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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rench Toast Mafia May 24. 2021

시키지 않은 일을 '굳이' 하게 되기까지

12주간의 기술 면접 멘토링에 앞선 생각.

    왜 나서지 않아도 될 일을, 굳이 나여야 하는지. 끝내 맴도는 곳은 "내가 그렇게 하길 원해서"인데 만족스럽지는 않다. 왜 원하는지, 무엇을 찾고자 하는지에 대해 시원한 결과물을 얻지 못하였다. 그래서 해보기로 했다.


     앞으로 12주간 미국 내 대학에서 컴퓨터 사이언스를 전공하는 대학생을 상대로 직장인 멘토로서의 활동을 시작한다. 여름방학 동안 학생들은 기술 면접을 잘 볼 수 있도록 수업을 듣고 매주 현업에 있는 멘토와 만나 그 기술을 훈련받는다. 집중 대상은 소수 그룹에 속하는 학생들이지만, 자격 요건은 컴퓨터 사이언스를 전공하는 학생이라면 누구나 무료로 지원할 수 있다. 요는 소외 계층 학생들의 기술 분야 진출을 도와 기회의 불균형을 해소하는 데 있다.



Help College Students Ace Technical Interviews
(대학생들이 기술 면접을 숙달할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이것이 위 프로그램의 catchphrase(이목을 끄는 표어). 이처럼 기술 분야 Outreach(아웃리치. 조금 더 적극적인 성격을 띠는 '봉사활동'이라 해두자) 프로그램에서 자원봉사(또는 재능기부. 재능이라는 단어가 껄끄럽긴 하지만) 자를 찾는 공고는 업무 경력이 쌓일수록 더욱 간절하게, 적극적인 방법으로 나를 찾아온다. 좋은 일 한번 하세요, 연말이면 찾아오는 구세군 종소리 같은 속삭임이다. 찰나의 멈칫과 미미한 죄책감을 불러일으킬지는 몰라도 눈길만 피하면 들리지 않은 체해도 상관없을 테지. 그러니까 이번 경우는 모든 귀찮음과 불편함, 소심함을 뚫고 자원하게 만들 정도로 특별했다. 좋은 뜻에 동감하는 것과 '굳이' 나서서 그 뜻을 실행함에 있어서의 간극에 대해 생각해 본다. 내 발목을 붙잡은 것은 이 프로그램의 문제의식과 방향성이었고 발길을 돌리게 한 것은 이 경우에는 나도 도울 것이 있겠구나, 하는 천진한 자신감이었다.




문제의식과 공감


    Equality(평등)과 Equity(공평, 공정)은 개인적인 관심사라 우선 마음이 동했고 기술 면접을 잘 볼 수 있게 돕는다는 그 명확한 방향성이 격한 공감을 이끌어 냈다. 대학은 면접을 보고 직장인으로 일하는 기술에 대해 가르쳐주지 않고 학생들은 더듬거리며 저마다의 방법을 찾아 취업의 관문을 통과한다. 왕도 없는 길에 누구도 섣불리 나침반을 내어주지 않는다. 뒤돌아보니 공부를 잘하는 것과 면접을 잘 보는 것의 차이는 극명한데 왜 공부에 열중하는 것이 당연히 취직으로 이어질 것이라 짐작했을까? 왜 누구도 내게 알려주지 않은 거야? 나를 행동하게 만든 건, 그 시절 방황에의 트라우마이자 아쉬움이지 대단한 소명 의식이 아니다. 나는 우당탕탕 어떻게든 탈출했는데, 너희들 아직도 그러고 있으면 어떡하니?



