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분서주
리따이또 공원에 들어서자, 저 멀리 리따이또 황제의 동상과 마주했다. 구글 위키백과에 따르면, 리따이또는 레 왕조 멸망 후 추대받은 리 왕조의 초대 황제이다. 그는 베트남의 수도를 하노이로 이전했다고 한다. 그의 업적을 기려 이곳에 그의 동상을 세운 듯했다.
죽은 황제의 생명력 없는 차가운 동상보다 이목을 사로잡은 것은 역시 살아있는 싱싱한 자연이었다. 황제 동상보다 훨씬 거대한 나무들과 너무 높은 곳에 펴있어서 형체를 알 수 없는 꽃이 시선을 끌었다.
"처음 보는 꽃인데, 뭘까? 궁금하다. 근데, 너무 멀리 있어서 촬영해도 안 보이겠어. 아쉽다."
동상 주변에는 과실나무들이 있었는데, 주렁주렁 주황색 열매들이 탐스러웠다. 제주도에서 흔히 보던 하귤이 떠올랐다. 다랑에게 기념촬영을 부탁했으니, 마음에 드는 결과물을 얻기가 힘들었다.
"휴, 이 똥손을 대체 어찌할꼬...... 하루아침에 감각이 길러지는 건 아니겠지만, 신경 좀 쓰라고!"
동상 뒤편에서 음악 소리가 들렸다. 다랑이 외쳤다.
"여기 봐! 춤추는 사람들이 있어!"
가까이 가보니, 동상 뒤로 작은 광장과 정자가 하나 보였다. 문득, 인터넷 어느 블로그에서 본 정보가 떠올랐다.
<취미 생활 즐기는 분들을 공원에서 볼 수 있어요.>
이게 바로 그거구나, 싶었다.
"와, 우리 어서 가까이 가서 자세히 보자!"
통로가 모두 막혀 있었서, 곧장 뒤편으로 넘어갈 순 없었다. 아까 공원으로 입장했던 곳으로 부랴부랴 달려가 한동안 걸었다. 연세 지긋한 할아버지와 비교적 젊은 여자 어르신이 왈츠를 추고 있었고, 음악은 막바지였다. 여자가 등을 뒤로 힘껏 젖히자, 공연은 끝났다. 더 볼 수 없음이 아쉬웠지만, 우리는 진심을 담아 박수를 쳤다.
"Bravo!"
다랑은 카페를 검색했다. 에그 커피를 마시기 위해 일부러 찾아간 곳이었다. 2~4층까지 카페였고, 입구에 들어서기 전부터 새끼 고양이를 발견했다. 누렁이 치즈였다.
"어, 고양이다!"
새끼는 쏜살같이 도망쳤다. 뒤쫓으려 했으나, 워낙 잽싸서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아쉬웠다.
"여기 고양이 더 있어!"
다랑이 소리쳤다. 반가운 마음에 카페에 들어섰다. 과연, 고양이가 두 마리나 더 있었다. 몸집이 크고, 털이 길며 뚱뚱한 삼색이와 잿빛 고등어였다. 사료와 모래 상자가 있는 걸로 미루어 보아, 카페에서 기르는 동물들이었다.
우리는 에그 커피와 코코넛 커피를 주문했다. 그런데, 점원이 말했다.
"설 연휴라서 20% 추가 요금이 붙어요. 괜찮으세요?"
그 말을 들으니, 갑자기 마음이 상했다.
"괜히 바가지 씌우는 거 아니야?"
달리 갈 데도 마땅히 없어서 그냥 지불할 수밖에 없었다.
다른 손님들이 해바라기씨를 먹고 있었는데, 이후에도 카페에서 해바라기씨를 먹는 사람들을 줄곧 볼 수 있었다.
"여기 사람들은 햄스터 민족이야? 해바라기씨를 왜 저리 좋아하지? 우리도 주문해서, 먹어볼까?"
