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코렐리 바이올린 소나타 Opus 5. 6번 Allegro를 리코더로 배우고 있다. 레슨을 받으며 필기도 하고 주의사항도 써 놓고, 숨 쉴 곳도 체크를 해 놓는데 그 종이를 잃어버렸다. 할 수 없이 새로 뽑아서 들고 가서 선생님께 이실직고를 했다.
"선생님, 저 오늘 악보를 새로 뽑아 왔어요. 숨을 어디서 쉬어야 할 지 모르겠는데 틀려도 이해해 주세요."
종이를 잃어버리니 마치 네비게이션을 잃어버린 자동차 운전자꼴이 되었다.
"괜찮아요. 그냥 한 번 불어 보세요. 하다보면 생각이 날 꺼에요."
친절하신 우리 선생님은 나보고 틀려도 좋으니 걱정말고 시작해 보라고 하신다. 그렇지만 내 마음은 불안하다. 보통 느린 곡은 숨 쉬는 구간이 딱 명확하다. 작곡가가 쉼표를 만들어 놓는 곳에서 숨을 쉬어야 하는데 이 곡은 바이올린 곡이 아닌가.
와다다다 다다다다. 중간에 숨이 끊기면 어쩌지 싶어서 일단 악셀부터 밟고 본다. 천천히 불면 숨이 더 빨리 소진되기에 평소에는 시도하지 않았던 내생애 최고 속도로 후다닥 불어버렸다. 물론 손도 꼬이고 박자도 안 맞고 난리 부르스다. 그런데 선생님은 이 와중에서도 칭찬할 거리를 찾아 내신다. 크으~ 진정한 스승님이시다. 이건 뭐 러키비키라고 해야하나? 나 자신도 틀리지 않고 정확히 해 보려고 알레그로를 아다지오처럼 연주했었는데 숨 표시를 안 하는 바람에 엄청 빨리 불어 봤다.
"오, 이 속도도 괜찮은데요. 충분이 이렇게 하실 수 있는 거였어요. 부라보! 이것보다 오히려 더 천천히하면 손가락이 꼬이실 것 같은데요?"
이제는 악보에 숨 표시를 했다. 브이자는 크게 숨을 쉬는 곳, 작은 숨표는 그 때 그 때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곳이다. 이 과정을 하고 나니 여행자 보험을 들고 해외여행을 떠나는 여행객의 마음이 된다. 얼마나 편안한지 모른다. 내친김에 선생님과 함께 같은 곡을 동시에 불어봤다. 이렇게 해 보니 음정이 틀리는 구간, 박자가 안 맞는 구간을 더 정확하게 찾아 낼 수 있었다. 이런 행운이!!
"구름을 타고 가는 청룡열차를 상상해 보세요. 숨을 들이쉴 때 최대로 숨을 잘 들이키면 마치 후름라이드를 타듯 매끄럽게 연주가 될 꺼에요."
숨을 잘 쉬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몸소 깨닫게 된다. 연주가 잘 되면 얼마나 기분이 좋은지 모른다. 선생님이 잘한다 잘한다 칭찬해 주시면 나도 모르게 입꼬리가 삐죽삐죽 올라간다. 이 맛에 악기 레슨을 받나보다.
자꾸 틀리는 구간은 손에 힘이 너무 많이 들어가서 그러는 것이기 때문에 천천히 부분 연습을 하면서 힘 빼는 연습을 하며 릴랙스 시켰다. 15마디의 반음계를 할 때가 특히 잘 안되서 엄지 손에을 많이 움직이지 않도록 반복 연습을 했다. (악보 6마디를 할 때 '도미레미'를 '라도시도'라고 음정이 틀리는 것 조심하기. 10마디에 파샾 아니고 파 네츄럴 기억하기)
마지막엔 지난 주에 이어 바흐의 더블 바이올린 곡을 선생님과 듀엣으로 불었는데 너무 웃기는 일이 일어났다. 악보 전체 두페이지 중 하나를 내 파트가 아니라 선생님 파트로 준비한거다. 이걸 연주 중에 알았다. 아뿔사. 반 정도 불었고 오른쪽으로 시선을 딱 돌렸는데 글쎄, 내 파트가 아니라 선생님 파트였다. 에라 모르겠다 기억 안나도 어쩔 수 없지. 중간에 끊기는 뭐해서 그냥 불었는데 세상에나 끝까지 연주를 마쳤다. 뒤늦게 내가 악보 없이 연주한 걸 알아채신 스승님, 암보 잘했다며 폭풍 칭찬을 아끼지 않으셨다. 크으~의도치 않은 실수에 잠재된 역량이 나와버린건가. 나도 모르던 내 재능을 발견할 수 있어서 여러모로 재미있었다. 뜻밖의 재능을 발견한 날, 이런게 럭키비키지! 기승전 리코더 만만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