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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라나 Jul 14. 2023

남편, 요즘은 술 안 마시니?

집으로 오는 길, 행복한 남자들





" 이게 뭐야? "

" 응, 먹어보니 맛있어서 너도 먹으라고 사 왔어 "

" 이 밤에 이걸 사 왔다고? "


 회식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남편이 쇼핑백을 내민다. 어리둥절한 표정의 나를 보며 씩 웃고 주고는 씻으러 들어간다. 무엇인지 궁금해서 얼른 쇼핑백을 열어본다. 내가 좋아하는 초밥을 포장해 온 것이다. 남편에게 고마운 마음이 들어 얼른 초밥을 꺼내서 먹어본다. 안 그래도 늦게 오는 남편을 기다리느라 출출함이 느껴지던 차에 늦은 시간이라는 것도 잊은 채 맛있게 먹었다. 남편은 초밥을 먹다가 내 생각이 나서 포장해 왔다며 어깨가 으쓱해졌다. 회식 중에도 내 생각을 하다니 정말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물론 결혼한 지 3개월도 안 돼서 깨소금이 마구 떨어지던 신혼 때의 일이다. 




그게 시작이었다. 

남편은 종종 저녁에 술을 마시고 집에 들어오면서 나에게 무언가를 내민다. 대부분은 아이들과 나의 간식거리이다. 회식이 끝난 후 대리기사님을 기다리면서 근처 편의점에 들러 이것저것 사 온다고 했다. 술만 먹으면 가족이 생각이 나는지 이것저것 사다 주는 건 좋은데 하나같이 몸에 별로 좋지 않은 인스턴트식품이다. 그래도 그 마음이 고맙다고 해두자. 술에 취했어도 다행히 집은 잘 찾아오니까. 나에게 봉지를 건네고 바로 필름이 끊어지는 남편이 아직은 측은하게 보이니까


 어느 날은 술을 먹고 오는 길에 아이 이불세트를 사 왔다. 둘째 아이의 잠자리에 깔 이불과 매트, 베개로 구성된 세트였다. 왜 갑자기 이불을 사 왔냐고 물어봤더니 매번 첫째 아이가 쓰던 거 쓰는 둘째가 불쌍해서란다. (남편도 둘째라 서러운 둘째의 포지션을 항상 안쓰러워한다. 반면 나는 첫째라 첫째 아이를 안쓰러워한다.) 집에 이불이 없는 것도 아니고 첫째가 쓰던 낣은 이불을 준 것도 아니었다. 그저 둘째 아이는 어리니까 좀 더 키에 맞는 작은 이불을 준 것뿐인데 그게 마음에 걸렸나 보다. 그래도 나름 유명브랜드의 좋은 이불을 사가지고 왔다. 둘째는 다음날 아빠 최고를 날리며 좋아했고 남편은 이불집에서 이불을 고르고 택시를 탄 후 기억이 없다고 했다. 다행이다. 택시에 이불세트를 두고 내리진 않아서. 아마도 보진 않았지만 택시에서 이불세트를 품에 꼭 안고 꾸벅꾸벅 졸면서 집으로 왔을 모습이 그려진다. 


 어느 날은 술을 먹고 와서는 나에게 손바닥 만한 쇼핑백을 건넸다. 이건 내가 자주 사는 주얼리 브랜드 쇼핑백이었다. 손바닥만 한 상자에는 팔찌가 들어있었다. 반가운 마음보다는 왠지 꺼림칙한 마음이 앞섰다. 혹시 술 먹고 눈탱이 맞고 온 건 아니겠지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얼른 주얼리 브랜드 홈페이지에 들어가서 가격을 찾아봤다. 다행히 이 브랜드는 정가가 고지되어 있었다. 다음날 일어난 남편에게 얼마를 주고 샀는지 조심스럽게 물으니 영수증을 내민다. 매장명과 주소, 전화번호 등이 적혀 있고 어젯밤 홈페이지에서 본 가격이 똑같이 적혀있다. 다행히 술 먹고 눈탱이는 맞지 않았다. ( 하지만 팔찌의 디자인은 정말 마음에 들지 않아 다른 모델로 바꿨고 그 팔찌는 8년을 넘게 내 팔의 문신처럼 거의 매일을 같이 하고 있다 )


