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슈히 Jul 08. 2024

민족의 영산(靈山), 백두산에 가다(15)

양꼬치와 전신 마사지

  가이드는 유쾌해 보였다. 분명, 다랑과 귀남 오빠가 과소비를 한 덕분일 것이다. 관광객들의 선택 관광 요금과 쇼핑 비용은 고스란히 가이드의 수익과 직결된다. 가이드가 내게 슬쩍 다가와 귀띔했다.

  "이번 여행에서 백두산 천지를 못 봤잖아요. 다음에라도 또 관광하러 오게 되면, 그땐 자유 여행으로 와요. 서파와 북파 입장료는 각각 이틀씩 유효하거든요. 이왕이면 평일에 와서 여유롭게 4박 5일로."

  좋은 정보였다. 다음엔 한인 민박을 통해 올까 생각하던 참이었다. 중국의 다른 지역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연길은 인터넷 사용이 불편했다. 메신저도 아예 먹통이었다. 인터넷만 잘 되면 자유 여행이 가능하지만, 그렇지 않다면 어려움이 많다.

  전세 버스를 타고 한참 이동했다. 어느덧, 해가 지고 어둑어둑해졌다. 차창 밖으로 보이는 풍경을 보니, 한국어 간판이 자주 보였다. 조선족들이 한국인 관광객들 상대로 영업하는 곳인가 싶었다. 양꼬치를 먹으러 식당에 갔다.

  양꼬치는 한국에서도 몇 번 먹은 적이 있는데, 별로 좋은 기억은 아니었다. 가격이 비쌌고, 비린내가 좀 났기 때문이다. 가이드가 다가와 설명했다.

  "사람도, 동물도 마찬가지로 나이 들면 몸에서 냄새가 나죠. 어쩔 수 없어요. 고기에서 냄새가 나는 이유는 늙은 짐승을 도축했기 때문이에요. 하지만, 여기서 제공되는 고기들은 모두 어린양이에요. 그래서, 비린내가 전혀 없습니다."

  과연, 그의 말이 옳았다. 냄새가 전혀 나지 않았다. 숯불에 익힌 따끈한 고기와 신선한 채소를 곁들여 식사했다. 맛있었다. 귀국 후 냉동 양꼬치를 조리해 먹은 적이 있는데, 중국에서 먹은 양꼬치와는 전혀 비교할 수 없었다. 양꼬치를 포식한 후, 식후 냉면도 먹었다. 양이 너무 적어서, 두 그릇이나 주문했다.

  생일 축하 노래가 들렸다. 생일자가 두 명인 모양이었다. 한 명은 전혀 모르는 사람이었고, 다른 한 명은 우리 일행 중 한 명이었다. 9명이 함께 온 부부 동반 가족 중 한 사람이었다.

  "형부, 생신 축하드려요!"

희희낙락 떠들썩한 분위기였다. 원래 술을 즐기지 않기 때문에, 무심히 있었다. 그런데, 귀남 오빠가 제안했다.

  "너희 둘이 어르신들 앞에서 노래 한곡 불러봐. 내가 나중에 밥 살게."

밥 사준다는 말에 솔깃했다. 다랑과 합을 한 번 맞췄는데, 그는 가사를 잘 못 외우는 편이다. <당신이 좋아> 1, 2절 가사를 자꾸 헷갈려했다. 잘 못 불러도 되는 자리이니, 별 부담 없이 불렀다. 어르신들이 덩실덩실 춤추며 무대에 난입했다. 귀남 오빠가 공연 현장을 영상으로 촬영했다. 나중에 확인하니, 한 마디로 아수라장이었다.

  30대 젊은 남녀가 노래하자, 어르신들이 싱글벙글했다. 귀남 오빠도, 다랑도 다른 자리로 다가가 어르신들에게 술을 따랐다. 왁자지껄 웃음꽃이 피었다. 술값은 약 5만 원이었고, 식대를 제외한 술값은 별도 결제라고 했다. 원래 술을 안 마시고, 그때도 역시 입에 아예 대지도 않았으니 나와는 무관한 일이었다. 그런데, 한 어르신이 흔쾌히 지갑을 열었다. 그의 표정은 유쾌했다. 기분 좋은 훈훈한 마무리였다. 

