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청에서 전화가 왔다. 전자금융거래법 위반했으니 청으로 출두하라고 한다. 구체적으로 무슨 내용이냐고 물었더니 주식 거래와 관련된 것이고 더 알고 싶으면 몇 가지 개인 정보를 입력해야 한단다. 요즘은 이런 유의 인간들이 연기력이 늘어서 꽤 그럴듯하게 협박을 한다. 쉽게 포기하지 않는다. 그런데 왜 하필 주식 계좌를 단 한 번도 만들지 않는 인간에게 전화를 했을까? 운도 지지리 없는 놈이다.
나는 왠지 '속지 않기 자격시험' 같은 것이 있으면 상위 등급의 자격을 취득할 것 같은 느낌이다. (누구나 다 비슷한 느낌으로 살고 있지 않을까요?라고 반문한다면 어쩔 수 없지만) 나는 영화의 반전도 제법 잘 찾아낸다. 그냥 느낌이 온다. 그래서 반전이 있다는 영화는 잘 안 본다. 재미가 없다. '셔터 아일랜드'가 내 반전 영화의 마지막이었다. 영화를 봤던 이유는 마틴 스콜세지와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때문이었다. 물론 영화는 내 예상대로 시시하게 흘러갔다.
이렇게 나는 스스로를 잘 안 속아 넘어가는 인간이라고 믿고 있지만, 시골의 부모님은 그렇지 못할 것 같아 걱정이다. 보이스피싱 전화를 받는 날 부모님께 전화를 드렸다.
"어머니 혹시 누가 제 이야기를 하면서 돈을 보내라고 절대 보내지 마세요. 아셨죠?"
"아들! 걱정마라. 나는 네가 돈을 보내달라고 해도 절대 보내 주지 않을 거야. 알았지?"
어머니 말이 맞기는 하지만 뭔가 섭섭한 기분이 드는 것은 왜일까? 그렇다고 어머니께 "혹시 아들인 것이 확실하면 조금은 보내주지 그래?"라고 말해 버리면 어머니가 혼동이 와서 보이스피싱에 당할지도 모르기 때문에 아무 말씀도 드릴 수는 없었다. 아버지는 한술 더 떠서 경찰에 신고할 테니 걱정하지 말라고 하셨다. 어찌 되었든 매우 안심이 된다. 그리고 동시에 조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혹시라도 부모님께 전화로 돈을 좀 보내달라고 했다가는 영락없이 경찰에 신고를 당할 테니까
"최필조 씨! 여기 경찰서인데요. 혹시 시골의 어머니께 돈을 요구하셨나요? 부친께서 신고하셨습니다. 경찰서로 나와서 조사받으세요!"
오늘도 어머니와 통화를 했다. 특별히 할 말은 없지만 자주 전화를 드린다. 서로의 근황을 늘 최신으로 업데이트하며 산다. 아들인 척하는 도둑놈이 나와 부모님 사이에 껴들 틈을 주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