  술이 조금 덜 취하고 그나마 일찍 들어오는 날에는 남편손에 치킨이 들려있다. 이것은 나와 한잔을 더 하고 싶다는 이야기이다. 주로 금요일 밤에 치킨을 많이 사 오는데 맥주도 함께 사 오는 센스 있는 행동을 한다. 그러면 못 이긴척하고 얼른 받아 작은 상을 거실에 차린다. 이럴 땐 아이들이 잠들고 난 후 집으로 오는 센스도 있어서 둘이서 치킨을 먹으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눈다. 물론 진지하게 대화를 하기보다는 티브이를 보면서 재미있는 프로는 같이 깔깔대며 공감하고 나쁜 뉴스는 같이 욕하며 전우애를 쌓는다. 




 물론 기쁘기만 한 선물만 있었던 건 아니다. 3주년 되던 결혼기념일이었다. 평일이기도 했고 아기는 2살쯤 되어서 밖에서 분위기를 낼 엄두를 못 내던 시절이었다. 그래서 난 집에서 분위기만 낼 겸 저녁을 준비하고 있었다. 뭔가 안 좋은 소식은 전화벨부터 싸한 느낌을 가져온다. 역시나 갑자기 회사에서 회식을 해야 한단다. 

 늦은 밤 겨우 아기를 재우고 남편을 하염없이 기다렸다. 꽤나 늦은 시각에 집으로 돌아온 남편의 손엔 까만 봉지가 들려 있었다. 역시나 기념일을 잊지 않았구나 하며 까만 비닐이 좀 의심스럽긴 했지만 열어보았다.  

이럴 수가. 거기엔 컵라면이 2개 들어있었다. 기념일이라 뭐라도 사 와야 할 것 같아서 근처의 상점을 돌아다녔지만 다 문이 닫혀있더란다. 늦은 밤 운영하고 있는 곳이 편의점 밖에 없었고 컵라면을 보니 내 생각이 나서 사 왔단다. 고맙네. 




 생각해 보니 지난날 우리 아빠도 그랬다. 퇴근하고 얼큰하게 취하신 아빠는 무언가를 쓱 내밀고는 이내 피곤해서 잠이 드셨다. 어떤 날은 종이봉투에 담긴 통닭과 치킨무였고 어떤 날은 따뜻한 순대였다. 또 어떤 날은 호호불어 먹는 군고구마였고 또 어떤 날은 점퍼 품에 넣고 오신 따뜻한 붕어빵이었다. 경상도남자라 표현이 어색하셔서 잘 먹으란 이야기조차 건네지 않으시고 음식만 건넨 채 방 안으로 들어가셨다. 하지만 그런 아빠를 보며 반가워서 웃던 두 딸의 모습이 계속 보고 싶으셨는지 종종 퇴근길에 먼 길을 돌아 맛난 음식을 사 오셨다. 지금도 종종 그때 사 오시던 음식을 보면 그때의 아빠 모습이 떠오른다. 


 아빠도 술에 취한 어떤 날은 동생에게 줄 큰 곰인형을 사가지고 오셨다. 잠에서 깬 우리는 사람크기만 한 곰인형에 깜짝 놀라 눈을 비벼댔다. 아직도 그 곰인형은 동생방에 있는데 어두운 밤에 한 번씩 보게 되면 무서울 때가 있다. 그때는 뭘 이렇게 큰 걸 사 오셨냐 핀잔했지만 지금 와서 아빠가 그 인형을 들고 집에 걸어오신 생각을 하니 웃기면서도 짠한 마음이 든다. 





 집으로 돌아오는 밤은 가족을 생각나게 하나보다. 아빠와 남편이 그랬듯 말이다. 

서툴지만 무언가를 내미는 손길에서 가족에 대한 사랑을 느낀다. 집으로 돌아오는 동안 얼마나 많이 생각하고 그것을 골랐을까 하는 마음에 서툴지만 고마움의 포옹이라도 해주고 싶다. 




 한때는 코로나로 인해 술자리도 회식도 다 사라졌었다. 더불어 남편의 몰래 온 선물도 사라졌었다. 그래서 아쉬웠다. 그 음식이나 물건보다 어쩜 가족을 생각하는 마음을 더 느끼고 싶어서였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아니다. 그럼?



남편, 요즘은 술 안 마시니?





사진출처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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