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10.01
브런치에 와인 관련 글을 써야겠다고 마음먹고 첫 번째 글(‘167장의 와인 사진’, 23.09.15)을 쓴 뒤, 두 번째 글을 쓰는 데까지 1년하고도 15일이 더 걸렸다. 그 사이 나는 와인 소믈리에가 되었다.(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와인 소믈리에 자격증을 갖게 되었다.)
예전 김어준의 색다른 상담소 ‘아는척 매뉴얼, 와인편’을 10번쯤 들었던 기억이 있다. 20분만에 와인을 바짝 배워, 잘 알지는 못하지만 아는 척 할 수 있는, 깊지는 않지만 얕음을 들키지 않게 해주는 취지였다. ‘까바로 시작할까요?’, ‘여름이니까 소비뇽 블랑이 좋겠네요.’, ‘이탈리아 마르케 와인으로 추천해 주세요.’ 이 세 문장만 외우면 게임 끝이라고 했다. 와인을 좀 알고나서 다시 보니 정말 탁월한 세 문장이다.
까바(Cava). 까바라는 두 글자에는 ‘샴페인 제조방식으로 만든 스페인의 스파클링 와인’이라는 정보가 담겨있다. 까바는 샴페인 대비 훨씬 가성비 좋은 최고의 식전주다. ‘여름이니까 소비뇽 블랑이 좋겠네요’는 감기에 걸렸으니 감기약을 먹는 게 좋겠다는 말처럼 당연한 말이다. 여름에는 시원한 소비뇽 블랑을 마셔야 한다. 그것이 여름의 특권이다. 이탈리아의 대표 와인 산지는 피에몬테, 토스카나, 베네토. 그런데 이태리 와인을 이야기 하며서 마르케 지역을 말한다는 건 와인 내공이 상당함을 의미하는 것은 맞다. 단, ‘죄송합니다, 마르케 와인은 오늘 준비되어 있지 않은데, 바롤로나 BDM은 어떠실까요?’라는 반격에 ‘네...주세요’ 하고 만다면 뜻하지 않은 많은 지출을 감내해야 할 지도 모른다.
와인을 공부하면서 가장 좋았던 점은 세상에 존재하는 다양한 품종의 와인을 경험하고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 종종 맛있는 와인을 추천해 달라는 이야기를 듣는다. 그럴 때마다 까베르네 소비뇽, 피노누아, 샤르도네처럼 보편적인 품종보다는 색다른 품종의 와인을 소개해 주고 싶은 욕심이 생긴다. 세상에는 와인이 정말 많으니까.
색다른 와인을 알기쉽게 소개해주는 소믈리에장의
<알잘딱깔색 매뉴얼>
보졸레 누보 예약했나요?
프랑스 보졸레 지역은 부르고뉴 바로 아래 위치한 지역으로 ‘가메’라는 포도 품종이 재배된다. 가메는 꽃향기가 풍부하고 흙냄새가 나기도 하는 가벼운 레드와인으로, 피노누아보다 더 라이트한 바디감을 갖고 있다. 쉬운 말로 꿀떡꿀떡 잘 넘어가는 와인이다. 보졸레 누보(New라는 뜻)는 매년 9월 초에 수확한 가메를 4~6주 숙성시킨 뒤, 11월 셋째 주 목요일부터 출시하는 햇와인이다. 보통 와인은 6개월 이상은 숙성을 하게 되는데 보졸레 누보는 발효 즉시 내놓는 신선한 맛이 생명이기 때문에 출시 후 2주 정도가 지나면 판매가 종료된다. 치즈, 과자, 치킨, 군만두 같이 캐주얼한 음식과 편하게 먹기 딱이다. 10월 중순부터는 예약판매가 시작된다. 가격은 2~5만원대.(기본급 보졸레 누보 2만원대, 한 단계 윗급 보졸레 빌라쥬 누보 3만원 이상)
남아공 와인 드셔 보셨나요?
가성비 있고 편안하게 데일리로 즐길 수 있는 화이트 와인 2종을 고르라면 뉴질랜드 소비뇽 블랑과 남아공의 슈냉 블랑을 꼽고 싶다. 둘 다 저렴하고 맛있다. 뉴질랜드 소비뇽 블랑은 워낙 유명하고, 이에 반해 남아공 슈냉 블랑은 상대적으로 덜 알려져 있다. 슈냉 블랑은 프랑스 루아르 밸리의 화이트 와인 품종으로, 과일향이 짙고 산도가 높은 특징을 가지고 있다. 기후가 따뜻한 남아공의 슈냉 블랑은 루아르 슈냉 블랑보다는 산미가 낮은 편이나, 그래서 더 편안하게 마시기가 좋다. 맛있었던 와인을 잔뜩 쟁여놓고 안전하게 마시는 것도 좋지만, 마셔보지 않은 다양한 와인으로 경험을 확장해 가는 모험을 해봐도 좋겠다. 일단은 남아공 슈냉 블랑부터.
세번 째 글은 언제쯤 쓰게 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