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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r Braun Jul 21. 2024

실제로 변하는 것

 마지막 글을 발행한 이후로 벌써 2달이 지났다. 누군가 불성실의 결과냐고 묻는다면 답변은 '예'를 피해가진 못할 것 같지만 굳이 변명해 보면 환경에 변화가 생겨서라고 답해본다. 둘째 아이가 태어났고 이미 육아 경력직이기 때문에 그 파급효과는 예상했던 바다. 다만 구체적으로는 둘째 아이를 보느라 시간이 없어졌기보다는 둘째 아이에 매진하는 아내를 돕기 위해 첫째를 평소보다 더 살뜰히 챙겨야 하기 때문에 시간이 부족한 느낌이었다.

 언제나 실제 일을 진행하는 데 있어서 디테일한 변수가 있기 마련인데 이번의 중대 변수는 첫째 아이의 성장이다. 누군가 정의해 놓은 '미운 N살'이 7에서 5로 당겨졌다는 말이 있던데 딱 그 시기인가 보다. 말을 안 듣는 것은 예사고 안치던 사고도 치고 다니기 시작한다. 역할에 치중한 경고(형답게)도 해보고 인류애에 대한 호소(사람한테 그러는 거 아니야)도 해보고 사랑을 담아 하는 이야기(사랑하는 우리 아들)등 여러 변화구를 던져보지만 귓등으로도 안 듣는다. 그러다가 가장 동물적인 방법의 접근(감정을 담아 혼내기)으로 접근하면 그때는 조금 말이 통하는 듯 하지만 이건 나의 내상이 깊다. 내가 이 정도밖에 안 되는 사람인가?라는 고민을 하다 보니 벌써 2달이 지나있었다. 인생 경력이 거의 40년이 돼 가는 나에게도 환경 변화는 이렇게 버거운데 고작 4년 남짓의 아이에게 극심한 환경 변화는 오죽할까 싶다. 이렇게 글로 써두고 보면 이성적으로는 이해가 가는데 막상 상황에 처하면 쉽지 않은 게 육아인 것 같다. 아마도 이런 고민은 쭈욱 계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런데 정말 변화한 게 무엇인가?라는 질문이 오늘의 주제가 될 것 같다. 분명히 환경은 변화했다. 새로운 가족이 생겼고 그 구성원으로 말미암아 다른 구성원들의 역할이 바뀌었다. 실제로 시간의 분배도 새로워지고 훨씬 바쁜 건 사실이다. 다만 이 변화가 물리적으로 너무나 극심해서 글 하나 쓰지 못할 정도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변은 '글쎄요'가 될 것 같다. 실제로 바쁘지만 그렇다고 자유시간이 없는 것은 아니다. 분명히 아이 둘 다 잠든 시간도 있고 이동하는 시간도 존재한다. 그뿐만 아니라 아마도 이런저런 시간을 더하고 나면 정확히 물리적으로는 약 2시간 정도 차이가 나지 않을까? 생각한다. 물론 하루에 최소 8시간 일하고 8시간은 자야하며 1시간은 식사에 할애하고 2시간은 움직이고 씻는 다는 가정을 해서 계산하면 약 19시간이다. 여기에 육아 시간이 기본 2시간은 될 텐데, 여기에 2시간 정도 더 붙는다고 해도 1시간은 남지 않을까? 쓰고 나니 빡빡해 보인다. 그러나 모든 시간이 그렇듯 100% 생각하는대로 사용되지 않는 것을 감안하면 최소 2시간은 하루에 남을 것으로 예상된다. 그리고 이 시간에 마음먹고 글을 썼다면 분명히 늦지 않게 글을 써 내려갔을 것 같다. 그런데 2달 동안 아무것도 남기지 못한 것은 실제 변화에 대한 부분이 아니라 내 태도에 대한 변화라고 생각된다.



 단순히 글을 쓰는 습관에 대한 태도뿐만 아니라고 생각된다. 시간을 아껴 쓰는 관점이 아니라 시간을 밀도 있게 채우고 싶은 관점에서도 유효한 접근 인것 같다. 우리는 매일 상황에 처해있고 그 상황을 해결하거나 받아들여야 한다. 어떤 상황은 내가 적극적으로 해결할 자신과 관심이 있다. 이런 상황은 어떻게든 해결해 내거나 해결하지 못하더라도 의미 있는 성과로 내 안에 자리 잡는다. 반대의 경우는 뭘 해도 짜증 난다. 다른 사람은 의미 있다고 칭찬할지 몰라도 내가 받아들이지 못하면 아무것도 아닌 성과다. 이 경우가 하루의 절반 이상의 시간을 쓰는 일에 해당한다고 생각하면 인생은 철저히 낭비되고 있는 것일지 모르겠다. (실제로 건강도 안 좋아진다.)



 시간이 없다는 와중에 최근에 꽤 의미 있는 일을 했다. 회사에서 일종의 공모전을 열게 되었는데 평소에 마음이 맞는다고 생각한 사람들이 모여서 프로젝트를 구성했다.

