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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이서 떠난 하노이(2)

숙소로 가는 길

by 슈히

비행기에서 내려서, 셔틀버스를 타고 공항에 도착했다. 수하물을 기다리는데, 우리보다 늦게 온 사람들이 먼저 짐을 찾아서 사라졌다. 한참을 대기해도 우리 차례가 오지 않자, 슬슬 불안감이 몰려왔다. 오늘 중에는 짐을 찾을 수 있는 건가 안절부절 발을 동동 굴렀다.

"왜, 아직도 안 나오지? 설마, 지난번 제주 여행 때처럼 캐리어가 파손되면 곤란한데."

"기다려. 곧 나오겠지!"

다랑은 태평하게 대답했다. 다랑의 짐이 먼저 나오고, 한참 후에 내 짐을 발견했다. 인당 18kg 제한이라서, 각자 짐을 챙겼다. 하지만, 이렇게 시간을 낭비하게 되니 생각이 달라졌다. 대형 캐리어에 모든 짐을 넣는 게 시간 절약 면에서 이로울 듯싶었다.

"그것 봐, 그러게 내가 짐 합치자고 했지?"

다랑에게 묻자, 그가 수긍했다.

"그러네. 배낭도 큰 캐리어에 넣으면, 출입국 시엔 굳이 안 메도 되니까. 다음부턴 그렇게 하자."

공항 화장실에서 옷을 갈아입었다. 작년 1월에 방문한 호찌민의 온화한 날씨를 생각하며, 하노이도 마찬가지로 따뜻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호찌민은 남쪽이고 하노이는 북쪽이라서 날씨가 사뭇 달랐다. 두꺼운 겨울 상의를 벗고, 반소매로 갈아입었는데 공항 출구를 나오자마자, 후회했다. 서늘한 바람이 불자, 으슬으슬 추웠다.

'허, 가을 날씨구나! 옷을 괜히 갈아입었나......'

출국하기 전 하노이 날씨에 대해 검색했을 땐, 별 생각이 없었다. 베트남은 남쪽의 더운 나라라는 고정관념 때문이었다. 베트남 여행 커뮤니티에서 한 여행자가 자신이 털옷을 입고 술을 마시는 모습을 공유하며 '현재 하노이는 추우니, 긴소매 옷을 챙겨라'라고 조언하는 게시글을 접했을 때도 오히려 여행자를 의심했다.

'술을 마시는데, 왜 추워? 술이 들어가면 더운데. 이 사람 술 취한 상태로 글을 썼나......'

다랑이 그랩 앱으로 택시를 호출하려고 시도했으나, 응답이 없었다.

"그럼, 숙소까지 우리 뭐 타고 가?"

"택시가 안 오네. 어쩌지......"

그때, 한 남자가 다가와 설명했다. 그의 설명을 들으니, 현재 설 연휴라서 다들 쉬느라 택시 운전자가 부족하다는 것이었다. 그가 숙소까지 택시비 50만 동을 제안했고, 다랑은 수락했다.

"그랩보다 저렴해. 괜찮네. 지금 달러뿐이라서, 공항에서 동으로 환전해서 올게!"

그런데, 서양인 한 명과 합승했다. 분위기를 보니, 서양인이 먼저 온 손님인 듯했다.

"아, 이렇게 셋이 같이 태워서 돈을 더 받는 거구나. 운전기사 영업 방식이네."

우리에겐 타인과 합승한다는 설명이 없었기에, 다소 언짢았다. 하지만, 다른 택시가 없으니 선택지도 역시 없었다.

차는 일제였는데, 매우 낡았다. 여기저기 벗겨지고, 허름했다. 운전수는 활발하고, 유쾌한 성격인 것 같았다. 그는 베트남 가요와 팝을 크게 틀고, 신나게 주행했다. 시끄러웠지만, 잠자코 있었다. 기사가 조수석에 탄 서양인에게 출신 국가를 질문했다. 안경을 쓴 남자는 프랑스라고 대답했다. 그가 운전석을 향해 고개를 돌리자, 그가 쓴 안경 너머로 낙타 같은 속눈썹이 보였다.

'우와, 속눈썹 엄청 길다! 저기에 찔리면, 엄청 아프겠는걸? 프랑스의 과거 식민지였던 베트남을 프랑스인이 보러 왔구나. 그것도 혼자서.'

중국이 약 2천 년, 프랑스가 약 100년, 일본이 5년간 베트남을 지배했다고 한다. 소스라치게 놀라고 말았다.

'여기서도 역시 일본이 등장하는군! 놀랍다.'

대한민국도 역시 강대국에게 짓밟힌 긴 역사가 있기에, 베트남에 대해 동병상련을 느꼈다.

운전기사는 뒷좌석에 앉은 우리를 향해 일본인이냐고 물었다.

"We are South Korean."

혹시 한국에 대해 알려나 싶었으나, 기우였다.

"박항서!"

기사는 잘 안다는 듯 한국인의 이름을 말하며 호응했다.

"박항서가 누구야? 축구 선수인가?"

오히려 모르는 쪽은 나였다.

"어, 축구 감독이야."

다랑이 설명했다.

많은 사람들이 오토바이를 타고 질주했다. 그중 인상적인 것은 성인 2명과 아이 2명 총 4명이 탑승한 광경이었다.

"너무 위험하지 않나? 애들 데리고 탔는데, 사고라도 나면 어떻게 해......"

"베트남이잖아."

다랑이 대답했다. 베트남에선 뭐든지 가능하다는 말투였다.

더 놀라운 모습은 인도 위를 역주행하는 오토바이였다.

"어어, 저 방향이 아닌데?"

"베트남이잖아."

다랑의 대답은 아까와 동일했다. 기가 막혀서, 그냥 웃었다.

프랑스인은 먼저 하차했다. 기사가 트렁크에서 그의 짐을 내렸다.

"짐 제대로 내리나 잘 봐야 해. 혹시, 착오가 있을지도 모르니까."

뒷유리창 밖을 주시하며, 내가 말했다.

"저 사람은 얼마 내는 걸까?"

다랑이 궁금해했다.

"아마, 우리랑 동일하지 않을까? 아무렴 어때."

몇 분 후, 목적지에 도착했다. 다랑은 50만 동을 낼 잔돈이 없어서, 60만 동을 냈다.

"Change the money, please."

내가 요청했으나, 기사는 잔돈을 거슬러 주지 않았다. 그는 새해니까, 팁으로 달라면서 입을 닦아버렸다.

'뭐 이런 사람이 다 있담? 웃는 얼굴에 침 뱉을 수도 없고......'

울화통이 터졌다. 이렇게 눈 뜨고 코를 베이고 말았다. 10만 동이면, 약 5천 원이었다. 아까웠지만, 여행 첫날부터 기분을 망칠 순 없었다. 따지지 않고, 그냥 돌아설 수밖에 없었다.

숙소에 입실하고, 짐을 풀었다. 직원은 방이 좁으면 교체 가능하다며, 추가 요금에 대해 안내했다.

"Small room is fine."

방금 전에 삥을 뜯겼는데, 또 손해를 보긴 싫어서 괜찮다고 말했다. 우리가 묵을 곳은 202호였다. 공간은 협소했지만, 침대, 옷장, 거울, 냉장고, 화장실 등 있을 건 다 있었다. 그걸로 충분했다.

거리 구경도 할 겸, 호안끼엠 호수를 따라 천천히 걸었다. 오바마가 다녀갔다는 분짜 맛집 흐엉 리엔에서 석식을 먹기로 했다. 기대됐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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