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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술사가 나리 Sep 06. 2024

투명한 시선 너머의 아름다움

일러스트레이터 다미

    하얀 백지 위에 살포시 올라앉아있는 다미 작가의 그림들에는 하나같이 사랑스러움이 묻어 있다. 지나치리만큼 맑고, 예쁘다. 대상을 향한 그의 따뜻한 시선이 오롯이 담겨 있어서일까. 각각 자신의 아름다움의 전성기를 뽐내려는 듯 보이는 작가의 객체들은 다미 작가의 그림 속에서 그들이 세상에 나타난 이후로 가장 아름다운 시절을 보내고 있는 듯하다.


    그가 그림 공부를 제대로 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놀라울 정도로 작가는 대상의 특징과 아름다움을 꼭 집어 찾아내는 능력을 갖고 있다. 어린 시절부터 그림을 잘 그려서 대회에 나가면 상을 타고, 훗날 그림 그리는 사람이 되고 싶었으나 미대 대신에 이과 대학에 가게 되었다. 다미 작가가 화가가 되기를 바라셨던 아버지의 소원은 작가가 다 큰 어른이 된 이후인 최근에야 이루어졌다. 2020년 봄부터 본격적으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는 그는, 그의 그림이 투병 중이셨던 아버지를 향한 응원의 메시지였다고 말해 주었다.


    그림을 잘 그리는 많은 작가들처럼 그 역시 부모님으로부터 예술성과 손재주를 물려받았다. 아버지는 명필가이셨고, 외삼촌은 수묵화를 그리셨다. 수묵화의 여백과 같은 비어있는 공간을 사랑하는 작가의 그림이 살짝 겹쳐 보이는 대목이기도 하다.



<Esperanza>, 2022, 아이패드

    

    다미 작가의 2022년도 아이패드 그림 <Esperanza> (2022)는 겨울철 집 안에서 편안하게 뒹굴거리며 무심코 집어 먹는 과일, 귤에서 영감을 받은 작품이다. 다미 작가의 가족들이 좋아하는 과일이 귤이어서 겨울철에는 집에 항상 귤이 있다고 했다. 어느 날, 손에 쥔 작은 귤을 보면서 잠시 어린 시절로 돌아간 듯한 느낌과 함께 편안한 행복감을 맛보게 되었다. 순수하고 밝은 귤의 오렌지색 에너지로 가득 찬, 희망을 느끼게 해주는 인물화를 그리고 싶다는 생각 속에 그리게 된 그림이다. 작고 예쁘고 환한 오렌지색  '귤'이 사람으로 태어난다면 이런 모습이지 않을까. 향기롭고 싱그러운 귤의 이미지의 의인화인 셈이다. 작품의 제목인 '에스페란자 Esperanza'는 스페인어로 '희망'을 뜻하는 말이기도 하다. 만화 주인공처럼 보이는 작가의 그림은 그 아름다움으로 인해 보는 이들의 감탄을 자아낸다. 귤빛 홍조를 띤 사랑스러운 귤 소녀의 모습은 보고 또 보아도 질리지 않는 상큼함을 지니고 있다.




<Cafe Society>, 2022, 아이패드

    

    다미 작가는 강렬하고 밝고 생생한 색채의 그림들로 유명한 고흐와 클림트를 어릴 때부터 좋아하는 화가로 꼽았다. 하지만, 그의 그림들은 고흐와 클림트의 것들과 달리, 우리에게 여러 겹의 필터를 거쳐 톤 다운된 차분하고 정갈한 이미지로 다가온다. 한 번 보고 나면, 계속 반복해서 보게 하는 마법을 지닌 그림들이다. 정확한 테투리로 인물을 배경과 구분 짓고, 섬세하고 세련된 터치로 대상을 묘사한 다미 작가의 그림을 볼 때, 우리는 우리도 모르는 사이 두 눈을 크게 뜨고 그림 앞으로 다가서게 된다. 


    2022년 4월에 그린 <Cafe Society>는 '카페 소사이어티'라는 영화의 스틸컷을 아이패드로 그린 그림이다. 다미 작가는 평소에 영화, 연극, 뮤지컬, 음악에 관심이 많으며, 그렇기에 이들 장르의 작품 속 한 장면이 그의 그림의 소재가 되는 일이 많다. 좋아하는 작품 속 주인공을 그림으로 그려내는 것 또한 그의 주된 작업이기도 하다. 

     '카페 소사이어티'는 브루노 메이저의 노래 'Regent's Park'와 매우 잘 어울리는 영화이기도 하다. 그는 2022년 연인시리즈 그림들을 계속 그렸고, 이 그림은 그중에서도 작가가 제일 좋아하는 그림 중 하나이다. 

파란 하늘과 푸른 바다가 화면의 반을, 바스락거리는 보석이 깔린 듯한 모래사장이 그 아래 화면의 반을 차지하고 있다. 이들을 배경으로 두 연인이 키스를 나누고 있다. 이들의 모습은 그림을 보는 이들에게 열정적이고 아름다운 사랑의 에너지를 충분히 전달해 준다. 심플하고 간결하게 표현된 작가의 그림 속 이미지들은 그 표현방식과는 달리 많은 이야기들을 들려주고 있다. 또 보는 이들의 궁금증을 자아내게 한다.


    


<진>, 2021, 종이에 색연필

    

    2021년에 그린 색연필 인물화 <진> 은 유명 아이돌 BTS 멤버 중 한 명인 '진 Jean'을 그린 작품이다. 다미 작가의 인물화 중 제일 많은 여백을 가지고 있는 그림이다. 그러나, 단순히 비어있는 공간으로서의 여백이 아니라, 역으로 어떤 에너지로 가득 채워진 공간이라고 느껴지는 그림이다. 수묵화의 여백의 미와 같은 아름다움을 한껏 느낄 수 있는 동시에, 인물의 아우라로 공간이 확장되는 듯한 묘한 체험을 하게 해주는 그림이기도 하다.  전 세계의 많은 BTS 팬들이 많이 좋아해 준 그림이었다고 작가는 말했다. 


    대상에 대한 선입견이나 편견 없이 투명한 시선으로 대상이 가진 아름다움을 찾아내는 다미 작가의 그림들은 나에게 무척이나 매력적이고 신선하다. 그의 긍정적이고 밝은 주체로서의 시선은 곧이어 아름다움의 결정체로서 나타나게 되는 객체들의 이미지에 투영된다. 물론 어떤 대상이든 아름다움만을 가지고 있을 수는 없다. 하지만 그 아름다움을 극대화시켜서 그림 속에 담아내는 것은 작가의 자유이고 의지일 것이다. 


    '다미'라는 작가의 이름이 '많은 아름다움'을 의미하는지, '아름다움을 담아내는'이란 뜻인지 나는 모른다. 하지만, 둘 중 어떤 것이라 해도 상관없이 다미 작가의 그림들은 그의 이름에 딱 맞는 결과물로서 ', 아름답고', '사랑스럽게' 다시 태어나고 있음은 분명하다. 다음엔 또 어떤 사람들이, 어떤 동물들이 다미 작가의 아름답고 투명한 시선과 손을 거쳐서 재탄생될지 기대해 보는 것은 이제 자연스럽고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 되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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