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필이면 멘토 프로그램의 첫 모임 날짜가 오래 기다려왔던 여행 일정과 딱 겹쳐버리고 말았다. 하루하루 날짜를 꼽으며 기다려왔던 1년 반만의 여행이었다. 가까운 친구들 모두 겨우 시간을 맞추고 여행 전에 일행 여섯 명 모두 코로나 백신 접종을 끝내면서까지 준비했는데 토요일 오전 1시간의 내 개인 일정 때문에 모두의 여행 날짜를 조정하고 싶지도 않았고, 그렇다 해서 스스로 큰 마음을 먹고 참가한 프로그램에 첫 학생들과의 만남부터 빠지고 싶지도 않았다. 결국은 일행에 양해를 구하고 토요일 아침 일정을 비웠다. 그러고는 첫 대면에 대한 긴장감은 쉬이 지워버렸다. 여행에 대한 설렘이 훨씬 압도했기 때문이다. 그저 집을 벗어났다는 해방감에 취하기도 하고 그 자체로도 환상적이었던 라이트 설치 미술을 구경하며 전날 금요일 일정은 완벽하게 마무리를 지었다.
멘토링에 대한 현실감이 엄습한 것은 다음 날 아침. 애써 아닌 척하려 했지만 처음이라는 부담감이 컸던 건지 알람보다 일찍 깼다. 이번 모임이 첫 수업이기도 하고 내가 담당할 학생들은 가장 기초반 소속이라 강의 내용 상 내 선에서 대단할 준비랄 것이 없었다. 어떤 학생들과 대화를 하게 될지, 과연 내가 어떤 방식의 도움을 줄 수 있을지 예상할 수 없다는 그 불안감을 삼키는 것 정도가 준비의 전부랄까. 숙소에 포함된 네 개의 방 모두가 침실이라 침대 위를 간이 책상으로 노트북 밑에 휴지곽을 받쳐서 높이를 맞추고 (곧 알게 되겠지만 참 멍청한 짓이었어) 식탁의자를 가져다 임시 오피스를 만들었다. 그리고 혹시나 인터넷 연결 상태가 불안정 해질까 챙겨간 핫스폿 기계의 전원을 켜고 노트북을 펼쳤다. 이제 10분 남짓한 시간이 남았군. 습관적으로 이메일을 확인했다.
그런데 이게 뭐야. 주관 단체에서 꽤나 다급한 어조로 메일이 도착해 있었다. 내용인 즉 내 멘토 버디인 사람이 급한 '건강상'의 이유로 모임 20분 전에 불참을 통보했으니 내가 대타를 뛰어줬으면 한단다. 거 사람 참 너무하네. 이걸 이렇게 갑작스레 통보를 한다고? 정말 '건강상'의 문제가 맞긴 한 걸까 야속한 마음이 먼저 들었다. 이런 상황을 물론 미리 예상하고 있었을 주최 측은 사전에 멘토 두 명을 짝을 지어, 만일의 불참의 사태에 다른 한 사람이 상대 그룹의 학생들 멘토링까지 커버할 수 있도록 해두었다. 영리하네. 멘토 버디 제도에 대해 처음 들었을 땐 그런 일 충분히 있을 수 있지 정도로 가벼이 생각하면서 동시에 '내가 빠질 일이 생겼을 때 대타가 이미 정해져 있다니 다행이군' 하고 말았는데...... 첫날 이렇게 실제로 일어날 수 있다고는 생각도 못했다고! 벌떡 일어나 좁은 방 침대 주변을 잰걸음으로 돌면서 놀란 마음을 진정시키려 애썼다. 시간은 약속된 10시 반. 머리는 계속 복잡한 상태로 줌 화상 미팅에 들어갔다. 휴. 다행히도 강의가 예정보다 길어지고 있었다. 조금은 더 맘껏 당황한 감정을 표출할 시간은 있겠구나. 다시 또 종종 거리며 방을 휘젓고 다녔다. 이때였다. 처량하게 침대맡 제 몸체보다 작은 휴지곽에 걸쳐 운신하고 있던 노트북이 굴러 떨어져 버린 것이다. (일어났다 앉았다를 반복하면서 나도 모르게 노트북을 건드렸던 모양) "으악! 당황하면 꼭 일을 저지르고 만다니까"하며 황급히 노트북을 주워 올렸는데 글쎄 화면이 처참히 깨져 검은 화면만 보이는 상태가 아니겠는가. 이젠 정말 패닉이다. 더 야속하게도 다른 모든 기능은 멀쩡해서 강의가 점점 멘토와 함께 문제를 풀어보는 단계로 다가가는 소리는 들려왔다. 우선 황급히 노트북을 닫아 버리고 덜덜 떠는 손으로 휴대폰을 써서 주최 측에 이메일을 썼다. "갑작스러운 문제로 컴퓨터가 말썽이라 당장 화상 회의에 들어갈 수가 없게 되었으니 대타를 준비해 주시고, 저는 지금 당장 다른 방법을 찾아 가능하면 참가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죄송합니다." 그리고 전송. 이 무슨 얄궂은 업보인지. 얼굴도 모르는 낯선 사람에게 일어났다는 일신상의 사정은 대뜸 그 진의부터 의심하고 봤더니, 그로부터 채 30분도 지나지 않아서 훨씬 조악한 거짓말 같은, "다급한" 개인 사정이 생기다니. 이래서 마음을 곱게 쓰라는가 보다.
