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략적 CSR 강화, 디지털 CSR 확대, 기업공익재단 중요성 증대
최근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오징어 게임’이 세계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한국 드라마 최초로 미국 넷플릭스 1위를 차지했다. 미국뿐 아니다. 홍콩, 대만, 베트남, 아랍에미리트, 쿠웨이트, 싱가포르 등 총 14개국에서 1위에 올랐고 영국, 프랑스, 독일 등 39개국에서는 2위에 랭크돼 있다. 드라마에서는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구슬치기’ ‘오징어’ 등 한국인에게 친숙한 고전놀이가 여럿 등장한다. 게임에서 지면 죽고 살아남으면 수백억원의 돈을 가져간다는 다소 비현실적이며 극단적인 상황에서 이야기가 전개된다. 우리 또래의 사람들뿐만 아니라 자녀의 친구들까지 보고 있으니, 전 세대를 걸쳐서 공감대를 형성한 듯 하다. 드라마를 보면서 어릴 적 친구들과 놀던 생각도 나고 재미도 있었지만, 미래세대가 앞으로 살아가야 할 치열한 경쟁 사회의 일면을 본 것 같아 섬뜩함을 지울 수가 없었다.
드라마에서는 공정을 말하지만 현실은 공정하지 않다. 참가자들은 스스로 게임에 뛰어들었지만 이면에는 선택의 여지가 없는 좌절감, 왜 이렇게까지 치열하게 게임을 하고 살아남아야 하나라는 억울함 등 여러 가지 우리 사회의 문제가 깔려있다.
오징어게임이 기업 CSR 미래 트렌드와 무슨 상관이 있겠느냐 싶지만, 꼭 그렇지도 않다. 에너지와 자원 고갈, 기후변화, 사회갈등의 심화, 인구구조의 변화로 우리는 앞으로 살아남기 위해서 위험한 게임을 해야 할 수밖에 없는 시대에 살아갈 수도 있다. 위험한 게임이 일상화되는 시대에 게임의 탈락자들에게도 재도전의 기회를 줄 수 있는 사회안전망이 필요하다. 기업의 CSR이 비즈니스 또는 자원과 연계된다면 든든한 사회안전망이 될 수 있다. 즉 전략적 CSR이 필요한 것이다.
전략적 CSR은 기부 중심의 자선적 사회공헌이 아니라 기업의 비즈니스 가치사슬과 사회공헌이 결합하는 것이다. 기업의 CSR 활동이 비즈니스 전략과 연계돼 자원과 역량이 투입될 때 사회문제 해결 효과는 크게 확대된다. 예를 들어, 네슬레는 ‘코코아 플랜’이라는 CSR 활동을 통해 코코아 재배 농가에 교육 프로그램을 제공했다. 농부들의 코코아 재배 기술을 향상시켰고, 이들이 재배한 코코아를 안정적으로 구매했다. 결과적으로 네슬레는 초콜릿 제품의 생산에서 가장 중요한 원료인 양질의 코코아를 안정적으로 공급받게 됐고, 농부와 지역사회의 삶의 질 향상에 기여했다. 또한 이러한 성공적인 CSR 프로그램을 네스카페 플랜(커피농가 교육, 원두 구매), 네스카페 카트(청년실업자와 여성가장에게 이동형 커피판매 창업 지원) 등으로 확장하고 브랜딩해 기업 이미지 제고와 전 세계적으로 지속가능한 원료 공급 체계를 구축하고 있다.
기업 자체의 전략적 CSR과 더불어 기업 공익재단의 지속가능한 사회를 위한 중장기적 CSR은 더욱 중요해질 것이다. 기업은 전략적 CSR과 ESG, CSR 마케팅 커뮤니케이션에 집중하고, 기업 공익재단은 사회의 양극화 문제에 집중하거나 중장기적으로 우리 미래사회 발전과 지속가능성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문제에 집중해야 한다. 즉 기업 공익재단은 미래 사회문제를 연구하고 해결책을 제시할 수 있는 혁신적인 연구자와 연구 단체를 지원해, 그 결과물들이 기업의 미래전략과 연결되고 실현될 수 있도록 지속가능한 사회를 위한 사회문제 연구 지원을 강화해야 한다.
