지고 간다. 시간을 보려는 의도로 핸드폰을 들고 들어간다는 핑계를 대더니만 화장실에 시계를 설치하고 나니 그 핑계는 쏙 들어가 버렸다. 그래도 끊지 못하는 습관이다. 

 신혼 초에는 그냥 그러려니 하고 별문제 없이 넘어갔다. 하지만 아이들이 좀 크면서 휴일엔 자꾸 아빠를 찾으며 놀아달라고 하니 문제가 생겼다. 남편이 조금만 오래 있어도 아이들은 화장실문을 쾅쾅대며 두드리기 일쑤였다. 그 아이들을 말로 달래고 어르고 했지만 아빠가 화장실에서 나오기 전에는 해결되지 않는 문제였다.

 결국 남편은 배가 많이 아팠다며 어설픈 연기와 변기물을 내리는 소리까지 티 나게 연출하며 마지못해 화장실에서 나왔다. 



“화장실만 가면 함흥차사…” 당신 남편은 지금 ‘화캉스’ 중입니다 “

걸핏하면 화장실서 30분” 화캉스 가는 남편의 심리

https://www.chosun.com/national/weekend/2023/11/11/ENQ3NGXYSVFU5PGEPNCAI25SFE/?utm_source=naver&utm_medium=referral&utm_campaign=naver-news


“우리 남편은 화장실에 큰일 보러 갔다 하면 기본 30분이에요. 다른 집 남편들도 그런가요?” “남편 분 ‘화캉스’ 가셨네요. 내버려 두는 게 가정의 평화를 위해 좋을 겁니다.”
어린 자녀를 키우는 젊은 부부들 사이에선 ‘화캉스’가 뜨거운 논쟁거리다. 호캉스(호텔+바캉스)는 들어봤는데 화캉스는 뭘까. 화장실에 간 남편이 짧게는 30분, 길면 1시간씩 ‘화장실에서 바캉스를 즐긴다’는 뜻이다. 

◇화장실이 제일 편하다는 남편들
아내들은 화캉스에 근원적인 질문을 던진다. 남자들은 화장실에서 그렇게 오랫동안 대체 뭘 하는 걸까. 잔소리가 무서운 남편들은 “원래 남자는 시간이 오래 걸린다”라고 둘러댄다. 하지만 아내들의 수사(?)에 따르면 “화장실 문에 귀를 대보니 유튜브 보고 있더라”라거나 “휴대폰 게임 소리가 들린다”는 경우가 적지 않다. 

◇화캉스는 슈퍼 대디의 귀여운 일탈?
대체 남편들은 왜 화장실과 사랑에 빠졌을까. 그들은 “때때로 혼자 있고 싶은데 그럴 수 있는 공간이 화장실밖에 없다”라고 하소연한다. 

◇국평 아파트엔 남편의 공간이 없다
 가부장 시대 남자들은 거실을 오롯이 자기 공간으로 누렸다. 거실 소파에 앉아 흡연을 하고 리모컨을 꽉 쥐는 절대 권력자였다. 하지만 이제 거실은 가족 모두를 위한 ‘중립 공간’이 됐다. ‘남자의 공간’을 펴낸 심리 상담가 이문희 교수는 “지금 한국 남성들은 실컷 자신을 펼치고 드러낼 그들만의 공간이 없다”라고 지적한다. “아쉽게도 집은 아내의 공간에 가깝고, 방이 있지만 아이들에게 하나씩 주고 나면 남자들의 방은 없다.”

자꾸 화장실로 들어가는 저 남편들은 어떻게 해야 하나. 임상심리 상담 센터장인 B 씨는 “닦달하지 않는 게 낫다”라고 했다. 그는 “화장실에서 쉬는 것마저 눈치가 보이면 남편에게 집은 휴식하는 공간으로서 기능을 잃게 돼 더 큰 무력감과 우울감을 줄 것”이라고 했다. 

그렇다. 남편을 이해 못 해준 것 같아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집안 어디에도 자신의 공간이 없다고 푸념하는 대신 화장실이라는 공간을 택할 수밖에 없었던 사정을 이해하니 좀 애처로운 마음도 들었다. 당장 더 넓은 집으로 이사 가서 남편의 방을 턱 하니 만들어주고 싶지만 말처럼 쉽지 않은 꿈이다. 그러니 당장 아내로서 해 줄 수 있는 한 가지는 노력해 봐야겠다. 이제는 화장실에 있는 남편의 시간을 존중해 주려고 한다. 장소는 좀 내키지 않지만 거기서라도 에너지를 재충전하고 온전한 쉼을 쉴 수 있다면 그러한 공간이 주어짐에 오히려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보려고 한다. 


" 남편, 거기서 재미있는 거 보며 재충전 잘하고 와. 하지만 30분 정도가 지나면 나와줄 수 있겠니?" 




사진출처 - pixabay  

기사출처 - 조선일보 사회 [아무튼, 주말] 배준용 기자

매거진의 이전글 빌어먹을 영어울렁증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