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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r Braun Apr 21. 2024

세상을 바꾸는 솔직한 거짓말

공간(空間) 사옥 & 아라리오 뮤지엄 인 스페이스 (24.04.21)

 사람마다 쓰는 용어의 차이가 있을 것 같지만 나에게 종로구의 구분은 꽤 잘게 나뉘어있다. 서촌, 북촌, 삼청동, 안국을 각각에 알맞은 주차장으로 경계를 나눈다. 오늘은 현대 계동 본사 주차장이다. 나에겐 안국동과 동의어가 된다.

 주차장에 도착하니 때아닌 시간에 많은 인원들이 짐을 옮기느라 분주하다. 가만히 보니 의자가 많다. 주말을 이용해 사무용품을 교체하는 모양이다. 의자의 모양새가 어째서 인지 낯익다. 허먼밀러라는 유명 사무용 의자 브랜드다. IT 업계에서는 모르면 간첩인 아이템이다. 현재 일하는 회사에서 처음으로 이 의자를 지급했다고 한다. 아무래도 하루 종일 앉아서 컴퓨터를 마주하는 IT 직종의 특성상 허리를 지켜줄 고급의자마저도 좋은 복지가 된다. 코로나 시기에는 해당 의자를 재택 물품으로 보급하는 회사가 채용업계에서 크게 회자된 일도 있었다. 그런데 이 의자가 IT와는 거리가 멀어 보이는 현대 계열사에 보급된다. 꽤 느린 트렌드 같아 보이지만 한편으로는 대기업들도 많이 움직이고 있구나라는 생각이 든다. 곧 IT 역량이 필요한 대기업의 채용 트렌드에 따라 IT 업계의 인력 구조가 기존 사업과 본격적으로 섞일 것 같은 생각도 어렴풋이 든다. '무슨 의자하나 가지고 그런 생각까지?'

 뭐 이런 소소한 생각을 이어나가는 것이 내 취미인 것을 어쩔 수 있을까.



 공간(空間) 사옥의 외관은 많은 사람들에게 익숙할 것 같다. 나도 안국을 몇 번이나 지나다니면서 이 건물을 봤다. 위치가 주는 위화감 때문인지 아니면 건물이 주는 고고함 때문인지 큰 길가에서 바라보면 눈에는 띄는데 접근하기엔 뭔가 어려운 이미지가 있다. 유명 카페가 들어서면서 몇 번, 기념 식사를 위해 몇 번 더 방문했지만 왠지 모르게 건물 깊은 곳까지 한 발짝 용기 내기 어려운 장소였다. 재밌는 점은 그런 곳에는 항상 갤러리나 전시회장이 있다. 이 취미가 점점 좋아지는 이유는 좀처럼 가기 어려운 곳에 한 발 내딛는 호기심을 충족시킬 수 있는 뻔뻔함이 다져지기 때문이다.

 공간 사옥은 건축가 김수근의 설계다. 검색해 보니 한국 건축사를 대표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그 행보에 있어서 평가가 나뉘는 인물로 나온다. 인물에 대한 판단은 차치하고 아라리오 뮤지움 경험의 80%를 차지하는 공간이기 때문에 상당히 인상 깊다. 실제로 오디오 가이드에서도 작품 설명의 중간중간 건물에 대한 설명을 추가하기 때문에 전체 관람에서 공간에 대한 중요도가 높아진다. 유명한 작가의 작품을 관람하고 있으면서도 전시 자체에 집중하기 어려웠던 이유는 어쩌면 공간이라는 대전제가 주는 압도감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공간 덕후인 나에게 이런 미로 같은 공간은 시간을 멈추게 한다. 특히 스케일이 작은 공간을 좋아하는 나에게는 숨겨야 하는 치부를 들킨 것 같은 기분을 들게 한다.

 직장 동료와의 대화에서 내가 가진 정치색에 대해 쉽게 드러내는 사람이 있을까? '글쎄.. 현대 사회에서 정치색이라는 게 존재하기는 하는 걸까? 바야흐로 이미지의 시대가 아닐까?'라는 정리 안 된 생각도 일단 뱉고 보면 하나의 의견이 되어 날카로워질 수 있다. 비단 직장 동료 사이만이 아니다. 부부 관계에서도 서로 동의하지 않을 것 같은 주제는 되도록 꺼내지 않는 편이다.

