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핑계
이건 순전히 내 경우이다.
이제는 아끼며 살려고 소비를 줄이다 보면
결국 최소한으로 써지는 돈은 식비이다.
그걸 깨닫고 나면 많이 허탈하다.
근데 막상 모이는 돈은 없다.
설사 열심히 모아돈 돈도
귀신같이 만기땐 쓸데가 생긴다.
하지만 조금 무리가 되더라도
문화예술에 돈을 쓰게 되면,
그 돈으로 경험하게 되는 시간은
나에게 영원히 남아있게 된다.
서울시립미술관에서 본
잔잔하지만 강렬하고
애잔함이 느껴지는
에드워드호퍼의 그림들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하며 오롯이
에너지를 발산하고 주고받게 되는
홍대클럽에서의 이승환 공연
제주 책방소리소문에서 읽다가
왈칵 쏟아지는 눈물 때문에
급히 구매한 루리작가의 메피스토
세 시간임에도 처음부터 끝까지
숨 막히게 진행되어 오피가 겪은 것처럼
영화로 인해 감각의 핵폭발을
경험하게 한 놀란감독의 오펜하이머
이 모두가 나를 만들고 살아있게 하는 것들이다.
… 이상 오늘 새벽 고민 끝에
비싼 책 몇 권을 질러놓고
찔리고 있는 한 사람의 핑계였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