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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atros Jan 17. 2023

영화 [올드보이] 속 모든 비극의 시작.

복수를 잉태한 상상임신

다들 행복한 2023년 맞이하고 계신지요?

저는 여러가지 일로 연말연시를 정신 없이 보내다가, 이제야 새해맞이 글을 들고 인사드려봅니다.


New Year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첫 글은 꽤나 오래 전 영화인 'Old boy'에 대한 감상문입니다^^.



***영화 내용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제가 가장 좋아하는 한국 영화 중 하나는 박찬욱 감독의 작품인 ‘올드보이(2003년)’입니다.





제 기준의 이 영화의 가장 큰 강점은 ‘봐도 봐도 새롭게 재밌고, 줄거리를 알고 보더라도 전혀 지루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이미 영화가 나온지 20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특별하게 촌스럽거나 이상한 부분이 없는 것은, 감독의 역량과 배우들의 연기가 워낙 뛰어나기에 가능한 일이기도 하지만, 제 개인적으로는 영화의 내용 자체에, 고전 중의 고전인 그리스 비극이 녹아 있기에 시간을 초월하여 더 흥미진진한 것이 아닐까란 생각도 들었습니다.

이 영화의 모티프가 그리스 비극인 ‘오이디푸스 왕(소포클레스의 작품)’의 내용이란 것은 이미 잘 알려져 있습니다. 주인공인 오대수(최민식 배우)의 이름부터가 ‘오이디푸스’를 음차해서 만든 것이라고 하니까요.




이제까지 올드보이와 그리스 비극과의 연관성을 몰랐던 분들이라 하더라도, 희곡 ‘오이디푸스 왕’의 내용을 찾아보신다면, 금방 ‘아, 두 작품이 많이 닮아 있구나!’라는 생각을 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두 작품 모두 ‘비극적인 운명’, ‘그 운명에 얽힌 인간의 고뇌’, 그리고 ‘복수’에 대해 다루고 있으며, 중요한 소재로 ‘근친상간’이 사용되고 있죠.


그런데 영화를 몇 번 보다 보면, 근친상간이라는 소재가 들어갈 뿐이지 오이디푸스왕의 이야기와는 여러모로 다르다는 생각 또한 들게 됩니다.

특히 소시민인 오대수를 15년 동안이나 가두었다가 풀어주고(사실 이 15년 동안 군만두만 먹이면서도 건강관리를 어떤 식으로 해준 것인지에 대한 의문이 들기도 합니다), 최면과 기타 안배를 통해 딸과의 근친상간에 이르도록 만드는 ‘이우진’의 능력이(복수의 스케일이 거대하죠), 거의 그리스 신화 속의 신과 다를 바 없어 보여서, ‘신탁’ 외에는 신들의 인간 세상에 대한 개입이 별로 나오지 않는 오이디푸스 왕 이야기와는 상당한 차이를 보입니다.

오대수가 딸과의 금지된 사랑에 빠지는 상황이 좀 더 작위적이고 강압적인 방법으로 이루어진다는 점에서, 좀 더 ‘신화’적인 이야기들과 닮아 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올드보이 속 장면들. 15년간 여관방 같은 곳에 감금되어 같은 중국집의 군만두만을 먹어야했던 오대수(좌). 최면을 통해 여러가지 필연을 만들어 가는 최면술사(우).



그리스 신화 속에는 인간이 ‘신들에 관한 말을 잘못하여 벌을 받는 이야기’와 ‘신의 은밀한 모습을 엿보았다가 참변을 당하는 이야기’가 있는데(‘말’과 ‘엿보기’ 모두 오대수가 비극에 휘말리게 되는 이유와 닿아 있죠), 전자는 ‘니오베’의 이야기이고, 후자는 ‘악타이온’의 이야기입니다.


니오베의 비극.


니오베는 신들에게 자신의 아들을 요리해서 먹였다가 타르타로스로 떨어지게 된, 탄탈로스의 딸이며, 테베의 왕비이기도 합니다.

아버지를 닮아 신에 대한 공경심이 부족했던 것인지, 그녀는 자신이 낳은 14명의 아이들을 매우 자랑스러워하며, “나는 7명의 아들과 7명의 딸이 있으니, 아들과 딸 한 명씩 밖에 없는 레토 여신(아폴론과 아르테미스의 어머니)보다 더 훌륭하다!”라고 잘난 체를 하고 말았습니다.