 말하지 않으면 충돌이 없이 지나갈 일 들은 처리가 쉬운 편에 속한다. 그런데 취향의 문제는 조금 더 복잡하다. 처음부터 존재한 것은 없다. 어떤 공간과 물건이 그 형태를 지니기까지는 꽤 많은 취향의 변형이 쌓이게 된다. 이 적층 된 취향의 그룹을 문화라고 하고 그 뒤에는 역사가 있다. 그리고 역사와 문화 근처에는 배경으로써 정치도 자연스럽게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어떤 취향 뒤에 숨겨져 있는 문화와 역사에 대해서 코치코치 캐묻는 사람은 많지 않지만 어쩐지 그런 취향 뒤에는 저런 역사 문화적 전제가 있을 것 같은 고정관념이 있다. 그것이 확장이 되면 어떤 정치 사회적 생각을 가지고 있을지까지 유추하게 된다. 게다가 취향을 통한 추측은 고정관념이라고 하기엔 상당히 타율이 높은 점쟁이다. 그러다 보니 취향을 자연스럽게 공유하기에는 경우에 따라서는 꽤 구구절절한 정치, 사회, 문화, 역사적 설명이 필요할 때가 있다. 이 모든 게 하나의 선으로 일정하게 이어지지 않아도 된다는 설명을 하는 일은 꽤 지치는 행위다. 생각보다 다양한 사람이 살아가는데 말이다.
(이런 면에서 술이 취향인 점은 꽤 유리하다. 1차적 욕구에 가까운 취미일수록 오해받을 일이 없다.)


취향이 담긴 삼각형 계단 - 4~5층은 한사람만 다닐 수 있다.

 관찰자가 좋은 점은 쉽게 관찰 대상에 대한 정보를 얻고 자의작 판단을 마음껏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치사하지만 사실이다.) 이런 공간적 배경에 저런 유명한 예술 작품을 한데 모을 수 있는 욕망의 근원은 무엇이고 이 정도로 실행력이 있는 사람은 누굴까? 검색이 답이다. 3분이면 알 수 있다.

 성공한 사업가가 예술가적 면모를 가지고 있다. 성공한 자본으로 역사적 공간을 매입하고 그곳에 예술적 목마름을 채워 넣는다. 그리고 자신도 예술가가 되어 작품을 만들고 이를 전시한다.  

 이 공간을 만든 사람에 대한 세문장 요약이다. 어떤 문장을 강조하냐에 따라서 시선이 달라진다. 여기에 한 두 문장을 추가하면 아예 내용이 달라질 수도 있다. 여기서 딜레마에 빠진다. 이 사람에 대한 평가를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내 취향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뭐 그렇다고 해서 취향이 암시하는 것이 나라는 사람과 일치하지는 않지만 역시나 하나하나 분해해서 이유 없는 의문에 해명하는 것은 귀찮은 일이다.



 언제부터인가 단 하나의 문장을 믿는다면 '생각한 것은 이루어진다'라는 것이다. 생각하는 것이 현재 사실이 아니더라도 미래의 사실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에게는 그 일이 꼭 일어난다고 생각한다. 단순히 의지의 문제가 아니다. 시크릿 같은 서적의 긍정적인 이야기와도 결이 다르다. 이것은 좋거나 나쁘거나 이상하거나 모두 해당된다. 보통은 이 말을 좋은 의미로 사용하지만 나쁘거나 피하고 싶은 일에도 적절하다. 결국 생각하기 시작하면 그것을 사실로 만들 수 있는 여러 가지 조건을 만드는 나 자신이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솔직하지만 지금은 사실이 아니라는 점에서 거짓말에 속한다.

 솔직한 거짓말은 모순 투성이다. 최소한 나의 솔직한 거짓말은 모순 투성이로 구성되어 있다. 예술의 순수함을 추구하는 한편으로 그 예술을 한 곳에 모아서 전시할 수 있는 영향력을 갖고 싶다. 현대 사회의 주된 가치는 너무 세속적이라고 단언하면서도 그 세속의 한가운데서 남보다 더 좋은 길을 찾기 위해 헤맨다. 그런 내 안의 모순들에게서부터 솔직해지고 서로 충돌하는 것들로부터 원하는 것만 뽑아내서 하나의 거짓말을 만들어 내면 그것이 현재 내가 원하는 방향성이 된다. 다만 그것이 나 자신과 일치하는 개념은 아니다. 아직도 선택되지 못한 내 안의 다른 것들도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실제로 세상에서 이루어지는 것은 원하는 방향성에 의거한다.



 '그래서 뭐?'라는 질문이 남는다. 결국 눈치를 보고 또 보는 내 취향은 지금은 솔직해 보이지만 사실로서는 거짓말인 방향성에 대한 에너지를 동경한다. 그 동경이 나를 바꾸고 세상을 바꾼다. 그 모습이 좋든 싫든 간에


미술가의 조상 - 콘스탄틴 / 요르그 임멘도르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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