이 지경이 되어버린 주인 잘못 만난 노트북. 바꾼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너털웃음이 났다. 멋지고 여유 넘치는 전문가 멘토이고 싶었는데. 이렇게 직전까지 긴장해서 우당탕탕 사고 치는 꼴이라니. 네가 타인에게 무슨 조언을 할 수나 있겠니. 니 앞가림이나 잘해! 하는 질타로 속이 시끄러웠다. 그러면서도 몸은 대처를 위해 움직였다. 같이 여행을 하는 일행 모두 가벼운 짐만 챙겨 왔으니 대신할 노트북이 있을 리 없었다. 휴대폰으로 우선 줌을 다운로드하였다. 또 다른 일행의 휴대폰을 빌려서는 멘토 가이드를 띄웠다. 미팅에 다시 들어갔다. 훨씬 열악하지만 기능적으로 빠질 것은 없을 새로운 환경을 조성하기까지 3분도 채 지나지 않았는데 그사이 멘토 세션이 시작해버렸을까 조마조마했다. 다행히 강의 진행은 여전히 늦어지고 있었다. (3분 전까지만 해도 일정이 늦어진다고 속으로 욕해서 죄송해요... 제가 이렇게 한 치 앞도 못 보는 중생이랍니다) 짬을 이용해 다시 주최 측에 메일을 썼다. "놀라게 해 드려 죄송합니다. 급하게 휴대폰으로 미팅에 다시 들어왔으니 어떻게든 맡은 일은 해내겠습니다." 그리고 수 분 뒤 Breakout Session, 조로 나누어서 멘토와 함께 연습문제를 푸는 시간이 왔다. Finally a showdown. (드디어 결전의 순간)
내가 어렴풋이 그려본 첫날은 당연히 이렇게 우스꽝스럽지 않았다. 상상 속에서 나는 연륜이 느껴지는 말투로 직장인의 여유를 뽐내면서 첫인사를 건넨다. 학생들의 화답과 함께 곧 함께 주어진 연습 문제를 풀기 시작하는데, 학생들은 주도 학습을 하고 나는 통찰이 빛나는 힌트만 넌지시 던지며 스스로 답을 찾을 수 있도록 돕는다. 혹여나 지나치게 참여가 저조한 학생이 있다면 면접의 가장 중심에는 소통이 있다면서 설령 답을 안다고 해도 말로 풀어내는 연습을 하는 게 중요하다는 점을 따뜻하게 짚어주면서 모두를 안고 가는, 그런! 동화 같은 꿈을 꿨더라.
앞선 난리로 인해 엉성하고 실수투성이인 처참한 현실로 불시착했다. 연륜과 여유? 기가 찬다. 내가 단 하나의 학생에게 단 한 번의 도움이라도 될 수 있으면 다행이겠다 하는 겸손으로 마음을 고쳐먹고 기대치를 수정했다. 문제는 또 발생했다. 학생들이 문제를 풀기 시작한 지 채 5분이 안돼서 또 다른 예상이 어긋났다. 내 예측보다 학생들이 문제를 함께 풀어나가는 것을 훨씬 힘들어했던 것이다. 어려운 문제를 못 푸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쉬운 문제를 틀리게 푸는 것이 문제였다. 성의 없이 그려본 모습에서 학생들이 어려움을 겪는 부분은 문제를 접근하는 방법을 찾지 못하고 우물쭈물하는 장면이었는데, 총 13개 정도의 짧은 문제들 중 첫 문제부터 틀린 답을 자신 있게 말하고, 다른 학생들도 오답에 동의를 하고 2번, 3번 문제로 넘어가는 광경에 또 한 번 당황했다.
"아니 잠깐 얘들아! 우리 천천히 1번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보자. 하하하. A, 너의 첫 접근방법은 참 좋았어. 하지만 우리 이런 경우의 수도 생각해보는 게 어때?"