현대 같으면 그냥 자랑일 뿐이지만, 고대 그리스에서 이것은 신에 대한 커다란 불경이기에, 레토 여신의 분노를 사게 됩니다. 그리하여 분노한 자신들의 어머니를 위해 아폴론과 아르테미스가 화살을 날려 니오베의 모든 자식들을 죽여버리게 되고, 결국 슬픔에 빠진 니오베는 돌로 변해버린다는 이야기이죠.


아르테미스 여신이 목욕하는 모습을 보았다가 사슴으로 변하는 저주를 받게되는 악타이온.


악타이온은 테베의 건국왕인 카드모스의 손자였고 훌륭한 사냥꾼이었습니다. 어느 날 자신의 사냥개들을 데리고 숲 속을 헤매다가 우연히 아르테미스 여신이 님프들과 목욕을 하는 장면을 보고 말았습니다.

고의는 아니었지만 여신의(그것도 처녀로 살기로 맹세한 여신) 나체를 보았기에, 악타이온은 아르테미스의 저주를 받게 됩니다. 아르테미스는 화가 나서 악타이온에게 물을 뿌리며 “어디 한 번 네가 아르테미스 여신의 알몸을 보았다고 떠들어 보아라!”라고 소리쳤고, 물을 맞은 악타이온은 ‘사슴’으로 변하게 됩니다. 그리고 자신이 기르던 사냥개들에게 잡혀 참혹한 죽음을 맞이하게 되었죠.


영화 속 오대수가 처한 상황을 보면, 이 두 비극과 매우 흡사합니다. ‘이우진’과 그 누나 사이의 비밀스러운 광경을 목격(악타이온)하고 그것을 경솔하게 떠벌렸기에(니오베), 보통 사람은 견뎌낼 수 없을 끔찍한 고통(아내는 살해당하고 딸은 실종=니오베의 상황, 혀를 자르는=악타이온의 신체 훼손)을 당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실종된 줄 알았던 딸은 최악의 경우로 다시 만나게 되고, 본인은 스스로 혀를 자르는 고통을 겪게 됩니다.



이 신화들과 함께 생각해보면, 올드보이의 오대수가 당하는 고통은 ‘신이 인간에게 내리는 벌’에 더 가깝다고 생각됩니다.

이우진의 감정을 제외하고 멀리서 보면, 오대수의 잘못이 과연 그 정도의 벌을 받을 일인가 어리둥절 해지기도 합니다. ‘타인의 비밀스러운 일’에 대해서는 함구하는 것이 미덕이긴 하지만, 아직 어린 시절의 오대수에게 ‘학교에서 우연히 목격한 은밀한 광경’은 매우 큰 자극이었으며, 친구에게 그에 대한 이야기 좀 한다고 큰일이 날 것이라는 생각은 하지 못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정말 ‘우연히 은밀한 광경을 목격’하고 ‘별 생각 없이 말을 내뱉었을 뿐’인 것이죠. 신화 속의 니오베나 악타이온이 저질렀던 잘못의 수준과 비슷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올드보이라는 작품을 그리스 신화와 동치시키고, 이우진과 그 누나를 일종의 ‘신격’으로 생각한다면 이러한 복수는 굉장히 합당해집니다.

‘감히 신의 은밀한 모습을 엿보고, 신에 대한 함부로 말하는 자’는 그리스 신화 속에서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는 것이 매우 당연하기 때문입니다. 영화 올드보이는 인간 대 인간의 복수극으로 보이지만 사실을 ‘신이 인간에게 벌을 내리는 이야기’에 더 가깝다고 생객해볼 수도 있는 것이죠.


영화 속의 복수자 이우진은 인간이지만, 사실 굉장히 비현실적으로 강한 권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아무리 돈으로 안 되는 것이 없는 현대 자본주의 사회라고 해도, 자신들에 대한 이야기를 퍼뜨린 것이 오대수인 것을 알아내고 15년에 걸쳐 감금하고, 여러가지 상황을 자신이 원하는 방향대로 움직일 수 있다는 것은, 앞서 이야기했듯이 신의 힘에 더 가까워 보입니다.


영화 속의 이우진은 등장할 때마다 올림포스의 신처럼 고고해 보입니다.


