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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라나 Jul 11. 2023

'계모'임에 틀림없어

투두둑. 투두둑.

무슨 소리지? 물 떨어지는 소리가 가까이에서 난다. 여긴 스터티카페 안 인데?


 자리에서 일어나 창가로 가보았다. 블라인드 사이로 보이는 비는 엄청난 소리를 내며 유리창을 두드린다. 아침만 해도 분명 날씨가 정말 좋다며 아이들과 구름모양을 이야기하며 등교했는데. 아들이 우산을 챙겨갔을 리가 없다. 더구나 둘째의 하원시간이라 마냥 학교 앞에서 아들을 기다릴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다급히 아들에게 전화를 해보지만 핸드폰은 꺼져있다. 학교의 교칙은 도서관 앞이나 교문밖에서만 핸드폰 사용이 허용되므로 학교 생활 중엔 핸드폰을 켜 놓지 않는다.


  서둘러 집으로 오려고 차를 몰았다. 앞유리로 비가 세차게 내린다. 운전하면서 맞은 비 중에 세 손가락에 꼽을 정도로 아주 많이 퍼부어 시야 확보조차 어렵다. 와이퍼는 정신없이 왔다 갔다 하고 운전대를 잡은 손엔 힘이 들어간다. 머릿속엔 우산을 안 가져간 아이 생각에 걱정이 가득 찼다. 집으로 돌아와 아이 우산과 크록스, 작은 수건을 비닐에 담아 학교로 향했다.

 역시나 갑자기 비가 와서인지 학교 앞 도로는 데리러 온 학부모님들과 각종 학원차들로 길을 비켜가기 조차 어려울 만큼 난리가 났다. 멀리에 차를 주차하고 학교로 뛰어갔다.

 아이는 지금 방과 후 수업 시간이라 다른 교실에 있을 것이다. 학교에서 방과 후 수업을 마치면 학교 앞에 있는 영어학원에 가야 하고 학원을 마치면 걸어서 집으로 돌아와야 한다. 그래서 비가 오면 우산이 꼭 필요하다.

 

 요즘 같은 장마에 3단 접이 우산을 사물함에 넣어 놓으면 좋으련만 펴고 접기 어렵고 우산이 잘 뒤집어져서 귀찮다는 이유로 우산을 미리 가져다 놓지 않았다.


 하는 수 없이 연락이 안 닿는 아들에게 줄 챙겨간 크록스와 작은 수건 봉지를 신발장에 찔러 넣어놓고 신발장 앞에 서서 메모를 남긴다. 자꾸 접착이 떨어지려는 종이를 꾹꾹 힘을 주어 붙여본다.

부디 이 종이가 안 떨어져서 메시지가 닿기를.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문득 나의 초등학생 시절 비 오던 그날이 생각났다.

 그날도 이렇게 오후에 갑자기 비가 제법 많이 내렸다. 학교를 마치자 출입문 앞에는 많은 엄마 아빠들이 우산을 들고 아이들을 데리러 온 것이 보였다. 일부 엄마가 오지 않는 아이들은 공중전화로 달려가서 다들 집으로 전화를 걸었다.

 아무리 눈 씻고 찾아봤지만 우리 엄마는 어디에도 없었다. 나도 집으로 전화를 해 봐야 하나 고민하다가 시간이 흘렀다. 하나 둘 아이들과 부모님들은 우산을 쓰고 집으로 돌아가고 출입문 앞에는 몇 명 남아있지 않다. 고민을 하다가 나도 공중전화로 향했다.


" 엄마, 비 오는데 우산이 없어."

" 아침에 챙겨갔어야지. 그냥 비 맞고 뛰어와."


예상은 했지만 단호한 그 말을 들으니 눈물이 핑 돌았다. 학교에서 집까지는 비를 맞으며 초등학생이 걸어가기에는 먼 거리였다.  

'정말 우리 엄마는 너무해.'

하는 수없이 가방을 뒤적여 뒤집어쓸 것을 찾았다. 마침 초록색 파일이 있었다. 종이로 된 파일이지만 내가 비를 맞기 싫은 마음이 더 컸다.


 한참을 걸어오는데 누군가 내 이름을 불렀다.

아줌마와 옆집 동생이었다. 아줌마는 나와 같이 우산을 쓰자며 내 어깨를 감싸고 우산 안으로 나를 당겼다.  손길이 따뜻하게 느껴졌다.

"너희 엄마도 너무했다. 마중 좀 나와주지"

아줌마 딴에는 나를 위로하는 말이었다. 하지만 나는 입술을 꾹 깨물었다. 절대로 안 울어야지.

 집에 도착해서 엄마를 보자 서러움이 몰려왔다. 그리고 울컥하는 목구멍을 부여잡고 샤우팅 했다.

엄마, 계모지?


 아마 엄마도 사정이 있었겠지. 하지만 엄마는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그런 반응에 내 마음이 더 상했다.

 

 그 이전에도 이후에도 엄마는 내가 준비물을 가져 다 달란 전화에도. 숙제를 놓고 왔다는 전화에도. 비가 와서 우산이 필요하다는 전화에도 한 번도 오지 않았다. 

 나는 더욱더 엄마가 계모가 아닐까 의심스러운 마음을 거두지 못했다. 

 

조금 더 커서도 그 마음은 여전히 한켠에 섭섭함으로 남아있었다.



 물론 지금은 비가 많이 오면 걱정돼서 나에게 전화부터 하신다.

 

 한 번씩 비가 오면 이때의 기억이 떠오른다. 시간이 지난 지금에는 왜 그랬는지 묻고 싶지만 꾹 참는다. 내가 좀 더 강하고 자립심 있게 크라는 엄마의 큰 가르침이었다고 생각하고 넘어가고 싶다.


 그리고 아들은 다행히도 메모를 잘 발견하고 나에게 전화를 걸어왔다. 고맙다는 말은 없었지만 배시시 웃는 말투에서 안도감이 밀려왔다.




사진출처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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