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연시, 들뜨고 놀러 가기 딱 좋을 때이지만 한 해를 마무리하고 다가올 해의 계획을 세우느라 더욱 바빠지는 시기이기도 합니다.
저도 2022년 성과보고와 2023년 업무계획을 쓰느라 한동안 정신이 없었습니다. 2023년 업무계획 보고가 마무리되고 나서야 한 숨 돌렸네요. 한편으로는 화려하게 세워 놓은 계획들을 어떤 식으로 현실에 옮길까 걱정이 앞서기도 합니다.
저도 이제 중참 공무원에 들어서는 짬이라, 7~8명이 속한 과 단위의 연간 업무계획 보고서를 작성하는 것은 처음이었습니다. 이전에는 1~2명이 하는 사업계획을 짠 적은 있었지만요. 과 단위 업무계획 보고서를 쓰고, 고치고, 보고하는 과정에서 새로 배운 점이 많았습니다.
이번에 가장 크게 느낀 점은, 상사가 제일 싫어하는 계획은 '하던 일 잘하겠다'는 계획이라는 사실입니다.
저는 기존 사업을 잘하는 것도 의미가 있지 않을까 해서 업무계획 초안에 기존 사업을 효율화하는 내용을 꽤 분량을 들여 포함시켰습니다. 초안을 본 과장님께서 그 부분을 대폭 삭제하라고 하시더라구요. 그리고 몇 가지 키워드를 제시해 주시면서 강조할 키워드를 중심으로 구성을 다시 하라고 하셨습니다.
보고 기한이 얼마 남지 않았기에 약간 멘붕이 왔습니다. '이렇게 많이 수정하라고 하실 줄 몰랐는데' 투덜거리면서 급히 보고서를 수정했죠.
국장님 보고가 끝나고 나서야, 과장님 지시대로 수정 안했으면 큰일이었겠다 싶었습니다.
국장님이 그러시더라구요. '하던 일만 하는 건 원하지 않는다. 우리가 주도적으로 새로운 아이템을 발굴해서 이끌어 나가는 모습을 원한다' 하시면서 그런 점이 잘 보인다며 업무계획을 칭찬하셨습니다.
예전에 읽은 박소연 작가의 '승진의 정석'이란 책에도 비슷한 내용이 나옵니다.무난한 일 100개 하는 것보다 돋보이는 대표 프로젝트 하나를 성공적으로 해야 한다는 내용으로 기억합니다.
기업이나 공무원 조직이나, 조직의 생태는 비슷한 것 같습니다. 하던 일 잘하겠다는 것으로는 고객(정부의 경우는 국민이 되겠죠)을 만족시킬 수 없는 것이죠.
그렇다고 어떻게 매년 새로운 사업을 만들어내냐, 쓸데없는 사업 만들어내서 예산 낭비하는 것 아니냐는 생각을 하실 수 있습니다. 제가 그런 고민을 많이 했거든요. 특히 저희 과 사업은 최근 몇 년 새 사업의 유형과 규모가 엄청나게 불어난 편이라, 여기서 새로운 사업을 추가하는 것은 무리라고 보였습니다. 그 점에 대해서는 과장님과 동료들도 동의를 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느낀 것은, 꼭 새 사업을 만들지 않아도 하던 일도 새로운 '컨셉'으로 하면 좋은 계획이 된다는 점입니다.
저희 과는 기업을 지원하는 업무를 하는데, 수많은 지원 사업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각각의 예산 규모도 어마어마해졌죠. 그러면 컨셉을 잡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올해는 ~와 같은 흐름에 따라 ~의 중요성이 높아져 OO분야 기업을 집중해서 지원하겠다'고 하는 것입니다. 정책의 필요성은 국정과제나 세계 트렌드의 변화 등, 누구나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배경으로 써야 공감대를 얻을 수 있겠죠.
그럼 기존에는 이런 지원사업을 안 했을까요? 아닙니다. 이미 트렌드에 맞는 기술을 보유한 기업은 기존 지원사업으로도 지원받고 있습니다. 하지만 여기에 컨셉을 부여해서 새롭게 보이게 하는 것입니다. 올해는 국정과제 OO에 맞추어 OO분야 기업을 집중적으로 지원하겠다~고 한다면, 기존 사업의 틀 내에서 국정과제에도 부합하고, 눈에 잘 띄는 계획을 세울 수 있는 것이죠.
기존 정책의 사각지대를 찾아내서 새로운 사업을 디자인할 수 있다면 그것이 베스트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도저히 새로운 아이템을 발굴해내기 어려울 때, 기존에 하던 사업도 잘 살펴보면 새롭게 보일 수 있다는 걸 이번에 깨달았습니다.
'하던 일 잘하겠다'가 아니라, '하던 일도 새롭게 하겠다'는 접근 방식으로 바꾸면, 같은 내용으로도 훨씬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