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나미’는 프랑스어
내가 어렸을 때는 많은 사람들이 하얀 플라스틱 막대 끝에 검은색 꼭지 버튼이 달린 모나미 볼펜을 사용했다. 요즘 표현을 빌리자면 '국민 볼펜'이었다. ‘모나미’라는 브랜드 이름 자체가 ‘볼펜’의 다른 말처럼 인식되기도 했다. 모나미 볼펜은 1963년에 처음 출시되어 2025년 현재까지 생산되고 있으니 이 국민 볼펜의 긴 역사가 새삼 놀랍기도 하다.
사실 '모나미'는 프랑스어이다. 프랑스어를 전혀 몰랐던 때에, 나는 '모나미'가 프랑스어라는 사실도, 그 의미도 알 수가 없었다. 나뿐 아니라 꽤 많은 수의 사람들이 '모나미'가 '볼펜'이란 뜻일 거라 추측하기도 했을 것이다.
'모나미'는 프랑스어 '몽 아미 Mon ami'를 소리 나는 대로 한국어로 옮겨 적은 것이다. 프랑스어는 발음을 할 때 연음법칙이 자주 적용되는데, '몽 아미 Mon ami'라고 쓰고, '모나미 Monami'라고 발음한다.
그럼 먼저 '몽 아미'에서 '몽 Mon'은 과연 무엇일까?
프랑스어에서 '몽 Mon'은 영어의 '마이 My'에 해당되는 소유격을 표현하는 단어로, '나의'라는 의미를 지닌다.
한국어와 영어에는 없는 것이 프랑스어에는 있다. 그것은 바로 단어에 남성, 여성이라는 성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프랑스어에서는 어떤 단어는 남성이고, 어떤 단어는 여성이다. 이유는 정확히 모른다. 오래전부터 프랑스인들이 그렇게 사용해 왔고 그렇게 굳어졌다.
영어에서는 '누구의 무엇'을 표현할 때, '누구의'라는 소유격 부분은 한 번 정해지면 뒤의 '무엇'과 상관없이 모양이 변하지 않는다. '나의 가방'은 '마이 백 My bag'이고, '나의 책'은 '마이 북 My book'이다. 뒤에 따라오는 '무엇'이 무엇이든 간에 '나의 My'의 것이면 끝까지 '마이 My'라고 쓴다.
영어에서 '가방 Bag'과 '책 Book'은 남성도 여성도 아닌 중성이기 때문이다.
또한 복수의 무엇이 뒤에 붙을지라도 '나의 가방들 My bags', '나의 책들 My books', 이런 식으로 '마이 My'의 모양은 결코 변하지 않는다.
이에 반해, 프랑스어에서 '누구의'에 해당되는 소유격 단어들은 계속 시시때때로, 그때그때 변신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트랜스포머처럼 때에 따라 변신하는 프랑스어 소유격 단어들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 물론 처음에는 이해하려 하지 말고 외우는 게 답이다. 불문과를 졸업한 나도 프랑스어를 처음 배울 때 입버릇처럼 "몽 마 메... 똥 따 떼... 쏭 싸 쎄..."를 중얼중얼거리곤 했다.
프랑스어의 소유격은 뒤에 따라오는 물건이나 생물이 남성이냐, 여성이냐에 따라 형태가 달라진다. 예를 들어, 프랑스어로 가방은 ‘싹 sac'이라고 하는데, 이 ’ 싹‘이라는 단어는 남성이다. '나의 가방’이라고 말하고 싶으면 ' 몽 싹 Mon sac’이라고 하면 된다. 남성인 단어 앞의 소유격 형태는 '몽 Mon' 이기 때문이다.
프랑스어로 사과는 '뽐므 pomme' 다. 사과는 여성이므로 '뽐므 pomme' 앞에는 '마 Ma'라는 소유격이 붙어서 '마 뽐므 Ma pomme'가 된다.
'나의 책들'과 같은 복수의 경우는 어떻게 될까? 프랑스어로 책은 '리브흐 livre'라고 말한다. '나의 책들'은 '메 리브흐 Mes livres'가 된다.
이런 사실들을 알고 나면 '몽 아미 Mon ami'의 '몽 Mon'이 '나의'라는 뜻임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그럼 이제, '아미 ami'에 대해 알아볼 차례가 왔다. '몽 아미'의 '아미'는 아이돌 그룹 BTS 팬클럽 이름인 아미가 아니고 프랑스어로 '친구'라는 뜻을 가진 단어다. 남성인 친구는 '아미 ami', 여성인 친구는 '아미 amie'가 된다. 그러므로, '모나미' 볼펜의 '몽 아미'는 '나의 친구', '내 친구'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어린 시절부터 즐겨 써 온 볼펜 회사의 이름이 '내 친구' 였다고 생각하니 뭔가 귀여운 느낌도 들고, 정겨운 생각도 든다. 미국에 살고 있는 요즘은 하얀색 막대에 까만 꼭지 버튼이 달린 모나미 볼펜을 만나기 쉽지 않지만, 손글씨 쓰기를 좋아하는 내게 여전히 볼펜과 연필은 항상 다정하고 가까이하고 싶은 친구임이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