미약할지라도 자신감


You should apply to be a Technical Mentor if you: 

(다음 사항에 해당한다면 기술전문직 멘토로 지원하세요)

Love working with students and are passionate about increasing equity in tech. (학생들과 교류하기를 좋아하고 기술 분야 공평성에 대한 열정을 가진 사람)

Currently work as a software engineer, and have been through the technical interview process yourself.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로 현재 근무 중이며 기술 면접 과정을 겪어본 사람)

You are comfortable coding in Java or Python. (자바 또는 파이선으로 코딩이 가능한 사람)

You can commit to attending all 12 Saturdays of the program! (12주간 매주 토요일 시간을 할애에 참가할 수 있는 사람)


    공고에 나와 있던 자격요건. Passionate(열정적인)과 같은 단어를 '조금이라도 관심을 가진'으로 가려들으면 대충 문제는 없다. 대학생 인턴쉽 멘토도 몇 년 간 해왔고 기술 면접은 어떻게든 통과했으니 이 자리에 있다. 2주 넘는 시간 고민하게 한 것이 마지막 문구. 12주라는 시간을, 그것도 토요일 황금 같은 주말 1시간을 기꺼이 내놓아야 한다는 점이었다. 주말 하루도 큰 마음먹어야 하는 데, 무슨 수로 꾸준함을 약속할 수 있을까. 겁이 날 땐 간만 봐본다.


    공고 후 지원 마감 날짜 전까지 주관단체는 인포세션을 수차례 연다. 호기심은 이는데 차마 적극적으로 알아볼 정도의 적극성은 없는 나 같은 사람들에게 더할 나위 없다. 인포세션을 이끄는 진행자는 능숙하게 입 밖으로 내지 못했던 궁금했던 점들을 하나하나 짚어 대답해주고 참여를 독려한다. 참가하지 못할 상황이 생기더라도 단체에서 대타를 구할 수 있다는 점과 수업 내용을 멘토가 스스로 준비할 필요 없이, 매주 주제에 맞는 가이드라인, 연습 문제, 해설, 학생들을 대하는 방법까지 모두 주관하는 곳에서 떠먹여 준다는 점이 귀에 쏙쏙 박혔다. 천진하게 그렇다면 나도 한번 해볼까? 생각이 드는 것이 보기 좋게 영업당했다. 고백한다. 좋은 마음에 한번 해볼까 싶더라도 미리 선을 그어둔 만큼의 정성과 시간 이상으로 내어 줄 생각이 없었다. 다시 구세군 비유로 돌아가자면, 당장 내 지갑에는 몇만 원의 지폐도 숨어 있지만 기꺼이 내놓을 마음이 짤랑이는 동전 몇 개 정도라는 부끄러운 자각이 결국 발길을 돌리게 한다. 이때 이깟 돈 내는 게 무슨 의미 있겠어, 하는 속내를 읽어내고 "동전 더 환영합니다. 당신의 동전도 우리에겐 이만큼이나 보탬이 된답니다" 광고하는데 당해낼 재간이 없다.




    이렇게 나는 구구절절한 변명의 늪을 헤쳐 건너편으로 나왔다. 큰 도약이다. 사실 컴퓨터 사이언스 공부를 하는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아웃리치 활동에 관심을 가진 지는 오래다. 사회생활을 갓 시작한 무렵부터 호기심만 뭉근히 끓여오다가 5년 차 경력직이 된 후에야 경험과 자신감의 창고에 나눌 양식이 조금 쌓였다는 희망이 보였다. 이후로도 몇 가지 단발성 활동으로 간만 수차례 보다가 더 용기를 내보기로 한 것이 이번 프로그램이다. 이번 주로 7년이라는 경력을 꽉 채우게 되니 참 오래도 걸렸다. 많이 갑갑한가요? 허허. 나랑 평생 살아온 나는 어떻겠나요. 문득 이 글을 쓰게 된 이유가 선명해진다. 잰걸음으로라도 어디론가 나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스스로를 응원하기 위해. 망설이고 겁부터 나는 순간이 다시 오면, "너 그런 일 수도 없이 겪어왔어. 새롭지 않아." 일러주기 위해.



Banner Photo by James Harrison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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