국내에서는 아산사회복지재단이 인문·사회·공학·의학 분야 연구지원을 하고 있다. 그 결과물로 아산연구총서를 발간한다. 아모레퍼시픽재단은 ‘아시아의 미’와 ‘여성과 문화’를 주제로 연구지원하고 있으며, 우수 결과물을 출간해 학술연구의 대중적 확산을 도모하고 있다. 해외에서는 도요타재단이 1975년부터 미래사회 문제 해결을 위한 연구지원 사업을 펼치고 있다. 일본 내에서는 ‘사회를 위한 새로운 가치 탐구’라는 주제로 대학, 연구소, NGO를 대상으로 최대 9000만원의 연구비를 지원하고 있으며 아시아의 사회문제 해결을 위해 아세안의 연구자, 정책입안자, 미디어를 대상으로 최대 1억원의 연구비를 지원하고 있다. 폭스바겐재단은 생명과학·인류학·화학·미술학·신학 등 전 분야의 연구 지원과 함께 신진 연구자와 더불어 학문, 문화, 국가의 경계를 넘어 연구원 간의 협력을 지원하고 있다. 포드재단은 2016년부터 ‘Build Initiative’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불평등 해소를 위해 노력하는 전 세계 300여개 비영리 조직에 10억 달러를 지원했다. 스웨덴의 대표적인 재단인 발렌베리재단은 기초과학·사회학·인문학 분야에 매년 대규모의 연구자금을 지원하고 있다. 스웨덴 국적이 노벨상 수상자 대부분이 발렌베리재단의 도움으로 연구를 시작했을 정도로 큰 역할을 하고 있다. 이렇듯 오랜 역사가 있는 재단들은 이미 자선을 넘어 범지구적 이슈 해결을 위한 연구 지원, 미래에 대한 투자, 미래사회를 위한 전문가 네트워크 구축을 통해 지속가능한 사회를 준비하고 있다.
이러한 기업사회공헌 변화와 함께 최근 코로나로 인해 언택트, 디지털 CSR이 등장하고 있다. 대규모의 오프라인 봉사활동이 불가능한 시대에, 디지털 기술을 활용한 새로운 형태의 CSR 및 온라인 봉사활동이 등장한 것이다. 예를 들어 언택트 마라톤 대회, IT기기를 활용한 온라인 교육봉사 활동, 온라인 나눔 음악회, 온라인 지식 포럼, 온라인 CSR 캠페인 등 언택트 환경에 디지털 기술을 접목한 새로운 도전이 계속되고 있다. 광고회사인 이노션의 ‘응원반창고’ 캠페인은 인스타그램을 통해 모집한 180개의 코로나 의료진 응원 메시지를 40만개의 반창고에 새긴 뒤 의료진에게 전달했다. 이노션은 이 온라인 의료진 응원 CSR 캠페인을 통해 2021년 4월 아시아태평양 대표 광고제인 ‘애드페스트’에서 올해의 디지털 광고회사로 선정되기도 했다. 소셜디지털 플랫폼을 주축으로 소비자 참여를 유도해 콘텐츠를 취합하고 감동적인 온라인 영상으로 캠페인의 의의 및 결과물을 대중들에게 잘 전달했다는 점에서 각광을 받았다. 또한 유한킴벌리는 1988년부터 이어온 환경교육 캠페인인 ‘유한킴벌리 그린캠프’를 올해 처음 메타버스로 개최했다. 300여개의 참가자 아바타는 서로 화상과 음성으로 소통하기도 하고,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의 ‘생물다양성과 숲’ 강의를 듣기도 한다. 오프라인으로 진행할 때보다 참가 경쟁률도 높았고, 기존 100여명 남짓하던 프로그램이 메타버스를 적용하면서 400명이 참여할 수 있게 됐다.
기업 CSR의 미래 트렌드는 기업의 비즈니스와 연계된 전략적 CSR, 지속가능한 사회를 위한 기업 공익재단의 역할 확대, 온오프라인을 넘나드는 디지털 CSR로 전환될 것이며 이를 통해 기업 CSR이 불확실한 우리 사회의 미래에서 변화와 혁신을 주도하는 게임체인저가 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