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필조 Apr 29. 2021

역시나 불효자


수업 중이었다. 평소 먼저 전화를 안 하시는 아버지께 전화가 온다. 순간 불길한 예감이 들어 아이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복도로 나가 전화를 받았다. 어머니가 구급차에 실려 응급실로 가고 계신다고 했다. 밭에서 넘어지셨는데 날카로운 들깨 밑동이 손을 그대로 관통해 많은 피를 흘리셨다고 했다. 너무 놀라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일단 아빠가 잘 챙기고 계시라고 곧 내려가겠다고 말씀드렸다. 아이들이 가자마자 조퇴를 쓰고 병원으로 향했다. 


6인실 병실 한구석에 한 손에 붕대를 감은 작은 할머니가 잠들어 있었다. 종일 놀라셨을 텐데 그래도 이렇게 주무시는 것을 보니 조금은 마음이 놓였다. 우리 엄마 많이 늙었구나... 하염없이 눈물이 났다. 깨어나신 어머니는 학교는 어떻게 하고 왔느냐며 또 내 걱정을 먼저 하신다. 나는 대답 대신에 어머니의 손을 꼭 잡고 아프지 않았느냐고 글썽이며 말했다. 그날 어머니는 어린아이처럼 우셨다. 손등 위로 나온 들깨 줄기를 혼자 힘으로 빼내시며, 수돗물처럼 핏물이 흐르를 것을 보며, 이렇게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하셨다. 파르르 떠는 어머니의 손에서 그 순간을 고통을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었다. 나도 어머니 앞에서 어린아이처럼 울었다.


수술이 끝나고 의사는 긍정적인 말들로 우리를 안심시켰다. 뼈에도 문제가 없고 신경에도 문제가 없다고 했다. 하지만 나이가 있으셔서 회복에 시간이 많이 필요할 것이라고 했다. 며칠 후 어머니는 심리적으로 안정을 찾으셨다. 병원 신세를 지니 누가 밥도 해주고 자식들도 자주 본다며 호강이라고 말씀하신다. 어머니를 위로하는 마을 주민들의 전화에 농담을 섞어 가며 받으신다. "밭에 갈 때 쓰레빠 끌고 가지 말어 내 꼴 나!" 낙천적이고 강인한 내 어머니, 다행이고 감사했다.


퇴원하는 날 어머니랑 팔짱을 끼고 병원 근처의 식당에 갔다. 공원 근처를 지나는데 바람에 낙엽이 우수수 쏟아진다. "엄마 추워?" 어머니의 팔을 꼭 안았다. 식당에서 어머니께 생선을 발라 드리며 다친 손이 왼손이어서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엄마, 왼손이어서 다행이다. 그치? 오른손이었으면 더 불편했을 거 아냐“

”막내야, 아직도 몰러? 엄마 왼손잡이여“

"정말? 근데 엄마, 식사는 오른손으로 하시잖아?"

"밥만 그려, 어릴 때 왼손으로 밥 먹다가 아부지한테 혼났지, 복 나간다고"

"칼질에 호미질에 다 왼손이여"

작가의 이전글 잔술의 추억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