영화 속 이우진의 모습이 아름답고 완벽하며, 사는 곳도 고층의 펜트하우스라는 점에서 올림포스의 신들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이러한 신적인 존재가 하필이면 ‘남매간의 사랑이라는 금단의 관계’에 빠졌고, 자신의 누이와 함께 부적절한 행위를 하는 모습을 ‘인간 오대수’에게 들켜버립니다. 그리고 결국 불미스러운 소문이 나버리게 되죠.

오대수가 그 광경에서 제대로 본 것은 이우진의 누나였던 이수아의 얼굴뿐이었기에(이우진은 등만 보였던), 결국은 이수아에게 애인이 있고 학교에서 애정행각을 벌였다는 식으로 소문이 나게 되는 것이죠(나중엔 살이 붙어 굉장히 문란한 여자애라는 식으로 추문이 되어버립니다).

학교 내에서 학생끼리 애정행각을 벌였다는 것은 요즘도 문제가 될 수 있는 소문이지만, 극중 배경이 대강 70년대 후반 정도인 것을 고려하면 그 시대에 그런 소문이 나는 것은 더욱 치명적일 수밖에 없었습니다(예쁜 부잣집 소녀에 얽힌 소문이라 더 잘 퍼졌을 것도 같습니다. 가십거리인 셈이죠.).

그런데 여기서 나아가 ‘상상임신’이란 상황이 더해지며 이야기의 비극성은 더욱 커지게 됩니다.


이수아-이우진 남매. 70년대 말에 사진 찍기가 취미일 정도로 부유한 가정 환경에서 자랐습니다.



이수아-이우진의 집안이 원래 부유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소문이 났다는 상황 자체는 좋지 않지만 문제가 ‘소문’ 뿐이라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무마해버릴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수아가 ‘상상임신’을 하게 되자 상황이 복잡하게 변해 버립니다.


상상임신(Pseudocyesis)에 대해 잠시 의학적으로 설명 드리자면, 임신하지 않은 여성이 자신이 임신했다고 강력하게 믿게 되는 일종의 정신병리적인 증후군(물론 다른 내과적 질환 등은 없는지 감별도 필요합니다)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1).

영문 병명부터가 가짜(pseudo)와 임신(kyesis)을 더해서 만들어진 것이니까요. 이 증상은 주로는 결혼한 가임기 여성(임신을 간절히 원하는)에게 발생하지만, 미혼 여성(월경 전 여성도 포함), 폐경 후 여성, 그리고 아주 드물게는 남성에게서도 발생할 수 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2,3).


병명만 들으면 ‘상상일 뿐인데 실제 임신과 구분이 어려울까?’라는 의문이 들 수 있지만, ‘정신질환 진단 및 통계 매뉴얼 5판(DSM-V)’에 나오는 상상임신의 정의에는 여러가지 임신 증상이 동반됨을 명시하고 있습니다(4).

배가 불러오고, 월경이 오지 않거나 생리양이 줄어들고, 태아가 움직이는 느낌이 오고, 실제로 가슴이 부풀고 모유가 나오거나, 출산 예정일(본인이 계산한)에 진통이 오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여러가지 원인으로 임신할 가능성이 있거나 임신을 바라던 사람이라면 이러한 증상들로 인해 ‘자신이 임신했다’는 믿음이 강화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이 두 남매와는 상황이 좀 다르지만, 아버지에 의한 근친 성범죄로 인해 16세 여성이 상상임신을 하게 된 케이스도 있었습니다(5). 원인은 달라도(근친성범죄/불미스러운 소문) 스트레스가 극심한 상황이 상상임신 상황을 초래했다는 점에서는 두 케이스가 비슷하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게다가 적절하게 산부인과 진료(초음파나 임신호르몬 검사 등등)를 받을 수 없는 상황이라면, 임신 여부에 대해 정확히 확인할 수 없으므로 더더욱 자신이 임신했다고 믿을 수 밖에 없게 되는 것이죠.


영화 속의 이수아 역시 저러한 임신 의심 증상들이 나타나고, 70년대 한국 고등학생이란 상황 상 산부인과에 방문해볼 방법도 없으니 자신이 임신을 했다고 믿고 큰 괴로움에 빠질 수 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학생이 임신을 한 것도 문제인데, 사실 그 상대가 자신의 남동생이니 그 누구에게도 밝힐 수 없는 것이죠. 그래서 결국 그녀는 댐에서 투신 자살을 결심하게 됩니다.



단순히 혼자 뛰어내리는 것도 아니고, 자신의 동생이자 연인인 이우진이 보는 앞에서 그의 손을 뿌리치며(저는 같이 근친상간이 들킬 공포에 질렸을 이우진도 반쯤 동조해서 손을 놓았다고 보긴 합니다) 추락하죠.

