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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몽상 Aug 12. 2024

회사를 떠나도 일은 끝나지 않는다.

ep6_일을 떠나 또 다른 일을 찾는다.

평소 하루의 시작은 회사를 향해 있었다. 아침에 눈을 뜨면 출근시간에 늦지 않기 위해 서둘러서 준비를 하고 아직 잠자리에 누워있는 아이들에게 인사를 하고 집을 나섰다. 빵 한 조각을 대충 입에 물고 수많은 사람들과 함께 지하철에 올라타 정신없이 회사 근처까지 옮겨지면 이미 어느 정도 적셔진 스펀지가 되어 회사에 도착하고는 했다.


육아휴직을 시작한 이후 하루의 시작은 아이들을 향할 수 있었다. 아이들과 아침인사를 하고 함께 아침을 시작할 수 있었다. 물론 이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 아침에 눈을 뜨면 등교시간에 늦지 않기 위해 서둘러서 준비를 시키고 빵 한 조각이라도 먹고 가라며 챙겨서 보내고 아내와 아이들이 떠난 식탁 위를 정리하다 보면 역시나 젖은 스펀지가 되어버렸다.


그렇게 아이들이 등교와 등원을 하고 나면 얼마간의 시간을 혼자 보낼 수 있었는데, 처음에는 그 시간마저도 두고 온 회사일을 계속 붙잡고 있었다. 습관처럼 회사 인트라넷에 접속했고, 간혹 회사의 연락을 받았고, 해결하지 못했던 업무들이 머릿속에서 계속 생각났고, 업무를 넘겨주고 온 후임자를 걱정하기도 했다. 내가 이 정도로 조직을 애정하고 있었던 건지, 10여 년간 학습되고 훈련된 결과인지 모를 이상한 상태가 이어졌다.


하지만 이미 일에 지쳐버린 상태의 나에게 필요한 것은 의도적이고 적극적인 거리 두기라는 것을 너무 잘 알고 있었다. 더 이상 캘린더로 주간일정을 확인하지 않아도 되고, 밀린 업무들은 더 이상 내 것이 아니며, 각종 회의자료와 업무 논의에 참여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스스로를 다독이며 일에서 벗어나기 위해 말 그대로 애를 썼다.


캘린더의 업무일정 구독을 취소하고 인트라넷 바로가기를 삭제하고 업무용 계정을 로그아웃시켰다. 일보다는 나 스스로에 대한 생각을 하려고 애쓰고 즐거운 경험을 위한 시도를 계속했다.


나는 누구인가? 무엇이 나를 행복하게 하는가? 나의 정체성과 나의 행복에 대해 집중적으로 탐구하고, 가족을 생각하며 함께 할 수 있는 경험들을 계획해 보기도 했다.

행복에 관한 책을 읽고 인사이트를 얻을 수 있는 강연을 찾아 듣고, 좋아하던 영화를 보고, 게임을 즐기거나 지인들을 만나 맛있는 것을 먹기도 했다.

하루하루를 정리하는 일기와 가끔 떠오르는 상념들을 글로 적어보기도 하면서 모처럼 나에게 주어진 시간을 즐기기 위해 노력했다.

물론 그 명확한 답을 찾을 수는 없었지만 그 시간들은 스스로를 회복하고 다시 충전하는데 제법 의미 있는 시간들이었다. 그렇게 육아휴직 이후의 시간들은 가족과 나를 위해 충분히 쉬고 일상을 즐기며 가족들과 경험을 쌓는 시간으로 사용하며 조금씩 지친 상태를 회복할 수 있었다.



그런데 그렇게 휴직기간이 한 달 정도 흐르고 출근하지 않는 하루가 익숙해질 무렵, 문득 낯선 감정들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쉬는 것이 마냥 편하지 않고 무언가 알 수 없는 두려움과 불편한 감정이 계속되었다. 그것은 쉬는 시간들 가운데에서도 확실하게 느껴지는 공허함과 무기력함이었다.


나름의 휴식기를 가진 이후부터는 그냥 쉬면서 보내는 하루가 오히려 불편해지고 생산적인 일을 향한 긴장감과 몰입이 필요하다고 느꼈다.


그렇게 일에서 한계를 느끼고 일이 힘들어 휴직을 선택했지만 다시 일이 필요해지는 과정을 겪으며, 일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된다.


일은 우리의 삶에 얼마나 중요하고 어느 정도 영향을 주는 것일까? 일은 나를 드러내고 나의 정체성을 나타낼 수 있는 영역 중의 하나인가? 일을 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고, 또 하지 않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그렇게 일에 대한 생각을 이어가며, 온전한 휴식을 위해 선택한 시간에도 일이 필요하다는 것을 인정하고 몰입할 수 있는 무언가 생산적인 ‘일의 영역'을 찾기 시작했다.

물론 그것이 꼭 회사의 업무일 필요는 없었다.


그렇게 회사의 일을 떠나 ‘나의 일'을 찾고 싶다는 생각에 가장 먼저 시작한 것은 글을 쓰는 일이었다. 블로그와 브런치에 기록을 남기며 글을 쓰기 시작했다.



육아휴직을 시작하면서 계획했던 것들은 많은 부분 무산되었고 생각보다 빠르게 다가온 복직일정으로 다시 회사에 출근하는 일상으로 돌아갔지만, 휴직기간 동안 시작했던 나의 글쓰기는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 주기적으로 콘텐츠를 생산해 내고 있지 못하고 뒤죽박죽이지만, 여전히 글을 쓰는 것은 나에게 의미 있는 여정이고 계속 이어갈 만한 생산적인 일의 영역이다.


그렇게 나는 일을 떠나 또 다른 일을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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