다랑이 말했다.
"해바라기씨 무슨 맛인지, 이미 알잖아. 난 별로. 안 먹을래. 너 먹고 싶으면, 먹어."
카페를 나와 그랩 택시를 불렀다. 인력거 일꾼이 호객 행위하며 다가왔으나, 애써 외면하며 택시에 올라탔다. 하노이에서 가장 큰 호수라는 서호에서 하차했다. 호엔키엠 호수와는 달리 서호는 볼거리가 없다고 들어서, 굳이 주변을 산책하지 않았다. 목적지인 쩐꾸옥 사원(증국사)까지 곧장 걸어갔다.
사원 입구에서 새, 물고기 등을 판매하는 상인들을 볼 수 있었다. 그들의 몸짓을 보니, 동물들을 사서 방생해 주라는 의미 같았다. 굳이 필요성을 느끼지 못해서, 지갑을 열지 않았다.
때는 늦은 오전이었다. 물밀듯이 들어오는 참배객들과 그들이 기도하며 불에 태우는 행위는 우리를 숨 막히게 만들었다. 공기가 탁해서, 어서 이곳을 서둘러 벗어나야겠다는 일념뿐이었다. 다른 관광객들은 줄 서서 기념촬영했지만, 그걸 바라보며 몸서리쳤다.
키가 2m는 족히 넘을 것 같은 백인 남자 2명과 비교적 작은 신장의 까무잡잡한 남자 1명을 발견했다. 남자 셋이서 여행 온 모양인데, 키 작은 남자는 단체 관광객들의 기념촬영을 돕고 있었다. 다른 거인들은 동행의 모습을 바라보며, 아무 데나 걸터앉아 잠시 쉬는 중이었다. 하필 많은 관광지 중에 왜 여길 선택 했을까 의문이 들어서, 그들을 호기심 어린 눈으로 관찰했다. 장신들은 곧 시야에서 벗어나 인파 속으로 사라졌다.
다음으로 들린 곳은 도교 사원이었다. 내 계획에는 없었으나, 다랑이 이끌기에 간 장소였다. 무슨 중요한 곳인가 궁금해질 정도로 방문자가 많았다. 한참 줄을 서서 입장료를 샀다. 1만 동(한화 500원)이었다.
"여기, 볼 거 되게 없다. 대체 왜 온 거야?"
내가 묻자, 다랑이 떨떠름하게 답했다.
"유명하다고 해서 왔는데, 별로네."
돈이 아까워서 쉽게 나가지는 못하고, 이왕 왔으니 구석구석 자세히 관람하려고 한참 서성였다. 구석에선 베트남 전통의상을 체험하는 공간이 있었다.
"우리, 저 옷 입고 사진 찍을까?"
제안했으나, 다랑의 대답은 시원찮았다.
"나한테 맞는 큰 옷이 없을걸."
"그렇겠네."
담당자에게 가격을 문의했으나, 너무 비쌌다.
'아이코! 차라리 아오자이 한벌을 구매하는 게 훨씬 낫겠네.'
아오자이를 알록달록 예쁘게 차려입고 웃으며 사진 찍는 베트남인들을 멀리서 바라보며, 사원을 나섰다.
출국하기 전, 남쪽 나라의 맑고 더운 기온을 예상해서 양산과 선글라스를 준비했다. 하지만, 그것들은 불필요한 짐이 돼버렸다. 하노이의 흐린 하늘이 잠깐 개어서 양산을 썼는데, 길가에서 마주친 어린이가 나를 유심히 봤다. 비도 안 오는데 왜 우산을 쓰고 있지, 이런 생각을 하는 듯싶었다.
베트남 주석궁을 지나는데, 다랑이 넌지시 귀띔했다.
"여긴 사진 촬영 금지래. 조심해! 불법 행위하면 공안한테 잡힐라!"
겁이 덜컥 났다(계속).