최대한 격려와 동시에 완곡하게 틀린 점을 짚어주려니 버벅거릴 수밖에 없었다. 영 익숙하지 않은 대화방식이었다. 부끄럽게 고백하자면 나는 업무 중에는 이런 '상냥한' 소통을 하지 않는다. 직급이 올라가고 직무가 많아지면서 더욱 사실에 입각한 효율적인 정보 전달을 위한 간략한 대화가 많아졌다. 오고 가는 이메일 속에서도 필요한 말만 하는 것이 테크 분야 문화라 둘러댈 수 있겠지만 (이메일에 Yes. No. 한 마디로 주고받는 게 다반사다) 결국에는 바쁘다는 것이 핑계였다. 틀린 점이 있으면 즉시 짚어내고 근거를 설명하고 시정을 부탁한다. 어미에 Please를 붙였으니 그만하면 좋게 얘기했다며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하지만 나는 문제를 풀기 위해서 학생들과 일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주는 학생들이고 문제 풀이는 수단에 불과하다. 내 역할은 학생들이 컴퓨터 분야를 포기하지 않도록 독려하고 면접 준비를 도와 궁극적으로 기술 인터뷰를 통과해 더 많은 학생들이 테크 분야에 진입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내 소통의 미숙함 때문에 의도치 않게 상처 받고 시작도 해보기 전에 자신감을 잃어버리는 불상사가 생기면 정말 슬픈 일이지 않는가. 혹자는 지나친 생각이라 할까? 나도 그런 일이 있겠냐 싶으면서도 늘 최악의 경우(worst-case scenario)를 염두에 두는 것이 개발자 직업병이라 별 수 없다.
답을 직접적으로 제시하지 않으면서 스스로 생각할 수 있는 힌트를 생각해내는 데 진땀을 뺐다. 학생들 간의 수준 차이를 고려해야 했고 뒤쳐지는 학생은 없으면서 지나치게 한 학생을 돕느라 다른 모두의 진행속도를 늦추지 않으려니 골치가 아팠다. 동시에 나는 두 그룹을 이끌어야 했기 때문에 한 그룹에 편중된 시간을 쏟을 수 없었다. 10분 간격으로 화상 미팅을 오가면서 진행상황을 재빨리 파악한 후 답안을 확인해주고 질문에 대답과 동시에 격려의 말 한마디씩 보태다 보니 시간이 금방 흘렀다. 새삼 옛 선생님들과 이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강사에 존경심이 생겼다. (이 프로그램의 강사 역시 경력 있는 개발자로 기꺼이 개인 시간을 들여 재능기부를 하고 있다) 나는 1시간 남짓한 시간을 5-6명 정도의 소그룹 학생들을 상대하는 것만으로도 허덕였다. 내가 지금 잘하고 있는 건가 헤매는 와중에 멘토 세션이 끝났다. 한숨을 돌리고 나니 깨진 노트북 화면이 다시 눈에 띄었다. 방 밖으로 부산하게 외출 준비를 하며 내가 나오기만 기다리고 있을 일행 소리도 그제야 들려왔다. 해냈다, 드디어 끝났어. And all it took was a broken laptop and a complete mental breakdown. (비록 해내는 데 멀쩡했던 노트북 한 대와 내 정신 모두 날려버리고 말았지만.)
이후의 여행은 더할 나위 없이 즐거웠고 깨 먹은 노트북은 다행히도(?) 회사 컴퓨터라 휴가에서 돌아오자마자 새 컴퓨터로 교체받았다. 새 컴퓨터로 글을 쓰고 있는 지금에야 있었던 일을 되돌아본다. 잘못될 수 있는 일들은 모두 획기적인 방법으로 잘못 돌아갔구나. 난장판 속에서도 얻은 배움은 많았다. 당황했을 때 어떤 사고를 치는지 다시 한번 알게 되었고, 그렇다고 그냥 망하란 법도 없더라. 더 큰 문제는 이 정도의 숙련도와 개발 경력이면 훨씬 기초적인 내용을 전달하는 데 큰 무리가 없으리라 안일하게 착각했던 점이었다. 인내심으로 친절히 개념을 이해시킴과 동시에 응원을 아끼지 않는 법은 남은 11주간 반드시 내 것으로 만들고 싶다. 서툴지만 의욕적인 학생들을 만나는 것이 즐거웠다. 내가 이래서 학생들과 교류하기를 즐겼었지, 깨달았다. 다음 주엔 (제발) 멘토 버디가 참가해주기만 한다면 좀 더 집중적으로 한 명 한 명과 대화해볼 수 있지 않을까? 낯선 숙소가 아니라 홈오피스에서 미팅을 해도 될 테니 좀 더 안정적일 테고. 또다시 슬그머니 희망이 싹튼다. 나는 처참히 깨질지 모르는 기대감을 품는 어리석은 실수를 반복하고 있을까. 이런 기대감이라도 없다면 기꺼이 시간을 내서 멘토링을 계속하는 게 가능하기나 할까. 다음 주면 알게 되겠지 뭐.
Light at Sensorio. 여행 첫날 들렀던 라이트 설치 전시. 이 때만 해도 막연하게 잘 되겠거니 했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