이 두 남매를 앞서 이야기해왔던 것처럼 신적인 존재로 본다면, 오대수라는 인간의 경솔하고 불경한 말에서 비롯된 ‘상상임신’으로 인해, 그들의 신성이 훼손되고 ‘신계에서 나락으로 추락’하는 것으로도 해석이 가능할 것 같습니다.

어쨌든 올드보이에서는 상상임신이라는 의학적인 요소가 이 고대 그리스 비극 같은 이야기의 시발점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사실 상상임신이었기에 검사만 했다면, 이수아의 자살이라는 상황까지는 일어나지 않았겠지만(의사로서 상당히 안타까웠던 부분입니다), 이 남매가 처했던 여러가지 환경이 상상임신과 실제 임신과 구분할 기회를 주지 않았고, 결국 둘만의 낙원은 부서지게 됩니다.

상상임신이었기에 ‘태아’ 대신에 ‘이수아의 죽음과 복수’만이 잉태되었고, 홀로 남게 된 이우진은 분노한 신으로서 ‘경솔하게 말을 내뱉은 인간 오대수’에게 무서운 벌을 내리게 되는 것이죠.


제 생각에 이우진과 이수아가 모두 그 사건 없이 성인이 되었다면, 이우진에게 큰 힘이 있기에 은밀하게 둘이서 살아갔을 가능성도 있었을 것이라 봅니다. 올림포스의 신들처럼 다른 인간들이 그들의 사랑을 눈치 채지 못하게 잘 살았을 수도 있었겠죠(물론 둘의 관계를 끝내고 각자 살아갔을 수도 있고요).



종반부에 이르러 영화는 다시 희곡 오이디푸스 왕의 흐름과 흡사 해집니다.

이우진은 오이디푸스왕 속의 신탁처럼 오대수에게 자신들 남매와 관련된 모든 것을 밝히고, 또한 오대수도 자신의 딸(미도)과 사랑하게 되었음을 알려줍니다.

이 때 자신을 눈을 찌른 오이디푸스처럼 오대수도 스스로 혀를 잘라버리게 되죠. 오대수의 비참한 모습을 지켜보던 이우진은 정말 신이 인간에게 묻는 듯한 느낌으로 질문을 던집니다.

“누나하고 난, 다 알면서도 사랑했어요.
...너희도 그럴 수 있을까?”

이후에 이우진은 엘리베이터 안에서 자살을 하고(인간 세계에서의 퇴장), 오대수는 최면술사에게 부탁해 미도가 자신의 딸이라는 기억을 지워버리는 선택을 함으로서 이우진과 오대수는 신-인간의 대비를 보여주게 됩니다.

올드보이 마지막 장면. 최면을 통해 기억을 지우고 자신의 딸이자 연인인 미도와 함께 살아갑니다.



어찌 보면 올드보이는 인간은 망각을 할 수 있기에 괴로움도 잊고 앞을 바라보며 살아갈 수 있고, 신은 망각할 수 없기에 분노의 원인에 대해 반드시 ‘복수’를 행해야만 한다는 것을 보여준 것일 수도 있습니다.


이 영화도, 영화 속 임신도 모두 상상이라는 점이 새삼 미묘하다고 느끼며, 감상을 마무리 지어 봅니다.

딸 안티고네와 함께 방랑을 하는 눈 먼 오이디푸스. 올드보이의 마지막 장면과도 비슷한 모습입니다.







<참고문헌>
1.     O'grady JP, Rosenthal M. Pseudocyesis: a modern perspective on an old disorder. Obstet Gynecol Surv 1989; 44: 500-511.
2.     Marzieh Azizi, Forouzan Elyasi. Biopsychosocial view to pseudocyesis: A narrative review. Int J Reprod BioMed Vol. 15. No. 9. pp: 535-542, September 2017.
3.     D L Evans, T J Seely. Pseudocyesis in the male. J Nerv Ment Dis. 1984 Jan;172(1):37-40.
4.     American Psychiatric Association: Diagnostic and Statistical Manual of Mental Disorders. 5th edition. Washinton, DC: APA; 2013. in preparation for publication in May 2013.
5.     M K Hendricks-Matthews, D M Hoy. Pseudocyesis in an adolescent incest survivor. J Fam Pract. 1993 Jan;36(1):97, 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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