  연길에서의 마지막 날 마지막 일정은 전신 마사지였다. 평소에도 주기적으로 꼬박꼬박 안마를 받고 있어서, 굳이 여기서 마사지를 받을 필요가 없었다. 하지만, 남들 다 하는 선택 관광이기에 나만 안 할 순 없어서 그냥 동참했다.

  가이드가 남녀 분리해서 방으로 들여보냈다. 그의 개인적인 의견에 의하면, 남녀가 함께 있으면 서로 싸운다는 거였다.

  "손님들이 이성 안마사에게 안마를 받잖아요. 여자는 모르겠지만, 남자는 동성에게 안마받는 걸 굉장히 싫어해요. 저만 해도, 동성인 남자가 제 몸 만지는 건 매우 싫습니다. 남자는 여자에게, 여자는 남자에게 안마를 받는데, 그걸 애인들이 보면 싫어하더라고요. 남자가 다른 여자에게 안마받는 걸, 여자들은 용납 못 해요. 그래서, 일부러 안마를 따로 받게끔 했습니다."

  '같이 받아도 무관한데, 왜 떨어뜨린담?'

  이래도, 저래도 아무 문제없으니 그저 시키는 대로 따랐다. 예전에, 다랑이 이렇게 말했다.

  "다른 남자가 누나 만지는 거, 싫어. 오히려 누나는, 내가 여자한테 안마받아도 괜찮아할걸?"

  여자 손님들이 모인 방으로 들어갔다. 화장실에 가림막도 전혀 없고, 문이 투명해서 내부가 훤히 들여다 보였다. 민망했다. 아마, 과거에 모텔이었나 보다. 양치를 마치고, 소변을 본 후 안마복으로 갈아입었다. 침대는 총 네 대였고, 어르신들 세 명이 하나씩 자리 잡았다. 남은 빈 침대 위에 몸을 뉘었다. 잠시 후, 남자 안마사들이 들어왔고, 각자 한 명씩 맡았다.

  내 담당은 20대로 보이는 젊은 남자였다. 그는 한국어를 약간 할 줄 알아서, '아파요?', '괜찮아요?' 등의 말을 건넸다. 그러나, 그의 솜씨는 전혀 시원하지 않고, 아프기만 했다. 고통으로 가득 찬 긴 시간이었다. 실눈을 떠 옆자리를 살피니, 다른 손님들은 모두 잠든 듯 보였다. 40대로 보이는 머리숱이 적은 남자가 안마 중이었는데, 설렁설렁하는 것 같았다. 안마사들이 안마를 마치고 모두 방을 나간 뒤, 아니나 다를까 어르신이 이렇게 말했다.  

  "자극이 너무 약해서, 잠들었어. 안마가 아니라, 솜방망이던데!"

  안마가 거의 끝나갈 무렵, 불미스러운 사건이 발생했다. 안마사가 침대에 올라와 무릎을 굽혀 내 어깨를 꺾은 채 주무르는데, 내 손이 안마사의 하체에 닿았다. 그의 작고 말랑한 신체 특정 부위가 만져졌다. 멈칫했다.

  '응? 이건 불편한데......'

어떻게 해서든지 어깨를 틀어 손을 빼고 싶었으나, 안마사의 힘에 눌려 불가능했다.

  '이럴 때 다랑이 곁에 있어야 하는데...... 싫은 티도 못 내고, 이게 뭐람!'

불쾌했지만, 문제를 크게 만들고 싶지 않아서 관계자에게 아무런 언급도 하지 않았다. 다랑에게 말하자, 그가 대답했다.

  "안마사한테, 그러지 말라고 그냥 말하면 해결되는 거 아니야?"

  "어휴, 여러 번 손을 옮기려고 노력했는데 꿈쩍도 안 하던걸! 안마사가 일부러 그러는 게 뻔한데, 굳이 뭐 하러 그걸 말해? 네가 옆에 있었으면, 안마사가 감히 나한테 그런 짓을 했을까?" (계속)



매거진의 이전글 민족의 영산(靈山), 백두산에 가다(14)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