 프로젝트 초기 성과는 대실패. 이유는 마음이 맞다고 생각한 착각에 있다. 우리가 잘 모르는 사람들과 합을 맞춰나갈 때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상황'에 대한 판단과 태도다. 회사 안에서 가까운 동료들은 같은 '상황'에 처해 있을 때가 많고 그 '상황'에 대한 판단을 하는 태도를 보고 저 사람과 나와 맞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물론 이번 프로젝트의 경우에는 개인적으로 느끼는 경험적 확신이 있긴 했지만 그래도 처음부터 완전히 기대했던 것들은 아니기 때문에 결과로써는 실패다.

 그러면 최종적으로는 어떨까? 아직 현재 진행형이지만 이 과제만큼은 아마도 해결해 내거나 해결하지 못해도 성과로 자리 잡는 쪽이 될 것 같다. 무엇이 바뀐 걸까? 최소한 아이디어나 탁월함의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아이디어는 원래부터 이 팀 안에 각각 구성원에게 쪼개져서 자리하고 있었다. 변화된 것은 환경에 대한 태도다. 상황에 대해 애매한 것을 없애는 솔직함이 필요했다. 글 시작에도 이야기했지만 실제 일을 진행하는 것은 그 의도와는 다르게 상당히 디테일한 상황이 얽히고설킨다. 이 부분들이 서로 실타래같이 얽혀있는 것을 단도직입적으로 끄집어내서 풀어야 했고 그 행동은 상당한 용기가 필요했다. 뭐 이까짓 프로젝트하나 하려고 서로 '마음이 맞다고 생각하는' 사람들과의 관계를 좋지 않게 할 필요가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럼에도 그 실타래를 끊기 위해서 행위한 것은 아마도 사람에 대한 믿음과 상황에 대한 열정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이 글은 일종의 나에 대한 채찍 같은 글이다. 오늘 아침 갑자기 하나의 문장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내가 어디로 가는지는 절대 알 수 없지만 최소한 내가 지금 어딨는 지는 알고 있다.'  

 미래 지향적(이라고 쓰고 욕망 덩어리라고 읽는)인 나로서는 매번 어디로 가는지를 알고 싶어 한다. 그래서 지금 당장 어디로 가는지 보이지 않거나 미래에 대한 사유를 할 수 없는 상황에서는 철저히 현실을 무미건조하게 흘려보낸다. '당장 육아로 정신적 피곤함에 둘러싸여 있는데 대체 무슨 글을 쓰겠어?'라고 이야기하는 나 자신은 결국 피곤한 상황에서는 사유하기를 멈추고 싶어 하는 약한 자아에 불과하다. 1 아니면 0이라고 이야기하기에는 나 자신에게 너무 무책임하다. 결국 지금 내가 어딨는지 확실히 알고 이것이 버틸만한 것인지 아니면 전략적으로 탈출해야 할지 또 아니면 완전한 변화를 모색해야 하는지는 현실의 내가 알고 있을 뿐이다.

 생각해 보면 나중에 가서 좋았던 경험 혹은 성과는 이행하는 동안에 전혀 철저하다는 느낌이 없었다. 그냥 그곳에 있었고 그 상황에 빠져들어 최선을 다했을 뿐이다. 그 최선 뒤에 따라오는 포상처럼 어떤 실질적인 성과가 있었다. 결국 그 상황 자체가 재밌었던 경험이 내 인생을 풍부하게 한다. 최근에 미래를 고민하는 경력이 얼마 안 되는 동료에게 주제넘게 이렇게 이야기한 적이 있다. '직무에 집중하지 말고 좋은 동료들과 매일 감탄하는 경험을 얻도록 찾아가시라'라고. 무의식적으로 던진 이야기였지만 어쩌면 나 자신한테도 같은 이야기를 매일 하고 있었는지 모르겠다.

 


(덧붙임)

 최근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를 다시 읽기 시작했다. 계기는 상당히 길다. 좋아한다는 말로는 부족하는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에서 헤밍웨이는 '진심이면 제목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라는 뉘앙스의 이야기를 한다. 내용이 진실되면 그것으로 충분하다는 이야기인데 이 말이 무엇인지 항상 궁금했었다. 그러다 최근 나쓰메 소세키의 '도련님'을 다시 읽으면서 어렴풋이 이해가 되었다. 매사 불만섞인 어조로 이야기하는 도련님의 말투와 상관없이 결국 그의 굳은 신념과 부조리를 부수고 싶은 마음을 진심 그대로 전달하는 것이 참 마음에 와닿는다. 그런 점에서 노인과 바다에서의 노인의 인생 일대의 낚시에 대한 묘사가 다시 눈에 들어온다.

 자신의 삶이 깊어지면 자연스럽게 그 주위를 이해하게 되고 그것에서 본인만의 방향성을 찾는다. 나만의 방향성을 토대로 묘사하는 세상이 퍽 설득력 있고 멋지다면 그것이 참 잘 살아낸 인생이 아닌가 싶다.  

(프로젝트에서 현시대의 시성비에 대해 이야기하다가 취향 늙은이가 되어버린 나는 어쩌면 몽니를 부리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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