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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순복 Nov 17. 2023

우연한 걸음

우연한 걸음 

아침, 점심, 저녁, 밤, 새벽.

5개의 시간들 중에서 나는 어두운 시간을 제일 사랑한다. 내가 사랑하는 시간들은 내가 그동안 40년을 버티게 만들었던 힘을 주었는데, 이번엔 의외로 밝은 시간이 나에게 우연한 기회를 주었다.


길을 걷다보면 사랑방 신문을 지나치게 된다. 지역의 다양한 이야기와 무엇보다 직업과 나는 살 수 없는 매매가의 집들과 그보다 저렴한 전세나 월세의 집들이 대다수로 나온 신문인데, 지역 신문이다 보니 광고가 꽤 많이 실린다. 


특히 직업 학교 광고는 특징이다.


나는 혼자서 하는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문득들었다. 내내 함께 하는 일을 했던 나는 홀로 하는 일에 대한 동경이나 원트 보다는 현재의 내 상황을 진정 시킬 수 있는 건 무조건 홀로 할 수 있는 일이어야 한다는 생각은 모두 벨 때문이었다.


여기저기서 울리던 벨 들 사이로 묻히던 나의 목소리까지... 잠을 잘 때도 환청처럼 들리던 소리들 사이에서 나는 지쳤던게 확실했다. 혼자서 하는 일이면 뭐든 괜찮다는 생각에, 나는 신문을 집어 들고 당당하게 전활 걸었다.


20대의 나라면 전혀 하지 않았을 일이었다. 30대의 나라서 어쩌면 가능한 일일지도 모르는 일, 바로 타일학원이었다. 


학원 광고는 어필을 굉장히 잘하고 있었다. 굵은 글자체, 멋진 광고 문구 이런 거 보다는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이라는 거에, 단독 수입을 많이 벌 수 있다는 것에 꽂혔다. 혼자서 일을 하는 데 돈도 많이 번다? 군침이 싸악 도는 문구이자 멘트였다. 나는 심장이 뛰었다. 달리지도 않는 데, 전화를 건 것 만으로.


하고 있던 동남아 요릿집을 그만두고 바로 나는 시장 근처에 위치하고 있다는, 학원 본점과는 거리가 먼 내가 살고 있는 곳과도 전혀 반대편에 위치한 타일 학원으로 향했다. 그런데 맙소사..! 타일 학원의 경쟁률은 엄청났다. 나는 경쟁을 무지하게 싫어하는 데, 이곳에서도 경쟁이 작용한다는 건 선착순을 말하는 것임을 그때 깨달았다.


타일 학원 붐이 불고 있다는 상담 선생님의 말에 한번 좌절, 빠르면 한달, 늦으면 2달 후에 자리가 나올 수도 있을 지 모른다는 말에 두번째 좌절, 마지막으로 기다려야 할 거면 미장을 먼저 배워서 등록을 해두는 게 어떻겠냐는 말에 좌절...


미장이라는 게 뭔지도 모르던 나는 그게 시멘트 바르는 일 이라는 사실을 그제야 알았다. 게다가 미장반에 여성은 나 하나. 우리 아빠가 47년생인데, 아빠랑 나이가 비슷한 어르신들 사이에서 30대의 젊은 여자가 미장을 한다? 나는 태어나서 한번도 상상해본 적 없는 일 이었다. 그리고 내가 그 말에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네. 할게요.> 라고 대답할 수 있으리라는 것도.


미장반에 들어가게 된 것은 타일반으로 가기 위한 초석 이었지만 내가 망설이지 않았던 것은 차가운 시멘트 냄새 때문에 약간 정신이 나가 있었기 때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학원에 여자는 상담 선생님, 타일반에 이모 2명과 나를 포함해서 총 4명. 남초도 이런 남초가 없었고, 거기에 미장반도 하나, 타일반도 하나인 그곳에서 좁고 좁은 미장반은 여자는 달랑 나 혼자.


우주에서 외따로 떨어진 곳에 혼자 였다. 


그런데 웃음이 났다.


"어쨌든 혼자잖아. 나는 함께 있는 삶이 싫어서 여기에 온 건데.. 시작부터 혼자야..."


어쩌면 우주의 신호가, 나는 믿지도 않던 세상의 모든 신들이 나에게 계시를 보낸 건지도 모른다. 네가 그토록 혼자 있고 싶어 했으니, 어디 한번 혼자 있어봐라. 혼자 있으면서 시멘트를 묻히고, 먼지를 마시고, 이름도 모를 판때기를 들고 벽에 시멘트를 비비면 혼자 있는 시간이 과연 네가 그토록 원하는 시간이 될런지 말이다.


아마 나의 혼자 있고 싶다는 바람을 듣고 우주와 신은 괘씸해서 이런 시련을 나에게 준다고 의기양양 했을 거다. 그러나 그들의 의기양양함은 그리 오래 가지 않았을 거다. 나는 당당하게 다음날 부터 나오라는 80먹은 미장 반 선생님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준비물을 적어갔다.


학원에 준비 된 물건들 이외에 내가 개인으로 준비해야 할 것들이 있었는데, 그걸 학원 근처 용품점에서 사서 8시50분까지 오면 된다는 의심이 가득한 눈빛을 보내는 선생님을 보고 고개를 끄덕인 것이었다.


뭐, 신들이 내가 뭐라고 괘씸해 했을까? 라는 생각을 지금 하자면, 내 스스로의 싸움 이라고 말하고 싶다.


그럼, 나는 진짜로 갔을까? 아니면 여기서 포기했을까? 갔으니 내가 이글을 쓰고 있을테다.


to be conti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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